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대인이 만난 세계] Lost in Slovakia

2015-04-13

유혜민 | 90hyemini@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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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에서 슬로바키아로의 히치하이킹.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히치하이커를 위한 웹사이트, HitchWIKI에서 찾은 포인트로 가니 히치하이커가 셋이나 있다. 운 좋게 그 중에 제일 먼저 차를 잡아탔다. 남겨진 히치하이커들에게 엄지를 척. 얻어 탄 차는 중간 즈음에 있는 죄르(Gyor)까지 가는 차다. 수제햄버거까지 얻어먹었다. 부다페스트 날씨가 좋더니 운도 따라오나 보다. 생각보다 시간이 단축되어 죄르를 둘러보고 다시 고속도로로 나왔다. 그런데 두 시간 동안 팻말을 들고 있어도 아무도 서지 않았다. 곧게 뻗은 고속도로에서 빠져 나와 차가 멈출 법한 도로로 자리를 옮겼다.

히치하이킹 6시간째,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여전히 날 태우겠다는 차들은 없었다. 슬로바키아와 가장 가까이 맞닿은 국경을 넘기 위해 마을 북쪽으로 향했다. 비를 맞으며 1시간을 걸어 주유소를 발견했다. 운전자들 한 명 한 명에게 태워줄 수 있는지 물어봤다. 그렇게 열 명 즈음 보냈을까, 인상 좋은 이디나(Iydana)의 차를 타고 슬로바키아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이디나는 국경근처에 살고 있어서 브라티슬라바(Bratislava)까지는 또 다른 차를 찾아야 했다. 그런데 지나가는 차가 거의 없다. 이디나 말로는 슬로바키아인들이 히치하이커를 무서워한다던데. 이러다 길에서 노숙할 판이다.

가까운 마을 까지는 2시간 거리. 그래도 걷기엔 자신이 있으니 씩씩하게 걸어봤지만, 도착한 마을에도 별게 없다. 지도를 확인해 봐도 여기는 조용한 전원마을일 뿐. 가도가도 끝도 없는 판박이 주택들만이 날 비웃듯 쳐다본다. 해가 저문 후 쌀쌀해지고, 차도 드물어진다. 끝없는 시골길을 도보로 여섯 시간, 멈춰서는 차나 버스정류장은 코빼기도 볼 수 없다. 그나마 노숙을 시도할 만한 가까운 주유소는 2시간을 더 가야 한다. 이러다가는 브라티슬라바까지 60km를 이틀 꼬박 걸어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히치하이킹 10시간째, 그나마 가끔씩 지나가는 차들조차 시속200km로 스쳐가 버리는, 가로등조차 없는 시골 도로를 걸으며 많은 생각이 오간다. 내 여행이 옳은 것 일까. 인적 드문 컴컴한 시골마을에 울려 퍼지는, 사람만한 개들 몇 십 마리가 이방인을 향해 짖는 소리가 공포스럽다. 한국의 따뜻한 방이 떠오르며, 그리움과 피곤함에 집어삼켜진 몸을 길바닥에 던져놓고 앉아 오열할 뻔 했다.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진 듯 한 느낌이 들었다.

결국 죽기살기로 길을 막고 서서 도로 한 복판을 오가며 차들마다 붙잡고 절박함을 구구절절이 토해낸 후에야, 피터(Peter)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기차역에 찾아 갈 수 있었다. 히치하이킹 12시간 째, 목적지 브리티슬라바 기차역에 내렸다. 온몸의 긴장이 풀리고 안도감이 몰려왔다. 브라티슬라바의 저녁은 굉장히 쌀쌀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우니, 오늘 히치하이킹을 하며 겪은 일들이 영화처럼 스친다

나참솔(상경.경제 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