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로 기승하는 사이버 성범죄 2018-05-24
고유진 기자 | 95howcuty@hufs.ac.kr 조회수 596  댓글 0
◆범인 잡기 어렵고 사진 삭제도 녹록치 않아··· 사이버 성범죄의 정의와 문제 현황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이하 한사성)에 따르면 사이버성폭력이란 카메라 등의 매체를 이용해 동의 없이 타인의 신체를 촬영한 후 촬영물을 △유포 △유포협박 △저장 △전시하는 행위를 말한다. 피해자를 미디어, SNS 등 사이버 공간에서 성적으로 괴롭히는 행위 또한 사이버성폭력으로 정의된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과 한국사이버성폭력 대응센터가 제작한 ‘사이버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한 안내서’에 따르면 사이버 성폭력은 가해행위별 유형에 따라 △촬영 △유포/재유포△유포협박 △유통/소비 △사이버 공간 내 성적 괴롭힘으로 분류된다. 그 중 대학가에서 논란이 됐던 지인 사진을 이용한 음란물 제작 범죄는 유포/재유포 항목에, 단톡방 성희롱 사건은 사이버 공간 내 성적 괴롭힘에 해당한다.
최근 사이버 성범죄가 카카오톡(이하 카톡), 텀블러 등 개인의 사회관계망서비스(이하 SNS)을 통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지인 사진을 이용한 음란물 제작 범죄는 지인의 사진과 신상 정보를 합성을 해주는 SNS 계정에 가해자가 합성을 의뢰하면 해당 계정 주인이 음란 합성 사진을 제작하는 형태다. 이 모든 과정은 온라인상에서 비밀리에 진행되기 때문에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즉각 알기 어렵다. 법망을 피하기 위해 SNS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하거나 빠른 시일 내 삭제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또한 합성 사진이 인터넷상에 유포되기 시작하면 떠도는 사진을 일일이 제거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음란물 합성 범죄뿐만 아니라 단톡방 성희롱 범죄의 경우에도 방을 삭제하면 가해자들이 나눴던 대화가 유실돼 증거 확보가 어렵다. 따라서 내부 고발자의 제보에 의존해 사건이 접수되다 보니 주동자 색출 및 사건 예방에 난항을 겪고 있다.


◆당사자가 모르는 사이에··· 지인 사진 이용해 음란물 제작
지인 사진을 이용한 음란물 제작 범죄는 최근 SNS에서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유형의 사이버 성범죄다. 지난해 6월 경북대 페이스북 페이지 대나무숲에 의하면 제보자는 “가해자가 친구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성인배우 나체사진과 합성해 특정 사이트에 유포했다”며 “친구는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그 사진을 소장하고 있고, 언제 어디에서 사진이 유포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매일 인터넷을 뒤지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지난해 12월 한양대학교 재학생 B씨는 지인의 사진을 음란물에 합성해 SNS상에 유포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다. 지난 1월 ‘한양대 남학생의 지인사진을 이용한 음란물 제작사건 피해자모임’ 페이스북 페이지에 게시된 사건일지에 따르면 이 사건은 B씨가 분실한 휴대전화를 한 학생이 습득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습득자는 B씨의 휴대전화 갤러리에서 음란 합성 사진을 목격한 후 피해자들에게 피해 사실을 전했다. 이후 피해자는 습득자와 만나 B씨의 휴대전화 속에서 지인사진을 이용한 음란물 합성 의뢰 메시지를 발견했다. 합성 의뢰 메시지엔 B씨가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고 이를 바탕으로 밝혀진 피해자는 총 16명에 이르렀다. 학교 측은 “징계위원회에서 B씨에 대해 퇴학 조처가 내려졌다”고 밝혔다. 가해자는 이후 이어진 재심신청 기간에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고 퇴학 처리됐다.


◆피해자 “심각한 모욕감 느껴”··· 연이어 터진 단톡방 성희롱 사건
앞서 대학가는 단톡방 성희롱 사건으로 홍역을 치렀다. 2015년 고려대에서는 해당 대학에 재학 중인 남학생 8명이 주변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약 1년간 단톡방에서 성희롱한 사실이 밝혀졌다. 가해자들은 단톡방에서 △여성 성희롱 및 성적대상화 △성폭행 모의 △지하철에서 도둑 촬영한 사진 게시 △여성혐오적 발언을 주고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해 서울대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대 총학생회 산하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이하 학소위)와 아우토반 피해자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그해 7월 서울대 인문대 아우토반(독문과)의 남학생 전체로 이뤄진 단톡방에서의 성희롱 발언에 대해 ‘서울대 인문대학 카톡방 성폭력 고발’ 대자보를 공개했다. 학소위 페이스북 페이지에 게시된 대자보에 따르면 남학생 8명은 2015년 2월경부터 8월경까지 동기 여학생을 포함한 다수의 여성을 대상으로 성희롱 발언을 해왔다. 가해자들이 단톡방에서 주고받은 내용은 △동의 없는 성적 대상화 △여성 물상화 △기타 여성혐오적 발언 등으로 그 수위가 무척 높으며 피해자에게 심각한 모욕감을 안긴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우리학교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해 7월 영어대학 성희롱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진조위)가 ‘한국외대 영어대학 성희롱 진상조사위원회’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최종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사건은 우리학교 페이스북 페이지 대나무숲에 익명으로 게시되며 공론화됐다. 진조위에 제보된 성희롱 사건들의 총 혐의자는 37인으로 이중 직접적인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혐의가 있는 자는 12인이다. 이들은 △성행위를 부추기는 발언(사건5, “농교가면 할 수 있다”) △피해 학생의 성적 대상화 발언(사건9, “피해자의 특정 신체부위가 뛰는 걸 봐라”) △피해 학생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발언(사건10, “피해 학생이 내 밑에 깔려 있다”) 등 피해자에게 성적으로 모욕적인 발언을 해온 것으로 조사됐다. 학교 측은 4월 25일 성희롱 조사 위원회를 발족했으나 관련자 대부분이 군 복무 중으로 즉각적인 면담이 어려웠다.
◆보완·개정 요구··· 사이버 성범죄 어떻게 처벌되고 있나
지인 사진을 이용한 음란물 제작사건 등 사진 합성 기술과 연관된 사이버 성범죄의 경우 관련 현행법이 마련돼 있지 않다. 음란 사진 제작에 대한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현행법상 가해자가 사진을 유포했다는 증거가 없을 경우 ‘음화제조’ 정도의 혐의만 적용된다. 형법 제244조(음화제조)는 음란한 물건을 △제조 △소지 △수입 △수출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여파(활동가명) 한사성 사무국장은 “음란물 사진 합성도 사이버 성폭력의 범주 안에서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적용을 받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성평등기본법과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의하면 성희롱은 ‘업무 연관성’이 있거나 ‘(고용상) 불이익’ 등이 있어야 처벌이 가능하다고 규정돼있다. 한편 특정한 업무나 고용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대학생 사이 단톡방 내 언어 성희롱은 형법상 ‘모욕죄’ 또는 ‘명예훼손죄’를 적용할 수 있다. 최민선 은하수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모욕죄는 공연히 사람을 모욕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로(형법 제311조), 모욕죄가 성립하려면 특정인에 대한 모욕적 표현, 공연성 등이 인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명예훼손죄는 공연히 사실(또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인데(형법 제307조),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사실(또는 허위의 사실)의 적시 △공연성 △특정인에 대한 사회적 가치평가의 저하 등이 인정돼야 한다”고 전했다. 공연성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다. 모욕죄와 명예훼손죄 모두 공연성의 인정을 중요한 지표로 간주한다. 최 변호사는 “판례는 사실을 적시한 상대방이 특정된 1인인 경우에도 그 자가 불특정 또는 다수에게 전파할 가능성이 있으면 공연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는 단톡방에서 피해자를 성희롱한 혐의로 무기정학된 것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한 대학생 A씨에 대해 “남학생들의 행동은 모욕죄가 될 수 있다”며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 또한 “A씨 등 가해 남학생들이 채팅방에서 한 표현은 피해자들의 인격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전파 가능성 등을 볼 때 형법상 모욕죄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개정안 발의·학교와 학생들 자정 노력 이어져··· 사이버 성범죄 처벌 어떻게 보완하고 있나
지난 2월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인 사진을 이용한 음란물 제작 행위를 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의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현행 성폭력처벌법에는 이러한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없었다. 민 의원은 “이런 행위들은 심각한 성범죄이자 인권침해 행위로, 그에 상응하는 처벌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지난해 5월 성희롱의 개념을 확대하는 내용의 ‘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처벌법)전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기존 법안에서 문제가 됐던 지위 또는 업무관련성, 공연성 등의 항목을 배제하고 상대방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줬다면 처벌대상이 되도록 했다. 이는 그간 논란이 됐던 카톡방, 게임 채팅창 등에서의 성적 발언을 처벌 대상으로 포함해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한다. 이 의원은 “성희롱을 통해 적지 않은 피해자들이 고통과 상처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 법에서는 성희롱을 경미한 성적 언어나 행동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고 밝히며 “최근 법원에서 성희롱의 범위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에 대한 적법, 위법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적 처벌 분야의 보완·개정과 함께 우리학교 또한 자체적인 학교·학생 차원의 대처를 시행하고 있다. 우리학교는 지난해 총장 직속기구로 성평등센터를 신설했다. 우리학교 관계자는 “성범죄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면서 학교 내부에서도 필요성을 인지해 부서를 독립시켰다”고 설명했다. 우리학교 제52대 총학으로 당선된 선거운동본부 ‘푸름’ 또한 선거 전 배포한 정책 자료집 인권 분야에서 2. 성폭력사건진상조사위원회 및 징계위원회 관련 학칙 개정, 3. 성평등센터·학생상담센터 지원 확대 및 모니터링 등의 정책을 통해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공동체적 책임의식을 나누고자 하는 의지를 밝혔다.


고유진 기자 95howcuty@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