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도는 시험문제, 과연 공평한 것일까?

2018-11-13

안소현 기자 | 97sonia@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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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족보란 한 가문의 계통과 혈통 관계를 적어 기록한 책을 뜻한다. 그러나 학생들 사이에서 족보는 최근 몇 해의 기출문제와 이의 해답으로 통용된다. 족보를 통해 시험의 문제 유형과 패턴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많은 학생은 이를 암암리에 공유한다. 한편 지난 중간고사 기간, 우리학교 서울캠퍼스에서 시행된 한 경제학과 시험에서 족보의 존재여부가 밝혀져 시험이 무효처리 되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화제가 됐다. 이처럼 족보는 학생들이 공정한 평가를 받을 수 없게 한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어 학생사회에서 이에 관한 논란이 지속해서 제기된다. 최근 발생한 족보사건 사례와 학생과 교수의 입장을 자세히 알아보자

◆경제학과 족보 사건

지난 중간고사기간 경제학과 수업 중 하나인 경제발전론 과목에서 몇몇 학생들이 족보를 공유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됐다. 경제발전론 수업은 양 캠퍼스의 경제학 이중전공 및 부전공자를 위한 수업으로 개설됐다. 해당 수업의 담당 교수는 글로벌캠퍼스 전용 강의를 진행했었지만 이번학기 처음으로 서울캠퍼스에서 강의를 진행했다. 이에 글로벌캠퍼스에서 강의를 수강한 학생들은 족보를 가지고 있었지만 서울캠퍼스 학생들은 족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한편 해당과목 시험이 끝난 지난달 23일 한 글로벌캠퍼스 학생이 우리학교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해당시험을 족보로 대비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게시글을 올렸고 이에 다른 수강생들이 시험의 불공정성을 제기하며 논란이 확산됐다. 이로 인해 해당 시험은 무효처리 됐으며 발표 출석으로 중간고사를 대신해 평가한다고 전했다.

◆족보 논란의 다른 사례

족보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4월 우리학교 공과대학 산업경영공학과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당시에 시험 이틀 전 과회장과 조교를 포함한 6명의 수강생들이 카카오톡 메신저로 족보 관련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주고받아 문제가 됐다. 이들은 메신저로 “조교가 족보를 가지고 있다”며 약속한 장소로 오면 족보를 주겠다는 내용의 대화를 주고받았고 이들 모두 해당시험에서 35점 만점에 30점이 넘는 고득점을 받았다. 족보논란에 대해 산업경영공학과회장은 해당 강의 수강생들에게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또한 해당과목 교수는 “족보는 기출문제”라며 “족보를 얻는 것은 사회생활”이라는 발언을 해 학생들의 불만을 샀다. 이어 “조교는 시험문제를 미리 알 수 없으며 이 족보는 다른 학교 족보”라고 덧붙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조사위원회가 출범해 피해 학생들, 담당교수, 그리고 이 사건과 연루된 6명의 학생들을 조사했다.

◆족보의 문제

많은 학생들이 족보에 문제점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족보는 대부분 지인들끼리 공유하는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전해진다. 따라서 족보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학생들은 시험을 대비하는데 있어 다른 학생들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며 성적에도 영향을 받는다. 문화영(인문·지식콘텐츠 15) 씨는 “족보가 학생들의 성적에 불공평하게 작용한다”며 “이로 인해 정직하게 출석하고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이 피해볼 수 있다”고 전했다. 또한 “내성적이거나 친한 선배가 없는 학생들은 족보를 구하기 어려움이 있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족보의 발생원인은 매해 비슷하게 출제되는 시험 유형에 있다는 의견이 많다. 김가은(경상대·GBT 17) 씨는 족보를 활용한 공부는 “그 과목에서 중요한 내용, 꼭 알아야하는 내용이 정해져 있는 것과 같다”며 이는 “열심히 공부한 친구들에게 부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족보와 비슷하게 나오는 시험문제로 인해 “시험의 의미가 무색해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이어 이 문제는 “족보 자체 보다는 그것을 이용하는 학생들의 태도와 그 행태를 인지하지 못하는 교수님의 문제인 것 같다”며 “차라리 교수 측에서 기출 문제를 올리는 등의 방법으로 모두가 공평한 기회를 갖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교수 인터뷰

족보문제에 대해 우리학교 교수들은 다양한 의견을 전했다. 우리 학교 A교수는 “족보 문제는 동일한 강좌를 수강하는 모든 학생들이 족보를 가지고 있지 않아 시험의 불공정성 문제가 발생했다는 데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같은 강좌를 수강하는 모든 학생들이 족보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도 학생들의 점수가 상위권에 밀집되어 성적 산출이 어려울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담당교수가 매해 동일한 과목을 맡을 때마다 문제 유형을 바꾸는 등 족보 문제를 막으려는 꾸준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B교수는 “각 과목마다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필요가 있는 부분들이 고정돼 있기 때문에 ‘족보’라는 것이 만들어진 것 같다”고 전했다. 하지만 “시험문제가 족보와 비슷하게 나오는 것은 옳지 않다 ”며 “아무리 고정된 내용이라도 유형을 바꿔 출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족보의 존재가 잘못됐다고 하기 보다는 족보가 더 이상 공유될 필요가 없도록 그 원인이 먼저 해결돼야 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B교수는 “갈수록 더해지는 취업난으로 인해 대학교가 취업하기 전에 거쳐야만 하는 중간과정이라는 생각이 들게 돼 안타깝다”며 “지성과 낭만, 그리고 내 자신이 누군지를 알아가는 그런 공간이 될 수 있도록 교수들과 학생들이 서로 노력해가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안소현 기자 97sonia@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