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의과 의사들의 임신중절수술 전면 거부, 끊임없는 논쟁 2018-10-05
조유진 기자 | 96yujin@hufs.co.kr 조회수 875  댓글 0
8월 17일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가 의료관계 행정처분 개정안을 발표했다. 복지부는 이번에 개정된 시행령이 공포 및 시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는데, 개정안 중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낙태를 포함해 명시함으로써 논란을 빚었다. 이에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이하 의사회)는 8월 28일 “임신중절수술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의사회는 “정부가 의사를 비도덕적이라고 낙인찍고 처벌의지를 명문화했다”며 반발했다. 의사회의 입장이 알려지면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복지부의 낙태수술 의사 즉각 처벌권을 철회해주세요’, ‘낙태 수술 중단 철회 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그동안 사회적으로 논란이던 ‘임신중절’에 관한 논의가 다시금 불거진 실정이다. 우리 사회의 여러 이해관계들이 대립하고 있는 임신중절, 수술중단이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복지부는 왜 임신중절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분류 했나

임신중절에 관한 정부의 입장은 지난해 국민청원 답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 합법화 및 도입을 부탁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이 청원은 235,372명의 동의를 얻어 청와대의 공식 답변을 받았다. 조국 민정수석은 “처벌강화 위주 정책이 임신중절을 줄이려는 본래의 입법 목적과 달리 불법 임신중절수술이 빈번히 발생하는 현실이다”라며 “이번 해부터 임신중절 실태조사를 재개하고 정부에서도 임신중절 보완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답변했다. 이후 지난달에 의료관계 행정처분 개정안이 발표된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임신중절 처벌강화 위주 정책에 한계점이 있다는 것을 인지했음에도 개정안에서는 임신중절을 비도덕적 의료행위로 규정한 것이 문제가 됐다. 현재 낙태죄가 헌법을 위반하는지의 여부가 헌법재판소에서도 논의 중이다. 그런데 복지부가 임신중절수술을 제한 없이 즉각적으로 처벌이 가능하도록 개정했다.
새로 발표된 개정안 이전의 의료관계 행정처분을 살펴보면, “비도덕적인 진료행위를 한 의사에게 1개월의 자격정지를 처분한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이전에는 비도덕적 진료행위가 무엇인지 정확히 명시돼있지 않아 기준이 모호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복지부는 비도덕적 진료행위 유형을 구분하고 자격정지 처분기준을 세분화했다. 세분화 된 내용은 △진료 중 성범죄(12개월 자격정지)△허가받지 않은 의약품 사용△변질, 오염, 손상 됐거나 유효기간 또는 사용기간이 지난 의약품 사용(3개월 자격정지)△형법 제 270조를 위반해 낙태(1개월 자격정지)△그 밖의 비도덕적 진료행위(1개월 자격정지)이다. 개정안 발표 이전인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임신중절은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구분돼 불법 임신중절수술을 한 의사 21명이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즉 이번 개정안은 모호했던 진료행위에 대한 처분 기준을 정비 및 강화한 것일 뿐, 사실상 이전과는 달라진 점이 없다는 것이 복지부의 입장이다.
의료관계 행정처분 개정안으로 인해 임신중절수술을 한 의사가 신고를 받으면 형사처분과 법원 판결 없이 즉각적으로 복지부 공무원이나 보건소 직원으로부터 자격정지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에 곽순헌 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장은 “형법 위반 여부는 행정공무원이 판단할 수 없다”며 “낙태죄로 의사를 신고하더라도 수사를 거쳐 사법부 판단이 나와야 행정처분을 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개정안에 대한 산부인과 의사들의 강한 비판이 이어지자 복지부는 낙태죄에 관한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올 때까지 발표된 개정안 시행조치를 미루겠다고 밝혔다.
◆왜 모든 사회적 책임을 의사들에게로? 산부인과 의사들의 맞대응

8월 28일 복지부의 개정안 발표에 의사회는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한 임신중절수술 전면 거부 선언 성명서’를 발표했다. 의사회는 “복지부가 임신중절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라고 규정하고 임신중절수술을 한 의사는 자격을 1개월 정지하는 행정처분 규칙을 공표했다”며 “입법 미비로 인해 많은 임신중절수술이 행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과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복지부가 1개월 자격정지라는 처벌을 내린 것에 강하게 유감을 표하는 바”라고 전했다. 의사회는 앞서 언급한 청와대 국민청원 이후로 임신중절 현행법 개정 요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임신중절이 비도덕적 진료행위라고 규정한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의사회가 발표한 성명문에는 “양심적 의료행위를 하는 산부인과 의사들을 낙인찍었다”며 “현실을 무시하며 윤리적 의료를 강요하고 성취하려는 구시대적 발상의 피해는 고스란히 여성 및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다”라고 발표됐다. 이영규 의사회 수석부회장은 “산부인과 의사들은 담당 부처인 복지부 관리 하에 의료행위를 한다”며 “그런데 유독 임신중절수술에 대해선 그 책임을 산부인과 의사들에게만 묻고 있다”고 지적했다. 산부인과 의사들의 반발로 개정안 시행이 보류된 상태지만 의사회의 반응은 여전히 강경하다. 의사회는 “복지부가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된 중절수술에 대해 방관자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며 “인공임신중절수술에 대한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라”고 전했다.
산부인과 의사들의 임신중절수술 거부는 개정안을 철저하게 준수하겠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왜 복지부는 개정안 시행을 미뤘을까? 의사회는 “임신중절수술을 중단하면 여성들이 불법 임신중절 약을 복용하거나 불법 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인터넷에 미프진과 같은 임신중절 약이 불법임에도 무분별하게 판매되고 있다. 임신중절수술 중단이 이어지면 △복통△하혈△출혈△불완전 유산 등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임신중절 약이 지금보다 고가로 유통될 가능성이 있다. 이영규 의사회 수석부회장은 불법 임신중절수술 기승과 관련해 “여성들이 임신중절수술을 하는 극히 일부인 병원으로 몰리거나 임신중절수술 중단 이후 급등한 고가의 수술비를 내고도 질 낮은 진료를 받고 있다”며 “심지어는 해외로 나가 수술을 받는 사람들도 있다”고 심각성을 전했다. 복지부가 개정안을 발표하고 생긴 문제점들에 관해 이일학 연세대 의대 의료법윤리학과 교수는 “근본적으로 낙태죄 폐지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를 법에 반영하지 못하기에 벌어지는 해프닝”이라고 의견을 표했다.


◆더 이상의 혼란은 그만, 법 개정은 어떻게 이뤄져야할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실시한 임신중절 관련 가장 최근 조사에서는 2010년 추정 임신중절 건수는 약 169,000여 건으로 합법 건수는 10829건으로 약 6%에 그친다. 의사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임신중절수술 건수는 연간 100만 건을 넘어선다. 이렇듯 현행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큰 상황에서 임신중절수술 처벌을 강화하는 미봉책만으로는 오히려 임신중절수술의 음성화를 조장할 뿐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강간 혹은 준강간△근친상간△유전학적 질환 등 예외 경우를 제외한 임신중절 행위를 금지하는 모자보건법은 과거에 머물며 현재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모자보건법에서 명시한 기준 이외에도 무뇌아와 같이 생존이 불가능한 기형아가 있지만 임신중절수술 허용 범위에 들어가지 않아 수술을 할 수 없다. 의사회는 이에 “의학적 견지에 맞지 않는 모순이다”라며 “해당 임산부에게는 가혹한 입법미비”라고 전했다. 또 모자보건법에 따르면 강간에 의한 임신임에도 여성은 가해자를 고소한 뒤 피해자임을 입증 받아야 합법적으로 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 문제는 가해자가 강간죄를 부인하는 등 소송이 길어지면 임신중절이 가능한 24주를 넘길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 의사회는 “모자보건법과 형법 규정들을 현실에 맞게 전향적으로 개정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불법으로 유통되는 불법 임신중절 약과 수술에 대한 차단 및 처벌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김동석 의사회 회장은 “우리나라에서 미프진과 같은 불법 임신중절 약이 인터넷 검색으로도 쉽게 찾고 구매할 수 있다”며 “불법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임신중절 약에 대해 단속도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임신중절 약은 의사의 처방과 복용 이후 관찰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철저한 사후 관리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국가 중 30개국에서 ‘사회적·경제적 적응 사유’로 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다. 타국의 사례를 보면 여성 결정권을 인정하면서 △프랑스는 12주 △스위스는 10주 △ 네덜란드와 영국은 24주까지 임신중절수술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와 동일하게 형법상 낙태죄를 규정하고 있는 일본은 모체보호법에서 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다. 의사회는 “현재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상황에서 이번 개정안은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정책”이라며 현재를 고려한 임신중절수술에 관한 기준의 필요성을 표했다. 이에 배재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임신중절이라는 민감한 문제는 충분한 논의를 거쳐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현실에 맞게 법이 개정돼야 한다”며 “환자와 의사 모두가 납득할 수 있고 지킬 수 있는 법을 만들고 이후에 처벌을 논하는 게 순서에 맞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조유진 기자 96yujin@huf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