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갈림길, 절대평가와 상대평가

2018-04-12

한소희 기자 | 96_1soy36@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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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우리학교는 절대평가로 운영되던 성적 평가 제도를 상대 평가로 변경했다. 갑작스런 학교의 통보에 학생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절대평가가 ‘학점 인플레이션’ 현상을 야기해 추후 취업이나 학교 명성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반응과 상대평가가 학생들의 성취감을 저하시키고 무한경쟁사회를 부추긴다는 반응으로 나뉘었다. 우리학교 성적평가 A방식에 의하면 A학점 상위 30%, C학점 하위 30%로 칼같이 정해진 학점 비율은 그 이상을 허용하지 않는다.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상대평가 제도로 학생들은 ‘성적 잘 주는 교수님’ 혹은 ‘플러스 학점만 주시는 교수님’의 수업을 골라 수강하는 등 최대한 높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 헤맨다.

◆우리학교,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2014년 12월, 학교 측은 상대평가 제도를 도입하며 “절대평가를 유지하게 될 경우 추후에 발표될 대학 평가에 있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며 “대학평가에서의 불이익은 △학교의 브랜드 가치 하락△정원감축△국가장학금 축소△정부주도사업 참여 제한 등 강도 높은 제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발표했다. 김인철 총장은 “대학의 학점인플레이션현상이 사회적인 문제로 부상하고 있으며 기업들도 대학 학점의 변별력에 대해 불신하고 있다”며 “학점분포가 최근 결정된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 평가 자료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됨에 따라 불가피하게 이번 학기에 신속한 대응을 하게 됐다”고 성적평가제도 변경에 대한 이유를 설명했다.
상대평가 제도가 시행된 지 4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평가 제도에 대해 학생들의 불만이 거세다. 최우연(공과ㆍ산업경영 17)씨는 “A0를 받은 학생과 B+을 받은 학생의 점수 차가 1점도 채 나지 않을 때가 있다”며 “1점 정도는 학습량의 차이가 크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단지 비율에 맞춰 점수를 받아야 한다는 것 때문에 학점이 나뉘는 것은 시험의 취지와 목적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 한다”고 말했다. 신현석 고려대 교수 또한 “대학에서는 교수가 수업을 통해 달성하려 했던 수준에 학생들이 도달했는지를 검증해 절대평가를 하는 것이 맞다”며 “절대평가는 공부한 만큼 점수를 보장받을 수 있어 학생들이 불필요한 두려움을 떨치고 학습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재외국민·외국어 특기생은 다른 학생들에게 두려움 그 자체다. 대학알리미의 지난해 공시 자료에 따르면 우리학교의 재외국민·외국어 특기생은 436명으로 신입생 정원의 약 13%를 차지한다. 외고·국제고 출신 학생 또한 신입생 정원의 15.2%를 차지한다. 고(영어ㆍ영어 17)씨는 “언어는 살다 온 사람들의 수준을 넘기가 힘든 것 같다”며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절대평가를 도입하는 게 필요할 것 같다”고 밝혔다. 김(통번역ㆍ스페인어 17)씨 또한 “나는 대학에 와서 처음 스페인어를 접했는데 같은 과 동기 중 몇 명은 외국어 고등학교 스페인어과 출신이라 처음부터 수준 차이를 느꼈다”며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몇 발짝 앞선 동기들을 따라가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변화의 움직임
지난달 20일 성균관대는 학생들에게 수업 전 미리 제공한 동영상을 청취하고 강의실에서는 동영상과 관련된 심화 내용을 공부하는 수업에 부분적으로 절대평가를 도입했다. 성균관대는 중장기 발전계획인 ‘성균 비전 2020’에서 “경쟁 중심 상대평가에서 성취 중심 절대평가로 바꿔야 한다”고 언급하며 평가방식 변경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공감△배려△협업이 경쟁력인데 상대평가를 하면 같은 조원들끼리 경쟁자로 여기기 때문에 개인주의를 유발할 수 있다”고 문제를 짚었다.
이화여대도 이번 해 1학기부터 1년간 학부 전체 교과목 성적을 교수가 원하는 방식으로 평가하는 ‘교수자율평가’제도를 시범운영 중이다. 이 평가제도는 성적 평가를 유연화 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도입됐다. 이는 교과목 특성에 맞게 상대평가 또는 절대평가를 선택하거나 두 가지를 절충할 수 있는 방안이다. 이화여대 관계자는 “상대평가가 학점 경쟁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일률적 절대평가는 학점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학점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전공 특성을 감안한 효율적 평가방식 도입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나왔다”고 전했다.
연세대 또한 성적 평가 방식에 변화를 꾀했다. 2014년 이후, 연세대 의과대학은 상대평가 제도에서 패스(PASS)·논패스(NON_PASS)제도로 성적 평가 방식을 개편했다. 개편 이후, 성적평가 체제에 따른 과목별 평균 점수분포 비교표를 참고한 결과, 성적 향상도가 최대 12.21% 까지 올랐다.
이러한 결정에 대해 일각에선 대학구조개혁평가의 압박에서 자유로운 상위권 대학들만이 평가 제도를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신현석 고려대 교수는 “대학에서는 교수가 수업을 통해 달성하려 했던 수준에 학생들이 도달했는지를 검증해 절대평가하는 게 맞다”며 “절대평가는 공부한 만큼 점수를 보장받을 수 있어 학생들이 불필요한 두려움을 떨치고 학습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고 절대평가 제도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표했다. 이에 더해 김다은(국제지역ㆍ러시아 17)씨는 “다른 학교도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뀌는 움직임이 보이듯, 우리학교도 평가제도가 개편됐으면 좋겠다”며 학교의 제도 개선을 희망하는 목소리를 냈다.

◆절대평가의 이면과 학교의 속내
절대평가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학점인플레이션 현상’이다. 2015년, 교육부가 실시한 대학구조개혁평가 1단계에서 총점 60점 중 ‘학생 평가’ 항목이 4점으로 배점됐다. 이 항목은 성적분포의 적절성과 엄정한 성적 부여를 위한 제도 운영 여부로 평가됐다. 불거지는 대학의 학점인플레이션 현상에, 성적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고자 정부 차원에서 규제를 한 것이다. 실제로 대학알리미 ‘졸업생의 졸업성적 분포’에 따르면 우리학교는 절대평가로 시험이 진행됐던 2014년, A학점 비율이 68.8%(3849명)로 서울 주요 대학 11개 중 가장 높았다. 이후 상대평가 제도를 처음 시작한 2015년, A학점 비율이 62.1%(4177명)로 절대평가가 이뤄졌던 해와 비교해 감소했다. 2016년 또한 55.5%(3844명)의 비율을 보이며 감소 추세를 이어갔다. 평가제도 변경으로 학점 인플레이션을 완화하며 학점에 대한 신뢰도를 회복하고자 한 것이다.
한편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학생 평가’를 포함하는 ‘학사 관리’는 평가 지표 중 배점이 가장 낮다. 낮은 비율을 차지하는 ‘학생 평가’ 항목을 위해서 성적 평가 방식을 변경한 학교 측의 결정에 한(아시아·인도어 16)씨는 “더 중요한 평가 지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적 평가 방식을 변경한 학교의 결정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며 “상대평가로의 변경이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이라 이런 결정을 내린 것 같지만 과정에 있어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것 같아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적합한 평가제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문제가 여전히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각 학교의 특성에 따라 많은 대학이 평가 방식에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임은희(대학연구소 연구원)씨는 “획일적인 정책보다는 교수의 재량으로 전공과 과목의 특성을 반영한 효율적인 평가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학점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최소한의 제재도 학교별로 자유롭게 갖춰야 한다” 고 말했다.

*학점인플레이션 :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과도하게 높은 학점을 주는 현상

한소희 기자 96_1soy36@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