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와 혐오

2017-12-24

홍주연 기자 | 95m52535@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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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링이란?

미러링(Mirroring)은 심리학 용어로 ‘상대와의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 상대를 무의식적으로 따라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이후 이는 메갈리아나 워마드 등에서 페미니즘 용어 ‘미러링’으로 사용되며 그 의미가 확장·파생됐다. 메갈리아 페미니즘식 미러링은 ‘각종 차별과 혐오의 실태를 보여주기 위해 상대의 말이나 행동 따위를 의도적으로 모방하는 행위’를 의미하게 됐다.
그렇다면 이들이 미러링을 하는 것은 어떤 취지에서일까? 미러링의 취지는 일부 한국 남성들이 여성을 상대로 ‘혐오’를 행한 것을 모방해 남성들에게 역지사지의 태도를 취하게 하기 위함이다. 페이스북 페이지 ‘바람계곡의 페미니즘’ 운영자는 “여성들이 미러링을 하도록 만든 건 남성들”이라고 지적하며 “가부장제라는 온실 속에서 성장한 남성들은 미러링이 아니고서는 여성의 현실을 조금도 되짚어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하며 미러링을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미러링을 통해 ‘반(反) 여성혐오’를 표방한 메갈리아는 “우리의 미러링은 성공할 필요도 없고 성공할 수도 없었으며 이것은 우리의 잘못도 실패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는 “미러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상대적 강자인 남성이 성차별 현실을 인정하고 서로의 경험과 언어, 사회적 위치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와 같은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이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미러링의 과정에서 여성이 남성과 똑같은 언어를 사용할 때 나타나는 사회의 반응 그 자체를 여성운동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들이 이와 같이 주장하는 하나의 이유다.

◆미러링, 어떻게 사용되나

지난달 4일 한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연예인 김숙 씨가 우리나라 남성이 여성에게 자주 하던 발언들을 미러링해 화제가 됐다. 먼저 김숙 씨는 여성이 예민한 날 “혹시 생리하냐”고 묻는 남자의 말에 “몽정하냐”고 되물었다. 운전 시비가 붙은 상황에서는 여성이 평소 자주 듣는 말을 미러링해 “남자가 조신하게 집구석에서 살림이나 해라”라고 되돌려줬다. 가부장제에 대한 반박으로 여성이 가정의 중심이 되는 가모장제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어디 남자가 건방지게”, “남자가 조신하니 살림 좀 해야지”, “어디 아침부터 남자가 인상을 써?”, “남자 목소리가 담장을 넘으면 패가망신한다는 얘기가 있어”, “집안에 남자 잘 들여야 한다더니” 등 여성에게 씌워지던 잘못된 프레임들을 미러링했다. 손희정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은 “김숙이 미러링하는 것은 정확하게 한국의 가부장제”라며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질주’ 속에서 여성 연대를 통해 독재자를 처단하는 퓨리오사를 빗댄 ‘퓨리오숙’이야말로 보편적 가부장제와 한국의 특수성이 결합된 특수한 가부장제에서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 전사들에 대한 징후적 별칭”이라고 말했다. 다소 난해한 말이지만 김숙의 미러링을 미러링의 긍정적인 사례로 평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주로 패러디의 형태로 이뤄지는 언어적 미러링은 상대에게 역지사지의 자세를 취해볼 수 있도록 하는 미러링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적당한 수준의 미러링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물리적인 폭력을 사용하는 ‘도를 넘어선’ 미러링 사례가 여기저기서 나타나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도 넘어선’ 미러링

이번 해 초 워마드 홈페이지에 대중목욕탕 남탕에서 남성의 나체를 몰래 촬영한 사진이 게재돼 논란이 일어났다. 작성자는 ‘목욕탕에서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서 몰래카메라 설치가 가능했다“며 범행 수법을 설명했다. 이후 ”미러링을 위한 몰래카메라 구입비로 60만원이 들었지만 아깝지 않다“는 발언도 덧붙였다.
최근에는 더욱 심각한 사례가 발생했다. 호주 연방경찰에 따르면 호주에 거주하는 27살 한국인 워마드 유저 여성이 아동 학대 및 착취물을 생산한 혐의로 체포·기소됐다. 사건은 지난달 19일 해당 여성이 워마드에 현지 10대 소년을 성폭행했다는 글을 게재하며 시작됐다. 여성은 가족과 함께 펜션에 놀러온 소년에게 먹일 수면제를 오렌지 주스에 타는 사진을 올리며 게시글에 구체적인 범행 계획을 설명하는가 하면 그녀가 소년에게 접근해 주스를 건네줬고, 예상대로 소년이 쓰러지자 그를 가족에게 데려가 피곤해 잠든 것 같다고 말했다며 범행의 구체적인 과정까지 서술했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새벽 2시경 소년을 몰래 데리고 가 강간했다며 사진을 올리고, 영상도 촬영해 소유하고 있다고 알리는 등 범행을 성공적으로 끝마쳤음을 자랑하는 모습까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해당 게시글에는 ‘나도 참여하고 싶다’, ‘이메일로 동영상을 보내 달라’ 등 수십 개의 동조 댓글이 달렸다. 게시자의 행동을 제지하거나 비난하는 회원은 눈에 띄지 않았다. 사건의 논란이 커지자 다수의 워마드 회원은 “이번 사건이 남성들에 의해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현지 경찰에 영문 탄원서를 보내고 피해 아동의 어머니에게 메일로 항의하는 회원도 있었다. 하지만 여론의 비난은 더욱 거세졌다. 해당 사건이 조작된 것일지라도 대다수의 워마드 회원은 댓글을 통해 이에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현재 워마드 회원들은 자체적인 모금을 통해 사설 변호사를 고용한 상태다. 워마드 운영자는 모금 목표액을 5천만원에서 6천만원으로 설정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고, 지난달 24일을 기준으로 약330명의 회원들이 이미 모금에 참여했다.
해당 사건이 조작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현재 수사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례 하나에서의 게시글 조작여부를 떠나 해당 사이트에서 지속적으로 이러한 미러링 범죄 과시용 게시글들이 수없이 올라오고 있다는 점과 다수의 회원이 이에 적극적으로 동조한다는 점에서 이들이 미러링이라는 이름하에 ‘도를 넘어선’ 상당한 범죄를 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미러링, 논의가 필요한 때

미러링에 향한 찬반 논의는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미러링을 반대 하는 측은 미러링은 혐오에 혐오로 대응하는 엄연한 폭력이며, 현재의 미러링은 더 큰 관심을 끌기 위한 ‘주목 경쟁’으로 변질됐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범죄사례까지 모방하고 미러링이란 이유로 이를 정당화하는 것은 다른 오류의 사례들을 들어서 자기의 오류를 정당화하는 ‘피장파장의 오류’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미러링의 대상이 가해자 당사자가 아닌 커다란 카테고리 안에 있는 무작위의 무고한 사람이라는 사실도 지적한다.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에 ‘거울은 정반사를 하지 난반사를 하지 않습니다’라는 글이 올라오며 이러한 문제점을 정확히 꼬집기도 했다. 이에 반해 이에 찬성하는 측은 사회에서 상대적 약자인 여성이 상대적 강자인 남성의 여성혐오에 대항하는 것을 폭력이라 치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를 근거로 찬성 측은 혐오를 조장하는 사회 분위기가 잘못된 것이며 애초에 가부장제에 근거한 여성혐오가 없었다면 여성혐오를 미러링하는 행위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 주장한다. 따라서 여성혐오의 대응어로써의 남성혐오는 존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외에도 이 기사에서는 다루지 못한 서로 다른 수십 수백 가지에 달하는 입장들이 양립하고 있다. 미러링을 무조건 찬성하는 측, 반대하는 측뿐 아니라 자신의 기준에 따라 어느 정도만 찬성 혹은 반대하는 측도 존재한다. 위에서는 일반적인 찬성과 반대 입장을 다루었으나 각자의 기준에 따른 입장은 모두 다르다.
이처럼 미러링에 대한 끊임없는 논쟁이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찬반과 관계없이 페미니즘의 틀에서 발생하는 극단적인 범죄가 용인될 수 없다는 것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극단적인 미러링을 피하기 위해선 그 범위에 대한 윤리적 기준을 마련하는 등 경계와 성찰이 필요하다. 그러나 미러링을 혐오담론으로만 바라보는 것 또한 옳지 않은 수용 자세다. 극단적 사례만을 보고 미러링 자체를 사회에서 배척하고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여성들에게서 자신의 경험을 고발하고,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을 빼앗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미러링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마저 미러링이란 울타리 안에서 용인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지적과 비판이 수반돼야 할 때이다.

홍주연 기자 95m52535@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