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이탈리아 총선과 유럽의 미래

2018-04-12

기자 |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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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4일 치러진 이탈리아 총선은 국내외적으로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중도우파 연합이 37%로 가장 높은 지지를 이끌어냈으나 현행 비례대표제 중심의 선거제도하에서 프리미엄을 받아 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 40%의 득표에는 도달하지 못함으로써 한계를 보였다. 반체제 정당인 오성운동당(M5S)은 단일 정당으로는 최대인 33%를 얻어 예상을 웃도는 결과였으며 사실상 이번 선거의 최대 승자로 인정받았다. 반면 여당이었던 민주당(PD)은 20%의 지지에도 미치지 못해 사실상 최대 패배자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선거결과는 효과적인 정부 구성에 난항을 보이는 형국(Hung Parliament)을 만들었다. 오성운동당은 타 정당과의 협력이 용이치 않고 내심 민주당의 지지를 기대했으나 현실화되기 어려운 상황이며 우파연합 역시 타 정파의 도움 없이 단독으로 정부 구성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3일 국회가 개원돼 상원과 하원의 의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하원의장에 오성운동당 출신이 그리고 상원의장에 우파 연합내의 전진 이탈리아당(Forza Italia) 출신이 맡게 됐다. 이 과정에서 우파연합의 동맹당(Lega) 당수 마테오 살비니의 중재가 주효했다는 평가가 있다.
이제 정부의 구성을 위해 공화국 대통령 중재로 다양한 정파들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를 통해 수권이 가능한 정당연합의 밑그림이 나오게 된다면 새 정부가 출범할 수 있다. 그러나 여의치 않을 경우 새로운 선거법을 마련하는 원포인트 위기관리내각이 출범하여 조기총선을 치러야하는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번 이탈리아 총선이 가지는 정치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일부 언론에서는 1992년 부패수사로 2차 대전 이후 집권당으로 군림해온 기민당이 무너지고 새로운 정당체계가 출범했다는 차원에서 제2공화국의 도래를 주장한바 있다. 현재의 상황은 지난 25년을 풍미해온 우파의 전진이탈리아당과 좌파의 민주당 중심의 양대체제가 붕괴하고 포퓰리즘 정당들이 득세하는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므로 제3공화국이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제기할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세대와 지역 변수가 크게 작용해 19세기 통일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간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즉 오성운동당의 경우 남부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았는데, 청년층과 실업자 그리고 낙후된 남부의 변수들 즉 경제적 문제들이 작용해 그러한 결과를 얻었다는 설명이다. 북부에서는 반이민과 반유럽을 주장하는 또 다른 포퓰리즘 정당인 동맹당(구 북부동맹)이 선전했다. 이는 경제적 이해관계보다는 반이슬람과 반이민이라는 문화적 요인이 보다 크게 작용한 결과였다. 이 두 정당의 지지율 합이 50%를 넘는다는 차원에서 유럽통합은 브렉시트에 이어 또 다른 암운을 맞이하게 됐다.
이번 선거 결과는 이탈리아에서만 나타나는 특수성의 측면에서만 바라볼 수 없다. 기존의 정당체계에서 변화하는 국민들의 이해와 관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결과, 항의적 차원에서 기존 정당들에게 경종을 주는 투표의 행태가 유럽 여러 국가에서 현시돼왔기 때문이다. 특히 이민과 난민의 물결에서 독일과 북유럽국가들을 제외한 남유럽과 동유럽의 다수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인도주의적 지원에 대한 피로감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이탈리아 민주당의 몰락은 유럽 사회민주주의의 위기를 보여준다. 실제로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중도좌파 정당들이 최근 지지율의 하락을 공통적으로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국가와 사회적 시장경제(social market economy)를 자랑해오던 유럽에서 사민계열 정당들의 후퇴는 유럽적 가치에 대한 훼손을 의미한다.
이탈리아 포퓰리즘 정당들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대해 반기를 들고 있으며, 트럼프 체제의 미국에 대한 반감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런 현상들은 그간 세계질서를 유지해온 원칙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품게 한다. 따라서 메르켈과 마크롱의 리더십으로 유럽의 재가동을 도모하려는 시도에 이상의 현상들이 억제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구심력이 아닌 원심력이 보다 강조돼 통합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할 것이다.
그간의 유럽통합은 경제적 이해관계가 추동력을 발휘해 왔지만 기본적으로 인권, 민주주의, 법의 지배 및 시장경제 등 가치공동체적 성격이 중요한 지역주의로 봐야 한다. 그런데 1945년 이후 세계를 지배해온 자유주의 질서가 그 근본에서 흔들리고 있는 현실은 이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장기집권에 성공한 중국의 시진핑이나 러시아 푸틴의 사례에서 서구식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적용되기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세를 무기로 한 무역전쟁을 시도하는 미국 트럼프 정부의 입장은 적지 않은 우려를 낳게 한다. 미국은 더 이상 자유주의 세계의 수호자이자 세계의 경찰을 포기한 듯하다.
이번 해 이탈리아 총선은 한 국가의 선거 결과로만 치부될 수 없어 보인다. 2008년 재정위기 이후 긴축정책을 기조로 국가가 운영된 과정에서 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여 포퓰리즘 정당들의 득세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영합적 국가운용(popolocrazia)은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사회의 기제를 어렵게 만들게 될 가능성이 크므로 유의를 요하며 유럽의 리더들은 지중해에서 발생하고 있는 난민위기에 대한 유럽적 솔루션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통합 기제를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