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적 관점에 비친 스레브레니짜 학살 사건 재조명 2018-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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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문화의 모자이크, 보스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이하 ‘보스니아’로 약칭함)는 통상 유럽에서 대표적인 ‘종교와 문화의 모자이크’로, 유럽의 다양한 종교-문화적 특징들이 한데 모인 수도 사라예보는 ‘유럽의 예루살렘’으로 불린다. 따라서 보스니아 내 민족 문제와 평화 정착 사안은 단순히 발칸반도 일부 지역의 지엽적인 차원을 뛰어넘어 유럽 전체 차원의 광역 개념을 지니고 있다. 보스니아 민족문제는 보스니아의 오랜 역사 경험에 따라 각기 문화·종교적으로 다양한 3개의 주요 민족들(△보스니아 무슬림 △ 정교도 세르비아인 △가톨릭 크로아티아인)을 포함한데서 비롯됐다. 보스니아는 고대 동·서 로마의 분기점이자 동·서 교회의 분리선으로, 15세기 오스만 터키의 유럽 침공 당시에는 서유럽과 이슬람 문화권의 지평선에 자리하는 등 그 민족구성상 특이성은 지난 2,000년 역사와 함께 한 것이다.


◆보스니아 내전의 비극, 스레브레니짜(Srebrenica) 학살 사건
유럽의 모든 종교, 문화를 응축시켜 놓은 보스니아에서의 내전(1992. 03-1995. 10)은 3년 8개월 간 지속됐다. 국제 사회의 높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내전 동안 UN이 보여준 해결 능력 및 난민 대응 정책들은 여러 실망스러움을 안겨줬다. 그 중 첫째는 민족 분쟁 및 대량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해 파견된 ‘UN국제보호군(UNPROFOR: UN Protection Forces)’의 무기력함과 소극적 대응이다. 1992년 2월 21일 ‘UN안보리 결의안 741호(UNSCR(UN Security Council Resolution) 741)’에 의거 파견된 UN국제보호군는 ‘안전지대(Safe Zone)’ 확보 및 평화 정착은 물론 통제권 장악에도 완전히 실패했다. 둘째는 초기 UN의 ‘중립적 군사개입’ 원칙과 경무장 무기 보유(개인화기와 차륜 장갑차) 한계로 인해 UN국제보호군는 치안 임무 이상의 고강도 임무 수행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 결과 주로 구호품 공급과 이재민 지원에 국한된 임무만 수행해야 했다. 세 번째로 사령부의 혼선과 복잡한 행정 체계 또한 UN국제보호군의 임무 수행을 어렵게 했다.
UN국제보호군의 무기력함과 적절한 대응 전략 부재는 곧 UN의 권위 실추와 평화유지군 무용론을 야기했다. 더 나아가 오히려 국제 사회가 대량 학살과 난민 확대를 용인한다는 인식 확산을 불러왔다. 이 총체적 문제점이 드러난 대표적 사건이 바로 1995년 7월 보스니아 무슬림이 세르비아계 민병대인 드리나(Drina) 부대에 의해 대량 학살된 ‘스레브레니짜 사건’이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일어난 최악의 대량 학살로 규정된 스레브레니짜 사건은 1995년 11월 보스니아 동북부의 무슬림 마을인 스레브레니짜에서 8,300여 명의 민간인들이 라트코 믈라디치가 이끄는 세르비아계군에 의해 대량 학살 당한 사건이다. 당시 스레브레니짜의 포토차리(Potočari)에 자리한 UN 안전지대로 피신한 약 30,000명의 보스니아 무슬림들은 네덜란드 평화유지군의 보호를 받았다. 하지만 네덜란드군은 군사적 열세를 이유로 세르비아계에게 마을을 내줬고 곧이어 무슬림계를 향한 대량 학살이 자행 됐다.


◆국제 사회 반성과 현실적 한계
2004년 ‘구(舊)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 International Criminal Tribunal for the former Yugoslavia)’는 ‘스레브레니짜 사건’을 스르프스카(Srpska) 공화국 하의 세르비아 민병대와 군이 그들의 종교 정체성(이슬람)만을 근거로 보스니아 무슬림계를 학살한 제노사이드(Genoside)’라 판결 내렸다. 그리고 2007년 2월 국제사법재판소(ICJ: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또한 구(舊)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의 판결을 재확인했다. 이를 근거로 재판이 진행됐고, 제 2차 세계대전 최초로 전범들에게 집단 학살 죄가 적용됐다.
국제 사회는 그 동안 스레브레니짜 학살에 있어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에 대한 1차 책임에 무게를 실어왔다. 하지만 구(舊)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의 대량학살 규정 이후 내전 당시 보스니아 무슬림 학살을 방조한 혐의를 들어 UN과 당시 보호군에 대한 2차 책임을 묻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지난 2014년 원심에 이어 2017년 6월 27일에 치러진 네덜란드 항소 법원 결과라 할 수 있다. 스레브레니짜 희생자 유족들은 네덜란드 UN국제보호군의 책임을 계속해서 제기해 왔는데, 항소심 판결에서 스레브레니짜 사건에 대해 네덜란드 정부와 군 또한 책임이 있으며, 이에 따른 부분 보상책임 또한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판결이 내려졌다.
UN군으로서 희생자 보호를 하지 못했음을 인정한 판결을 통해 국제 사회는 반성의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여전히 그 한계점 또한 자리하고 있다. UN에선 여전히 러시아의 반대로 인해 이 문제가 공전하고 있다. 세르비아 또한 ‘스레브레니짜 학살 사건’을 제노사이드 즉, 대량학살로 규정하는 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세르비아는 지난 내전에 대한 반성과 함께 다양한 방법을 통해 보스니아를 향한 역사적 화해의 손짓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세르비아가 단순히 외교적 몸짓을 통해 역사 세탁만을 시도하려 한다는 일부 비판을 낳는 배경이 되고 있기도 하다. 세르비아가 주변 국가들과의 역사 화해를 기초로 평화 정착에 성공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이에 기반 한 EU 가입으로 새로운 미래를 구축할 수 있을 지는 주목해야 할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