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청원제도, 그 목적의 변질과 해결책

2018-06-21

홍주연 기자 | 95m52535@hufs.ac.kr

조회수 1086 댓글 0

청와대 국민청원은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 철학이 담긴 국민 소통 정책이다. 이는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백악관의 시민청원 홈페이지인 ‘위 더 피플(We the People)’을 벤치마킹하자는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8월 19일 도입된 이 제도는 현재 도입 9개월 차를 맞았다. 직접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취지 하에 개설된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벌써 18만 2000개가 넘는 청원 글이 올라왔다. 이는 하루 평균 7백 건에 육박하는 수치로 국민청원제도가 뜨거운 반응을 낳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취지가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극단적인 여론형성과 물타기로 인한 제도의 오용 결과다.

◆국민청원 제도란?

국민청원제도는 국민들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청원 진행 방식은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청원이 게시되면 국민들이 이를 보고 추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30일간 20만 명 이상의 국민들이 해당 청원을 추천할 경우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각 부처 장관△대통령 수석 비서관△특별보좌관 등)는 30일 이내에 공식 답변한다. 청원의 내용은 △정치개혁△외교·통일·국방△일자리△미래△성장동력△농·산·어촌△보건·복지△육아·교육△안전·환경△저출산·고령화대책△행정△반려동물△교통·건축·국토△경제민주화△인권·성평등△문화·예술·체육·언론△기타 등 17가지로 범주화 돼있다. 국민청원제도 운영 원칙에 의하면 사상과 표현의 다양성은 존중되나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은 제한된다. 또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 규정’,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의 ‘정책규정’ 등을 위반하는 게시물은 삭제될 수 있고 △자극적이고 혐오스러운 내용△비속어△폭력적 내용△특정 대상을 비하하거나 차별을 조장하는 내용△개인정보 유출을 비롯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내용△반복되는 내용 등은 제재될 수 있다. 다른 규정으론 한 이용자가 동일한 청원을 중복 게시 할 수 없으며 한번 작성된 청원은 수정 및 삭제가 불가능하다. 이는 최초 청원내용이 변경되는 것을 방지해 청원참여자의 의견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현재까지 추천건수가 20만 건을 돌파해 청와대의 공식 답변을 들은 청원은 25건이다. 답변이 완료된 청원은 △주취감형(술 마시면 형벌 감형) 폐지△권역외상센터 지원 강화△초·중·고 학교 페미니즘교육 의무화△김보름, 박지우 선수의 자격박탈△국회의원 급여를 최저시급으로 책정 건의△GMO 완전표시제 시행 촉구 등이 있다. 답변 대기 중인 청원도 8건으로 △잦은 미세먼지 발생에 대한 중국에 대한 항의△삼성증권 시스템 규제와 공매도 금지△몰래카메카 범죄 처벌 강화 등이 있다. 이 중 주목을 받는 사안들은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정도로 국민청원 제도의 파급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국민청원 제도의 순기능

국민청원을 향한 뜨거운 관심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본 제도가 갖는 의미는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 청와대에서 직접적인 피드백을 제공하는데 있다. 지난해 9월 청원답변 1호로 올라온 사안은 ‘청소년 보호법을 폐지하자’였다. 이 청원은 총 40여만 명의 추천을 받은 사안으로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조국 민정수석△김수현 사회수석이 영상을 통해 답변했다. 정부관계자들은 해당 사안의 개념 설명과 저변에 깔린 구조적인 문제를 진단하는 것으로 답변을 시작했다. 이어 복합적인 접근이 필요한 사안인 만큼 소년법에 있는 10가지 종류의 보호처분을 활성화시켜 학생들의 제대로 된 사회 복귀를 이루는 것이 제일 바람직하다는 말로 영상을 마무리했다. 청원답변 2호로 올라온 ‘낙태죄 폐지’에서 조국 민정수석은 “이번 청원을 계기로 정부는 법제도 현황과 논점을 다시 살펴보게 됐다”며 “청원에 의해 여성가족부와 보건복지부, 청와대 법무비서관실, 여성가족비서관실, 국민소통수석실 담당자가 세 차례에 걸쳐서 쟁점을 검토하고 토론을 한 결과 2010년 이후 실시되지 않은 임신중절 실태조사를 재개 할 예정”이라고 답변했다. 또한 민정수석은 “정부차원에서 임신중절 관련 보완대책을 다양하게 추진 할 것이다” 며 “여성가족부 산하의 건강가정지원센터를 통해 당사자를 지원하는 전문 상담 또한 실시 할 예정”이라고도 말했다.

◆국민청원 제도의 역기능

국민청원 제도의 파급력이 확대되면서 청와대가 해결하기 어려운 다양한 청원들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현재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한 청원은 조두순 출소 반대 청원이다. 61만 명이라는 최다인원 참여 청원임에도 청원의 내용을 설명하는 개요 란에는 타당한 논리나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채 “제발 조두순 재심다시해서 무기징역으로 해야 됩니다”라고 적혀있다. 해당 청원에 대해 조국 민정수석은 “현행법상으로 조두순에 대한 재심은 불가능 하며 분노가 크다고 해서 법을 무시할 수 없다”고 답했다. 또한 “필요한 경우 전자발찌 부착기간 연장, 전담 보호관찰관 지정을 통해 조두순 출소 이후에 정부가 철저한 관리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두 번째로 많은 동의를 얻어낸 청원은 ‘김보름·박지우 선수의 자격박탈과 적폐 빙상연맹의 엄중 처벌에 대한 청원’이다. 해당 청원에 김홍수 교육문화비서관은 “스포츠공정인권위원회를 만들어 스포츠 비리 문제에 대한 정책 대안을 만들 것”이라며 “여자 팀 추월 사태 또한 진상 조사를 벌여 국가대표 선발과 관리 문제도 점검 하겠다”고 답했다. 위에 언급된 두 청원 모두 특정인을 겨냥한 청원에 해당한다.
이 외에도 △대한빙상연맹에 대한 비판과 함께 동계올림픽금메달리스트 이승훈 선수의 금메달을 박탈하자는 청원△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번역자 박지훈의 왜곡된 번역을 사유로 번역자 자격을 박탈해달라는 청원△남북정상회담 이후 평양냉면 식당인 ‘옥류관’을 우리나라에도 개설해 달라는 청원△북한 맥주인 ‘대동강 맥주’를 다시 수입해달라는 청원 등 사사로운 청원이 무분별하게 게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무분별한 청원에 대해 청와대 측은 일부 청원에 “청와대는 개별 사건에 대해 수사 지휘나 지시를 하지 않는다”며 “명예훼손죄나 모욕죄는 반의사불벌죄 또는 친고죄로 피해자의 고소나 처벌 의사가 있어야 한다”라는 답변을 내놨다.

◆청와대 국민청원제도를 향한 전문가의 일침

청와대 국민청원제도에 대해 우리학교 이재묵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민청원제도는 대의 민주주의가 가진 여러 문제들에 대한 (직접민주주의적) 대안 또는 보완책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자칫 민주주의가 지나친 즉흥주의, 다수결 정치, 중우정치 그리고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로 흘러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도 제기될 수 있다”며 “특히, 청원에 필요한 숫자만 채우면 청원요건이 설립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가 숙의·공론화 과정보다 수 대결로 비출 수 있는 문제도 동시에 존재한다고 생각 된다”고 말했다. 또한 “이런 관점에서 청원에 기반 한 다수결의 횡포가 소수에 대한 억압으로 진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 한다” 며 “모든 문제를 청와대의 국민청원으로 해결한다거나 오직 거기에만 기댈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유권자나 시민에게 제공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교수는 “물론 이것이 결국 우리의 기존 정치시스템 (소위 적폐로 불리는)에 대한 누적된 불만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모든 문제를 대통령이 그리고 청와대가 풀어야 한다는 것은 상당히 잘 못 된 생각이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 비유로 “모든 사람들이 감기 등 작은 병을 갖고도 모두 대학병원 또는 상급 의료기관으로 간다면 하급 의료기관이나 동네병원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들며 “정치나 사회현안도 정치나 행정시스템의 각 급 또는 수준에 맞게 해결 기구 또는 제도를 갖춰야 우리 정치사회 시스템이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국민청원제도의 해결책을 몇 가지 제시했다. 우선 “지방자치단체에서의 주민참여 방안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할 주민청원제도의 도입”을 주장했다. 이 교수는 “국민청원이 대표자 중심 대의제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과 불만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선출직 정치엘리트들과 행정관료들의 자기성찰과 반성도 중요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 교수는 “지나치게 중앙 중심적 논리와 다수결주의 논리에 입각해 있는 국민청원제도에 대한 비판적 성찰 또한 동시에 필요하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균형을 위한 시민 스스로의 고민도 해결책이 된다”며 “이 고민 속에는 즉흥적인 마녀사냥 식 재판을 일삼는 국민청원에서 벗어나 무죄추정 원칙에 입각한 사실관계 여부 확인 및 법과 원칙에 따른 사안 판단이 포함돼야한다”고 당부했다.

홍주연 기자 95m52535@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