사우디 언론인 카슈끄지 사망을 통해 본 중동의 변화

2018-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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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일 결혼서류를 발급받기 위해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아라비아(이하 사우디) 총영사관을 방문했던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Jamal Khashoggi)가 살해당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혼란에 빠졌다. 자말 카슈끄지는 사우디 반정부 인사로 현재 미국에 자발적 망명상태로 체류하면서 워싱턴 포스트지에 사우디에 대한 반정부적 내용의 칼럼을 게재하며 사우디 왕실과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Muhammad bin Salman)를 지속적으로 비판해왔다.
사우디의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실종이 계획적 살해로 밝혀지기까지 △터키△사우디△미국 3개국의 복잡한 관계를 통한 중동의 역학구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은 타국의 자국외교공관에서 사우디 언론인이 무참히 살해당했다는 인권탄압적 측면에서 국제사회를 공분에 몰아넣었다. 더욱이 자말 카슈끄지는 자국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의 망명을 선택했고, 사우디 왕실과 현재 핵심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정책 및 행보에 강력한 반대와 비판의 입장을 견지해온 강경 언론인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죽음은 큰 이슈가 됐다.
터키는 사건발생 초반부터 사우디 왕실의 개입에 대한 강한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를 입증할 녹취록을 가지고 있다고 미 언론에 꾸준히 정보를 흘려왔다. 이에 이번 사건과의 연관설을 강력히 부인하던 사우디 왕실의 입장은 그의 죽음이 계획적 살해였음을 인정하는 입장으로 바뀌었고 책임을 가지고 이번 사건을 수사하겠다며 사건 관련자 18명을 체포했다. 국제사회와 미 의회가 이번 사건을 인권탄압이라 규정하며 강력대응을 요구하자 사우디와 동맹관계를 구축해 온 트럼프 미국대통령은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무기판매△원유△대테러대응△로비 등 뗄 수 없는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전체 생산 무기의 약 10% 이상을 사우디로 수출하며 무기판매 수입의 30% 또한 사우디를 통해 얻는 등 사우디는 미국의 최대무기수입국이다. 또한 1930년대 사우디에서 원유가 발견된 후 미국은 사우디와 에너지동맹국으로서의 관계를 공고히 발전시켜왔다. 중동 지역에서 사우디와 대결구도에 있는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은 사우디와 협력 및 공조의 관계가 절실히 필요한 입장이다. 사우디는 미국의 주요 △*싱크탱크△중동연구소△정계△재계 등에 전 방위적인 로비를 통해서 사우디에 유리한 정책 및 여론형성수립을 위해 매년 수백만 달러라는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해왔다.
가장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이자 중동의 맹주 자리를 넘보고 있는 터키는 최근 몇 가지 사안에서 사우디와 대립양상을 보여 오고 있다. 우선 무슬림형제단을 기반으로 하는 터키와는 달리 사우디는 무슬림형제단을 탄압하고 있다. 최근 사우디를 주축으로 한 카타르 단교조치에서 터키는 사우디 반대편에 서서 카타르 지지를 공표했다. 또한 시리아 내전에서도 터키는 사우디와 입장을 달리하는 등 터키와 사우디는 같은 중동국가이며 이슬람 국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터키에서 구금됐다가 최근 석방된 미국 브런슨목사 문제로 악화일로를 걷던 미국과 터키의 관계는 쌍방 간에 보복관세 부과로 인해 터키 리라화가 폭락하고 더욱 악화돼왔다. △경상수지적자△대외부채비율△실업률상승△에르도안 터키대통령과 가족들의 부패이미지 등 총체적 난국에 접어들었던 터키는 이번 카슈끄지 사건으로 사우디와 미국을 압박하며 이번 사건의 가장 큰 수혜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카슈끄지 사망사건으로 사우디 왕실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직에 반대하는 등 사우디 왕실과의 갈등으로 영국에서 체류하고 있던 살만 국왕의 동생 아흐마드 빈 압둘 아지즈(Nayef bin Abdul-Aziz Al Saud)가 최근 사우디로 귀국했고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동생 칼리드 빈 살만 워싱턴 주재 사우디 대사가 사우디로 귀국했다. ‘Mr. Everything’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33세 젊은 왕세자의 행보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상당히 주춤할 것으로 예측된다. 왕세자를 교체하라는 미 상원의 요구에도 사우디 왕실은 왕세자를 당장 교체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성의 운전을 허용하고 남녀가 함께 영화를 관람하는 영화관을 개장하는 등 ‘사우디 비전2030’ 프로젝트를 통해 석유 의존적 경제에서 탈피해 경제다변화를 추진하던 개혁개방적인 젊은 미래 군주의 모습은 사우디 언론인 카슈끄지 사망으로 퇴색됐다.
이번 사건에 대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배후설 및 연관성에 대한 명확한 증거는 아직까지 제시되고 있지 않지만 이 사건의 사우디 왕실과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에게 큰 타격을 준 것은 분명하다. 국제사회는 사우디 주도의 예맨 공습을 중단을 요구하고 있으며 사우디의 지원을 받고 있던 다수의 미국 내 △연구소△싱크탱크△자문 기관 등이 사우디의 재정적 지원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또한 *와하비즘을 기반으로 한 보수적인 사우디를 개혁으로 이끌어 갈 것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무함마드 왕세자의 이미지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카슈끄지 사건이 단기간에 사우디의 입지를 축소시켜 중동 내 역학관계의 눈에 띄는 변화의 계기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시사한 바는 어떤 형태로든 중동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2011년 튀니지에서 아랍의 봄이 발생했을 때 많은 아랍인들이 중동 민주화에 대한 희망을 기대했다. 아랍의 봄이 아랍의 겨울이 됐다는 자조적인 말이 생길 정도로 기대는 실망으로 바꼈지만 분명 그 씨앗은 어디엔가 뿌려졌으며 깊은 땅속에서 씨앗을 틔우기 위한 몸부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사우디 언론인의 죽음이 그 씨앗이 되고 그 씨앗이 언젠가 단단한 땅을 뚫고 나와 작은 잎으로, 그리고 잎이 무성한 나무가 돼 자라기를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싱크탱크(Think tank)
마치 큰 수영장처럼 보이는 방(tank)에 들어가 생각을 한다는 의미로 두뇌집단을 뜻한다.

*와하비즘(Wahhabism)
18세기 중엽 아라비아반도에서 출현한 이슬람 복고주의 운동이자 사회·정치 운동으로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의 건국이념의 기초이자, 근대 이슬람 부흥운동의 효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