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우울증 환자 80만 시대...무엇이 그들을 괴롭히는가 2018-05-24
김초영 기자 | 96_ivana@hufs.ac.kr 조회수 1156  댓글 0
지난 2016년,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대학생 신 모 씨가 서울 성북구 종암동의 고시원 앞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그는 군 제대 후 휴학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만화방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계속되는 생활고와 취업난을 비관해 투신자살을 택했고 이는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또한, 지난해 10월에는 대학생 지 모 씨가 서울 동작구 자택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조사에서 발견된 유서에 따르면 그는 계속되는 취업 실패에 큰 좌절감을 느꼈으며 평소에도 우울증을 겪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우울증으로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면서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청년 사회에 짙게 드리운 우울증과 그 증상, 이에 대한 원인·사회적 배경 및 해결방안 등을 알아보자.

◆나도 우울증?

서울대학교병원 의학 정보에 따르면 우울증, 즉 우울장애는 의욕 저하와 우울감을 주요 증상으로 다양한 정신·신체적 문제를 일으켜 일상 기능의 저하를 가져오는 질환이다. 우울 장애는 △감정△생각△신체 상태△행동 등에 부정적 변화를 일으키는 질환인 만큼 한 개인의 전반적인 삶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이는 일시적인 우울감과는 달리 개인의 의지만으로 극복하기 힘들다.
우울증의 증상은 크게 정신적 증상과 신체적 증상으로 나눌 수 있다. 정신적 증상으로는 우울감과 삶에 대한 흥미 및 관심 상실이 있다. 대다수의 우울증 환자는 삶에 대한 에너지 상실을 호소하는데, 이런 경우 학업 및 직장에서 정상적인 업무에 장애를 느끼고 새로운 과업을 실행할 동기를 갖지 못한다. 우울증의 신체적 증상으로는 수면장애가 있다. 아침까지 충분히 잠을 못 이루고 평소보다 일찍 깨거나 밤사이 주기적으로 계속 깨는 경우에 해당한다. 식욕 감소와 체중 저하 또한 신체적 증상 중 하나이다. 별다른 이유 없이 식욕이 감소하고 식사량이 평소의 절반 이하로 줄어 체중이 감소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일부 환자는 식욕이 증가하고 수면이 길어지는 비전형적인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 모든 증상이 악화돼 발생하는 가장 심각한 결과는 자살 사고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의 약 66%는 자살을 생각하고 그중 10%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다.

◆청년들의 우울증

보건복지부가 이번 해 발표한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8~29세 남자의 1년 우울증 유병률(지난 1년간 우울증을 경험한 비율)은 3.1%였으며, 18~29세 여성은 2.9%로 남녀 모두 전체 연령대 중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이는 전체 인구의 1.5%에 달하는 수준이며 연간 감기 환자 수(약 83만 명)에 버금간다. 또한 자료에 의하면 유일하게 20대 남녀 모두 지난해 대비 우울증 유병률이 증가했다. 이는 전체 성인 남자(18세~64세)의 유병률이 1.8%에서 1.2%로 떨어지고, 여성 또한 4.2%에서 1.9%로 하락한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역학조사를 총괄한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교수는 이러한 결과에 대해 “취업 고민, 스트레스, 불안 등 다양한 사회적 요인이 결합한 결과”라며 “특히 취업 준비생들이 고위험군”이라고 진단했다. 불안정한 사회가 청년들에게 매우 큰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3월 정부는 청년 실업률이 11.4%로 사상 최고치를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전체 실업자 중 43.8%가 청년(18~29세)으로 전체 실업자의 절반이 청년인 셈이다. 실업뿐만 아니라 갖은 사회적 상황은 청년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병원을 찾을 수 없다. 바로 ‘기록’ 때문이다. 최근 들어 많은 기업이 건강 심사 평가 위원회를 통해 입사 지원자들의 의료 자료(병원 진료 및 투약한 약들의 기록)를 조회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이력서에 ‘과거 000 질병을 앓았던 적이 있으십니까?’라는 질문 정도로 병력 여부를 확인을 했다면, 이제는 직접 건강 심사 평가 위원회를 통해 지원자들의 진료 기록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따라서 대다수 청년은 자신이 정신 질환을 앓고 있음을 인지하더라도 진료 기록으로 인한 불이익의 가능성 때문에 쉽사리 치료를 받지 못한다. 실제로 앞서 언급됐던 역학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신 의료서비스 이용률은 15.3%로, △미국 39.2%△호주 34.9%△뉴질랜드 38.9%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정신 질환 환자가 병원을 처음 방문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또한 우리나라는 84주로 미국 52주, 영국 30주인 점과 비교하면 최초 진료의 시점이 상당히 늦다. 이렇듯 진료를 받으러 가지 않거나 늦게 진료를 받으러 가는 경우, 초기 진료의 시점을 놓쳐 우울증의 완치가 어려워진다.

◆우울증 극복방안 및 사회적 여건 마련의 필요성

그렇다면 우울증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하규섭 서울대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최근 효과적인 우울증 치료법들이 많이 개발됐기 때문에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적절한 진료를 받는다면 우울증은 극복할 수 있다”며 “일상생활에서 가족, 친구 같은 주변 사람들에게 터놓고 얘기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을 권한다”고 전했다. 이와 더불어 “우울증에 걸린 사람에게 가볍게 던진 위로의 말이 자신들의 나약함이나 결점을 더 부각할 수 있다”며 “우울증의 원인과 증상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서툰 위로의 말보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것이 낫다”고 전했다.
근원적인 우울증 치료도 중요하지만, 청년들을 위한 사회적 여건을 마련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최근 정부는 높은 정신과 진료의 문턱을 낮추는 데 초점을 두고 여러 방안을 마련했다. 지난해부터 보건소를 포함한 전국 224곳의 정신건강증진센터에 정신과 의사를 배치해 무료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조치로 정신과 치료 기록이 남는 것을 두려워하는 청년들의 부담을 덜고자 했다. 이와 더불어 최대 60%였던 정신 질환 치료 본인 부담률을 20%까지 낮추고, 재발을 이유로 보험회사가 정신과 진료 기록 보유 환자의 가입을 제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안 또한 마련했다. 더 나아가 내과나 가정의학과 등 동네 1차 의원도 정신 환자를 식별할 수 있도록 선별검사 도구를 개발해 보급하기로 했다.
지난 11월 보건복지부는 서울시와 정신보건사례 관리시스템 구축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보도 자료에 따르면, 정신보건관리 시스템은 1999년, 우리나라 최초로 지역사회 정신보건사업 수행을 위해 개발·운영된 통합 전산 프로그램이다. 이 전산프로그램은 지역사회 시민들의 정신 건강 사례들을 전산화해 시민들의 정신 건강 상태를 파악하고 정신 보건 정책 개발과 수행평가에 필요한 근거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사회적 여건 마련 및 정책적 지원 속에서도 여전히 청년사회에 드리워진 그늘은 어둡기만 하다. 나날이 심화하는 문제들 속에서 청년세대의 짙은 우울함에 사회가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해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김초영 기자 96_ivana@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