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점화된 인공임신중절죄 폐지 찬반 논란, 헌재의 결정은?

2018-10-05

고유진 기자 | 95howcuty@hufs.ac.kr

조회수 379 댓글 0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지난달 24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산부의사 A씨가 청구한 헌법소원 사건의 공개변론을 열었다. 지난해 2월 A씨는 현행 형법269조1항(자기낙태죄)와 형법270조1항(의사낙태죄)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청구인 A씨의 이해관계인으로는 법무부가 나섰다. 헌재의 낙태죄(이하 인공임신중절죄) 위헌여부 공개변론은 2012년 이후 약 6년만이다. 이에 해당 법안의 존폐 여부를 놓고 찬반양론이 거세다. 공개변론의 주된 쟁점과 함께 관련 법안의 과거 개정 논의와 타국의 사례를 함께 알아보자.

◆형법과 모자보건법, 인공임신중절죄 관련 현행법은?

인공임신중절은 우리나라 형법이 제정된 1953년부터 범죄로 규정됐다. 현행형법269조1항은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형법270조1항 또한 ‘△의사△한의사△조산사△약제사 등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한 때에는 2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고 정한다. 즉 임신중절을 행한 여성은 물론 임신중절 수술을 행한 의사도 처벌 대상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1973년 모자보건법이 제정된 후 예외적 조건에 한해 임신중절이 허용되고 있다. 현행 모자보건법에 따르면 △대통령령이 정하는 유전적 장애△전염성 질환△강간 또는 준강간△혈족·인척간 임신△모체 건강을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을 때는 인공임신중절이 허용된다. 단, 위 사안 중 하나 이상의 조건에 해당하는 사람도 임신 24주 이내일 경우에만 인공임신중절이 가능하다.

◆태아 생명권과 여성 자기결정권, 헌재 공개변론 쟁점은?

지난달 24일 열린 공개변론에서는 태아의 생명권과 임신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쟁점이었다. 임신 여성의 인공임신중절을 금지하고 이를 범죄로 간주해 처벌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해 헌법에 어긋난다고 위헌 측은 주장했다. 이에 맞서 이미 법률로 규정된 인공임신중절 조건이 있고 태아의 생명권을 무시할 수 없어 인공임신중절죄를 현행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합헌 측의 주장이 서로 첨예하게 대립했다.
인공임신중절죄 위헌을 주장하는 청구인 측 변호인들은 태아의 생명권에 앞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태아는 이미 태어난 사람과 똑같이 인정될 수 없고 태아의 생명권은 사람의 생명권과 달리 제한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우선해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MBN의 보도에 따르면 김수정 청구인 측 변호사는 “태아는 그 생존과 성장을 전적으로 모체에 의존한다”며 “태아는 모체와 별개의 생명체로 동등한 수준의 생명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박수진 청구인 측 변호사 또한 현행 민법이 태아가 출생 이후부터 각종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규정한다는 점을 들어 “우리 법은 태아와 사람을 구별하고 있으므로 태아는 법적으로도 생명의 주체라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강남석 청구인 측 변호사는 “태아의 생명권과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조화롭게 해석해야 한다”며 “인공임신중절죄는 임산부의 자기결정권만 일방적으로 희생하도록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인공임신중절죄 합헌을 주장하는 법무부측은 태아도 독립된 생명권의 주체로 그 존재가 인공적으로 중절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강변했다. 김영두 정부법무공단 소속 변호사는 “태아는 8주만 돼도 중요 장기가 형성되고 16주가 되면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며 “태아는 모체와 별개의 생명체이므로 생명권을 보호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성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서규영 법무부 측 변호사는 “태아의 생명 보호는 중요한 공익”이라며 “임신중절 급증을 막으려면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여성의 자기결정권 때문에 태아의 생명권이 쉽게 부정돼선 안 된다”며 “헌재의 인공임신중절죄 합헌 결정이 6년 만에 바뀌어야 할 정도로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다고 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모자보건법이 인정하는 사유 이외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임신중절을 어디까지 허용할지 입법적으로 재검토해 볼 여지는 있다”며 책임의 몫을 국회로 돌렸다.

◆2012년 헌재와 지난해의 청와대, 과거 관련법 개정과 폐지 논의는?

2011년 11월 헌재는 조산사 송씨(57)가 제기한 헌법소원에 따라 인공임신중절죄 위헌 여부를 논의하는 공개 변론을 열었다. 송씨는 미혼 여성인 김모씨(28)의 요청에 따라 6주차 태아의 임신을 인공적으로 중절시킨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사안을 보도한 경향신문에 따르면 이날 변론의 쟁점은 ‘모자모건법이 허용한 인공임신중절 사유 정도가 형법의 인공임신중절죄 적용에 충분한가’였다. 위헌 측 황종국 변호사는 “태아를 키워서 완전한 인간으로 출산할 것인지 판단할 권리가 산모에게 전혀 없다”며 “무한정 인공임신중절할 권한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절충점을 찾자는 것인데 형법에는 이런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합헌 측 신동일 한경대 교수는 “사회·경제적 사유를 넣는 것은 인공임신중절죄 구조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오히려 모자보건법의 예외 사안을 축소하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헌재 측의 투표 결과는 위헌 측과 합헌 측이 4대 4로 나타나 위헌 정족수 6명을 채우지 못했다. 이에 2012년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공임신중절은 합헌으로 남아있다. 당시 헌재의 인공임신중절 합헌 결정문은 “처벌하지 않거나 가벼운 제재를 가하면 현재보다 인공임신중절이 만연하게 될 것”이라 언급한 바 있다.
지난해 9월 30일 청와대 국민청원 인터넷 홈페이지에 “원치 않는 출산은 여성은 물론 태어난 아이, 국가 모두의 비극으로 여성에게만 죄를 묻고 처벌하는 현행 인공임신중절죄를 폐지해달라”라는 내용의 인공임신중절죄 폐지 청원이 개시됐다. 이 게시물은 한 달 만에 23만 명의 추천을 받으며 화두에 올랐다. 이에 같은 해 11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청와대 홈페이지 영상을 통해 해당 청원에 대한 정부 답변을 전달했다. 조 수석은 “현행 법제는 모든 법적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며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완전히 빠져 있다”고 밝혔다. 또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 외에 불법 임신중절 수술 과정에서 ‘여성의 생명권, 여성의 건강권’ 침해 가능성 역시 함께 논의돼야 한다”며 개정에 대한 정부 측 입장을 밝혔다. 조 수석은 답변 가운데 2010년 이후로 중단됐던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를 시행하기로 약속했으며 해당 조사는 이번 해 10월 일반 대중에게 분석 결과를 공개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인공임신중절죄 폐지한 아일랜드, 인공임신중절 관련 타국 사례는?

지난해 기준 OECD 소속 35개국 중 본인요청에 의해 인공임신중절이 가능한 국가는 총 25개국이다. 10개 국가는 인공임신중절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나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아이슬란드△영국△일본△핀란드 4개국은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하는 반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뉴질랜드△아일랜드△이스라엘△칠레△폴란드 6개국은 사회·경제적 사유로는 인공임신중절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지난달 아일랜드가 국민투표로 수정헌법 제8조에 명시된 인공임신중절죄 폐지를 결정해 위와 같은 분류에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일랜드 내 인공임신중절 허용 문제는 수많은 논쟁을 낳았다. 국민의 대다수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아일랜드는 1985년까지 의사의 처방전 없이는 피임약을 구매할 수 없었다. 또한 1995년까지 이혼이 불법이었을 정도로 유럽 내 가장 보수적인 국가로 손꼽혔다. 아일랜드의 인공임신중절 금지법은 1861년 처음 제정됐다. 폐지가 결정된 수정헌법 제8조는 1983년 국민투표에서 통과됐다. 이는 태아와 임산부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해 성폭행이나 근친상간 등으로 임신한 경우에도 임신한 태아를 인공적으로 중절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다. 불법으로 인공임신중절을 할 경우 최대 14년형이 선고될 수 있다. 중앙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수정헌법 8조가 채택된 이래 아일랜드 국민 약 17만 명이 영국 등지로 건너가 원정 인공임신중절을 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유엔 등 국제기구는 아일랜드에 엄격한 인공임신중절 금지 조항 수정을 권고했다.
한편 2012년 아일랜드에 거주하던 인도계 여성 사비타 할라파나바르의 사망 사건으로 아일랜드 내 인공임신중절죄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가 촉발됐다. 그녀는 임신 중 심각한 요통을 느껴 병원에 인공임신중절을 요청했으나 임신 중인 태아의 심장 박동이 감지된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당해 다음 날 패혈증성 쇼크로 사망했다. 이에 2013년 아일랜드 정부는 임신 중 생명보호법을 제정해 임신부의 생명에 심각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해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했다. 이후에도 인공임신중절 관련법 개정을 향한 움직임은 계속됐다.
아일랜드 정부는 현지시간으로 지난달 25일 인공임신중절 허용을 위한 헌법 개정 여부를 놓고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아일랜드 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 결과 찬성이 66.4%, 반대가 33.6%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아일랜드는 이번 해 중 법안을 마련해 임신 12주 이내 인공임신중절을 자유롭게 허용할 예정이다.

고유진 기자 95howcuty@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