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배 동상 설치, 그 전말은?

2018-10-16

이은지 기자 | 97eun_g@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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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배 박사, 그는 누구인가

김흥배 박사는 1914년 여주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홀로 상경했다. 그는 △1952년 동일방직공업주식회사△1954년 한국중앙무진주식회사△1956년 한국 신탁 주식회사를 잇달아 설립해 한국의 근대적 기업 발전에 영향을 끼쳤다. 또한 1952년 재단법인 동원육영회(東園育英會)를 설립하고, 1954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외국어 특수 고등교육기관인 우리학교를 세웠다. 이는 교육 기반 형성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김흥배 박사의 교육 업적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김흥배 박사의 친일행적이다. 그는 일제시대 군납물품을 만들어 일본군에게 물품들을 파는 ‘노다(野田) 피복공장’을 세워 운영했다. 태평양전쟁 기간엔 일제 전쟁 지원 단체인 ‘경성부총력연맹’의 이사를 맡았다. 김흥배 박사는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에 의해 연행됐으나 같은 해 반민특위가 해체되면서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 2009년 친일인명사전 제작 당시엔 ‘수록 예정자’에 이름이 올라갔지만 최종목록에서는 제외됐다. 하지만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2009년 이후 개정판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고 현재 친일인명사전에 없다 해도 김흥배 박사의 친일행적이 더 발견되면 개정판에 실릴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김흥배 박사 동상 설치 당시 학생의 반응

김흥배 박사의 동상은 2014년 4월 개교 60주년 기 념으로 우리학교 서울캠퍼스에 설치될 예정이었 다. 하지만 서울캠퍼스 학생들은 김흥배 박사가 친 일행적이 있다는 점을 들어 동상 설치를 반대했다. 학생 측의 거센 반대에 동상 설치는 무산되는 듯 했으나 2014년 8월 1일 새벽, 김흥배 박사의 전신상이 글로벌캠퍼스에 설치됐다. 글로벌캠퍼스 학생들은 김흥배 박사 동상이 설치된 모습을 보고 분노를 드러냈다. 친일행적이 있는 인물의 동상을 설치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이유가 가장 많았다. 또 다른 이유로 총학생회와 많은 학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설치를 강행해서 학생들이 더욱 분노했다.
그 해 8월 글로벌캠퍼스에는 동상철거를 위한 학생들의 모임 ‘부글부글’이 결성됐다. ‘부글부글’은 김흥배 박사 동상 앞에서 동상철거를 요구하는 문화제를 진행했다. 문화제에선 △자유발언△퍼포먼스△동상에 포스트잇 붙이기 등의 행사를 개최했다. 또한 ‘민족문제연구소’에서 강사를 초청해 친일행적의 심각성에 대한 강의까지 진행했다. 또한 ‘부글부글’은 글로벌캠퍼스 학생 1,500여 명의 철거 요구 서명을 모아 우리학교 재단법인에 시정을 요구했다. 최한솔(동유럽·루마니아어 10) 당시 ‘부글부글’ 대표는 “재단은 동상 설치에 대해 잘 모른다며 학교에게 책임을 넘겼고 학교 측에서도 우리는 잘 모르는 부분이라며 재단에게 책임을 넘겼다”며 “서로 모르쇠 했을 뿐 그 이후로 해결된 일은 없다”고 전했다. 이어 “학생들과 함께 모금을 통해 김흥배 친일행적 알리기 팻말을 제작하고 동상 옆에 직접 심었다”며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뽑혀 있어 다시 땅을 파 심었다”고 전했다.

◆현재 학생들은 동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학교 커뮤니티사이트 에브리타임(이하 에타) 에서도 최근 김흥배 박사 동상철거 관련 글이 게시됐다. 동상을 철거하자는 한 게시글엔 최한솔(동유 럽·루마니아어 10) 씨의‘동상철거 문화제’ 관련 기고 앞부분을 캡쳐한 사진이 첨부돼 있다. 학생들 은 학생들이 없는 방학을 이용해 동상을 설치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학교에 실망했다.
에타에 김흥배 박사 동상 관련 설문조사를 1주일간 실시한 결과 우리학교 학생들 약 400명이 응답했다. 김흥배 박사 동상 관련 인식조사를 진행한 결과 김흥배 박사의 교육 업적을 아는 학생들은 21.3%(85명)인데 비해 친일행적을 아는 학생들은 75.1%(300명)로 더 높게 나타났다. 이어 동상철거 가 필요하다는 학생은 95.5%(382명)를 차지했다. 설문조사 결과 대부분의 학생들이 동상철거를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김흥배 박사 동상철거 찬성 이유로는 “대학 이란 미래의 인재를 육성하는 교육기관인데 과거 친일행적을 남긴 인물을 설립자라는 이유만으로 학교에 버젓이 세워놓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말과 “본래 서울캠퍼스에 세우려던 것을 학생들의 반대로 인해 글로벌캠퍼스에 세운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서울캠퍼스 학생들이 반대하는 것은 두렵고 글로벌캠퍼스 학생들이 반발하는 것은 두렵지 않은 것인지 학교에게 묻고 싶다”고 전했다.
추가로 “우리학교를 설립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것과 친일행위를 했다는 사실도 같이 표기 하는 게 낫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에 더해 “친일행 적을 포함한 설명 팻말을 설치한다면 학생들이 각자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중립적인 시선의 중요성을 강조한 의견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 친일행위 자체가 옹호 받을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 대학을 설립할 돈이 어디서 나올 수 있었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반대의 의견도 있었다.

◆학교의 입장과 앞으로의 향방

취재 결과 동상에 대한 학교 측의 입장이 통일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캠퍼스 시설관리팀은 “동상은 우리가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동상주위 잔디를 깎는 등 관리를 할 뿐 동상 설치 계기나 과정에 대해선 잘 모른다”고 전했다. 이어 “이 문제는 총괄지원팀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다”라고 전했다. 총괄지원팀은 “동상에 관한 것은 행정부서가 알지 못하며 지시를 이행했을 뿐이다”라며 “법인사무처에 연락해봐야 할 것”이라고 동상은 법인사무처와 총장 담당이라는 것을 밝혔다. 한편 법인사무처 나인성 팀장은 “2016년부터 법인사무처에 있었기 때문에 동상에 관한 것은 잘 알지 못한다”며 “퇴직하신 분이 더 자세히 알 수는 있겠지만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연락처는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타 학교의 사례
우리학교 뿐만 아니라 몇몇 타 학교에도 친일행적이 있는 사람의 동상이 설치돼 있다. 이화여자대학교(이하 이화여대)에는 김활란 동상이 설치돼 있다. 김활란 박사는 △학교법인 이화학당 이사장 겸 이화여자대학교 초대총장△공보처장△대한적십자사 부총재△한국여학사협회 회장 등의 직위를 지냈다. 하지만 이대학보에 따르면 김활란 박사는 일본군 징병을 독려하는 발언 등의 친일행적을 보였다고 전한다. 또한 학도병 징집을 독려하는 강연 활동에 참여하고 논설을 발표 했으며 여성들에게 징용·징병을 강요 등의 친일행적이 있다. 이에 학생들은 ‘김활란 친일행적 알림 팻말 세우기 프로젝트 기획단’을 만들어 팻말을 설치했다. 이들은 7개월 간 이화여대 학생 1022명으로부터 100만 원 가량을 모금해 팻말을 설치했지만 학교 측은 팻말 설치 2주 만에 팻말을 철거했다.
고려대학교(이하 고려대)에는 인촌 김성수의 동상이 설치돼 있다. 김성수는 1943년 말부터 1944년 초까지 학병지원 독려 행위를 했고, 1937년 이후 조선 총독부 관제단체나 친일단체의 간부 경력이 있다. 이 때문에 김성수는 △2002년 2월 28일 대한민국 국회의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과 광복회가 선정한 친일파 708인 명단에 수록됐고△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언론계 친일파로 수록됐다. 고려대 학생들은 2000년대 중반부터 인촌 동상 철거를 주장했지만 학교 측은 “학생들이 본격적으로 철거 요구를 해오면 교내에서 논의를 해보겠지만 아직 대응할 생각은 없다”고 전했다.

이은지 기자 97eun_g@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