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인물 ‘윤덕민’교수를 만나봤다.

2018-04-12

홍주연 기자 | 95m52535@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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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자랑스러운 외대인상’에 윤덕민(사회•정외 79) 전 국립외교원장이 선정됐다. 윤 교수는 2013년 5월 국립외교원장으로 취임해 지난해 5월까지 만 4년 동안 국립외교원장을 최초로 연임했다. 윤교수는 “유일하게 자랑할만한것이 국립외교원장 중 최장기 임기”라고 웃으며 말했다. 윤교수는 국립외교원에 27여 년간 몸 담그며 수많은 외교관을 육성 했고, 현재 우리학교 석좌 교수직을 맡고 있다.

Q1. 이번 해 ‘자랑스러운 외대인’에 선정 된 소감이 어떤가요?

솔직히 말하면 기라성 같은 선배들도 많고 동문들 중에 대단한 분도 많은데 내가 이걸 받을 자격이 있는 지가 고민이었어요. 지금까지 내가 자랑스러운 외대인이 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어서 고사했었죠. 결국엔 이 상을 앞으로 더 우리학교를 빛낼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라는 의미의 채찍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받으면서도 굉장히 쑥스럽고 부담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많은 상을 받아보진 못했지만 막상 외대인 상을 받고 나니 개인적으론 가장 영광스럽고 의미가 있는 상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Q2. 언제부터 국제정치분야 전문가로서의 커리어를 꿈꾸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처음부터 국제정치 학자가 되려던 생각은 아니었어요. 그도 그런 것이 1979년도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10·26 사건이라는 박정희 암살사건이 일어났어요. 이어서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났고 1980년에는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서 거의 제대로 된 대학생활을 못했어요. 당시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는 사회풍조도 아니어서 저는 오히려 연합 봉사서클활동에서 야학, 불우이웃 돕기 등 교외활동을 재미있게 했어요. 그러다 어느덧 4학년이 돼 진로 고민을 하다가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유학을 갔죠. 그 길로 학자의 길을 가게 됐어요. 그렇게 국제정치를 연구하게 됐습니다.

Q3. 국립외교원은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어떤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 설명부탁 드립니다.

국립외교원은 두 가지 일을 합니다. 하나는 중장기적 외교정책 연구 기능과 싱크탱크(think tank)로의 역할이에요. 2013년까지 국립외교원이 외교안보연구원으로 불리던 시절에는 연구기능을 주로 수행했어요. 한국경제신문이 시행하는 싱크탱크 조사에서 국립외교원은 10년 째 우리나라 일등자리 놓친 적이 없어요. 이렇듯 국립연구원의 싱크탱크 위상은 매우 높아요. 국제적으로도 명성 있는 기관인데, 제가 원장으로 있었던 시절에 싱크탱크 글로벌 톱10 진입을 목표했지만 아직은 20-30위에 머무르고 있어요.

국립외교원의 두 번째 기능은 외교관 교육기능이에요. 2013년에 국립외교원으로 전환되면서 더 강화된 부분이에요. 예전에는 외무고시를 통해 선발하는 외교관이 주를 이뤘던 것에 반해, 전환 이후에는 양성하는 외교관을 중시해요. 국립외교원 입성 후 1년 동안의 스파르타식 교육을 통해 외교인재를 육성해요. 저는 원장 4년을 포함해 8년 이상 국립외교원 전환과정 TF(Task Force)의 팀장으로서 국립외교원 전환과정 전반에 관여했어요. 기존엔 일반전형으로만 외교관을 선발하다 보니 외교관들이 지역 특수성 이해가 부족하다는 문제점이 있었어요.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전문성을 가진 외교관을 뽑자는 취지로 △특수지역 언어 전문 인력△국제법 전문 인력△환경 전문 인력 세 부류의 선발을 도입했어요. 제가 은퇴 한 후 일반전형으로 환원돼 아쉬움이 크게 남아요. 외교엔 전문성이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고시에 대한 명예가 너무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일은 90년대 초반에 남북한 핵협상을 했던 것이에요. 그 당시에 임동원 원장, 공로명 원장을 모시고 판문점 회의를 다녔어요. 그 당시에 남북회담을 보면서 북한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어요. 그때부터 북한 핵문제를 주시해왔어요. 그러면서 이상과 현실은 정말 다르다는 것을 느꼈죠. 외교안보연구원에서 국제 안보 분야를 포함해 여러 분야를 섭렵했어요. 그렇게 배운 것 중에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은 점은 우리나라는 항상 반쪽의 나라라는 사실이에요. 사실 학문의 세계는 나눠질 수가 없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이에 대한 시각도 바뀌어야 하는 현실이에요. 쉽게 얘기하면 우리나라의 모든 분야는 보수의 나라가 됐다, 진보의 나라가 됐다를 반복해요. 특히 그 기준은 북한을 보는 시각에 따라 나눠지는 경우가 많은데 저처럼 북한에 대해 현실주의적 입장을 가진 사람은 수구꼴통이 되더라고요. 27년간 공직에 있으면서 느낀 점은 진보, 보수의 나라가 아닌 우리나라를 하나로 만드는 리더십이 아주 절실하다는 것입니다.

Q4. 현재는 어떤 일을 하는지, 또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현재는 LD학부 소속 석좌교수로 일하고 있어요. 김인철 총장의 배려로 석좌교수직으로 올 수 있었어요. 다시 여길 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굉장한 영광입니다. 지하철을 타고 첫 출근을 하던 날 외대앞역에 내린 순간에 30여 년 전의 추억이 되살아나며 ‘돌아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LD학부에 소속돼 있으면서 LD학부생들에게 특강과 대학원 강의를 하고 있어요. 또△전직 외교부 차관△통일부 차관△외교안보 수석 분들과 한 달에 한 번씩 토론 모임도 갖고 있어요. 만나서 최근 정세나 이런 것들을 가지고 좋은 대안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취지에서 토론을 합니다. 그 외에 조선일보 정기 칼럼리스트로 활동, 여러 인터뷰 등을 하며 지내고 있어요.

앞으로는 학문적인 연구를 하고 싶어요. 이전에는 너무 정책적인 일만 해 와서 아쉬웠어요. 아직 엄두를 못 내고 있지만 우리나라 외교정책, 외교사에 대한 책을 쓰고 싶어 자료를 모으고 있는 단계에요. 또한 스터디 모임, 연구 모임을 통해 중진 학자들을 길러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외교안보 분야에는 30~40대 학자들이 많이 없는 점이 아쉬워요.

Q5. 국제정치학자로서의 길을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우리나라외교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아무래도 한소 수교, 한중 수교를 뽑아야죠. 유학에 가 있던 시절 ‘미국외교정책’ 수업을 듣는데, 교수가 미국의 외교정책은 소련이 하는 것을 반대로 하는 일이라고 설명한 것이 참 재미있었어요. 과거엔 우리 외교의 80~90프로가 북한에 관련된 것이었어요. 그 때 우리나라의 외교정책은 북한의 반대였죠. 그만큼 소모전을 많이 벌였어요. ‘한소 수교’, ‘한중 수교’ 라는 건 정말 어떤 의미에서는 북방외교에요. 북방외교는 박정희 전 대통령 말부터 시행됐는데, 이걸 가장 잘 수행한 정권이 노태우 정권입니다. 노태우 정권 때 냉전이 붕괴되는 틈을 활용해서 동구권과 수교를 시작했어요. 헝가리와 수교를 시작하면서 결국 소련과 수교도 가능했어요. 중국은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 수교를 해야지만 한국과 수교를 할 것이다”라며“한국이 최후가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는데, 그런 중국과 한중수교를 하게 한 당시 노태우 정권의 외교정책은 정말 성공적이었어요. 모스크바-베이징을 거쳐 평양에 들어간다는 것이 성공적인 북방외교의 모습이죠. 우리는 한중 수교, 한소 수교를 통해 평양으로 가서 북한이 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서에 사인을 하게 만들었죠. 이후 북한이 핵개발로 반격을 하긴 했으나 이때가 우리나라 현대 외교사에서 가장 빛을 발하던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Q6. 현재 (석좌교수직에서 보는) 우리학교는 교수님이 학부생 시절 봤던 우리학교와 다른 점이 있다고 느끼나요?

전혀 다릅니다. 국력이 신장된 만큼 학생들의 옷차림부터 일단 달라요. 다들 선남선녀 같아요. 그때는 캠퍼스도 보잘 것 없었어요. 또 지금은 학교를 돌아다니다 보면 우리나라 말보다 외국어가 더 많이 들리더라고요. 다양한 종류의 외국어를 들으면 학교가 많이 국제화가 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참 좋은 일이죠.
사실 오바마 대통령이 우리학교에 와서 한 스피치 속 ‘글로벌 코리아’라는 표현은 사실 제가 만든 표어입니다. 우리나라가 글로벌 코리아를 지향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만든 표어에요. 오바마 대통령이 “외대 학생들을 보고 진정으로 글로벌 코리아의 모습을 느꼈다”라고 표현한 것을 보며 엄청난 감동을 느꼈어요.

Q7. 외교관 또는 국제관계학 분야의 전문가를 꿈꾸는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외교관이나 국제기구에서 활약하는 건 굉장히 도전적인 일이에요. 저는 대학 생활을 하면서 많은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세계가 무대인만큼, 이런 직무들이 우리학교 특성과도 잘 맞는 우리학생들에게 적합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는 점점 노령사회가 돼 가고 있습니다. 베이비붐세대가 몇 년 내에 은퇴를 하다 보면 당장 우리나라에 노동인력이 7%정도 부족해지게 돼요. 우리학교에 있는 여러분들이야말로 얼마 후면 찾기 어려워지게 되는 우리나라의 보물이에요. 또한 이웃나라 일본의 노령화를 보면서 너무 좌절하지 말고 다양한 스펙 쌓기도 하고 해외에 눈을 돌리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중국△인도△베트남 등 신흥국가에서의 기회를 이용하는 큰 세계를 보고 호흡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요. “Come to HUFS, Meet the world”라는 슬로건 또한 실천하길 바랍니다.

또 우리 국민들은 우리나라를 비하하는 경향이 있고, 마치 우리나라가 적폐 천지인양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러나 세계를 보면 기회도 너무 많고 할 일도 너무 많습니다. 옛날의 우리나라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제가 최근에 미국 보고서를 봤는데 우리나라가 2010년서부터 지속적으로 R&D(Research and Development) 연구투자 세계 5위를 하고 있어요. 순위를 보면 1위 미국, 2위 중국, 3위가 일본, 4위 독일 그리고 5위 우리나라예요. 이것은 우리가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소리지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비하하지만 우리나라는 앞으로 2050년에 싱크탱크 세계 6위까지 될 수 있다는 비전도 나오고 있어요. R&D가 5위정도 할 수 있는 나라라면 우리가 얼마만큼 하느냐에 따라서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를 헬조선이라 부르고 적폐로 만들어 버리면 그런 활력은 나올 수가 없죠. 앞으로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우리학교 학생들에게는 그런 활력이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해봅니다.

싱크탱크(think tank) : 모든 학문분야 전문가의 두뇌를 조직적으로 결집하여 조사·분석 및 연구 개발을 행하고 그 성과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 주로 정부의 정책이나 기업의 경영전략을 연구한다. -출처: 시사상식 사전

테스크 포스(Task Force) : 군사와 행정 분야에서 특정한 업무, 임무를 할당받아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편성되는 임시 조직. –출처: 시사상식 사전

북방외교 : 1980년대 우리 정부가 사회주의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 정착, 통일기반 조성을 추구했던 외교정책 –출처: 시사상식 사전

R&D(Research and Development) : 과학적 연구와 기술적 연구를 총칭해 △기업조직△정부조직△비영리조직이 행하고 있는 기초·응용을 포함한 연구·공학과 프로세스의 설계 및 개발에 대해서 사용되는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인간, 문화, 사회의 지식을 비롯한 지식 증강을 위한 창조적인 일이자 새로운 응용물을 고안하기 위한 지식의 이용”을 가리킨다. -출처: 시사상식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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