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문학

2017-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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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그 어느 시기 못지않게 치열했던 20세기가 그 종반에 접어들 무렵,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사유의 흐름 속에서 모든 가치가 상대화되던 그 무렵, 문학의 세계에서도 이른바 ‘해체’와 관련한 중요한 화두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프랑스 발 문학 해체의 담론이라고나 할까? 미셸 푸코가 선언한 ‘주체의 죽음’의 문학적 버전이라고 할까? 프랑스의 문학 비평가였던 롤랑 바르트는 ‘저자의 죽음’을 선포했다. 그의 선언은 정말이지 ‘감히’ 이루어진 것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문학의 주인은 ‘작가’이지 않았던가? 작가가 없는 문학의 세계를 상상할 수 있었던가? 작품의 ‘창작자’인 작가가 죽는다면? 그렇다면 문학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작가가 사라진 작품은 더 이상 ‘작품’이 아니라 여러 인용들의 모자이크로 구성된 하나의 ‘직조물’, 즉 ‘텍스트’에 불과하다. 수많은 목소리들의 직조물인 텍스트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텍스트는 오로지 ‘독자’에게 맡겨질 뿐이다. 독자는 더 이상 텍스트에서 ‘해석의 정답’을 찾을 필요가 없다. 그들 앞에 주어진 텍스트는 단지 ‘유희’의 장일 뿐이다.
포스트모더니즘도 어느덧 탈구축의 시기에 접어든 지금,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정말로 ‘죽었는가?’ 오늘 우리가 저마다 손에 들고 있는 것들은 전부 ‘텍스트’들일 뿐인가? 여기서 한 가지 모순적 사실과 마주 대하게 된다. ‘저자의 죽음’을 선포했던 롤랑 바르트의 저서들이 엄청난 ‘저작권’을 뽐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저서 중 한 권을 번역이라도 하려 치면 막대한 금액의 로열티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저자의 죽음’이 역설된 ‘텍스트’는 아이러니하게도 여전히 ‘바르트의 작품’으로 규정돼 있다.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 본다. ‘저자’는 과연 죽었는가?
저자와 독자의 문제, 나아가 문학의 본질에 대한 논쟁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하나의 사건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르트나 푸코보다 한 세대 앞선 작가들이었던 프랑수아 모리악과 장 폴 사르트르의 문학 논쟁이 그것이다. 아니, 논쟁이라기보다는 기성 작가 모리악에 대한 젊은 사르트르의 일방적인 공격이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문제의 사건은 1939년 2월 <새로운 문학 평론(Nouvelle Revue Française)>지에 실린 “프랑수아 모리악 씨와 자유”라는 제목의 기고문으로 시작됐다. 당시로서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었던 장 폴 사르트르라는 필자가 기고한 이 글은 당시 문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을 만큼 큰 폭발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르트르의 공격 목표는 명확하다. 모리악이 언급했던 적이 있는 “신을 닮은 존재로서의 작가”의 위상이다. 마치 신에 비견될 만큼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작가의 존재가 목표이다.
사르트르는 이처럼 강력한 ‘작가’의 존재가 유지되는 한 작품의 진정한 ‘자유’는 없다고 보았다. 그가 볼 때 모리악은 소설의 인물들을 통제하고, 마치 자동인형처럼 만들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소설의 모든 자유를 억압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그러면서 사르트르는 두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첫째로, 소설의 인물들은 오직 자유로울 때에만, 그들의 행동이 예측 불가능할 때에만 살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인물들은 그들 나름의 법칙을 가지고 있으며, 소설가는 인물들의 증인이나 공모자 중 하나만 될 수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소설가는 작품의 바깥에 있던지, 작품 안에 있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이렇게 일갈한다. “모리악 씨는 언젠가 소설가와 인물의 관계란 신과 피조물의 관계와 같다고 쓴 적이 있다. (...) 모리악 씨는 창조자로서의 모든 권위를 사용해 자기의 피조물들을 사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사르트르가 보기에 모리악의 잘못은 자기 인물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다 알고 있는 작가가 되고자 하는 데 있다. 사르트르는 이 기고문을 이렇게 결론짓는다. “모리악 씨는 신과 같은 전지전능함을 선택했다. 하지만 한 편의 소설이란 한 명의 사람에 의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쓰여지는 것이다. 모든 외관을 꿰뚫어볼 수 있는 신의 관점에서 소설이나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술은 외관을 먹고살기 때문이다. 신은 예술가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모리악 씨도 예술가가 아니다.”
가혹한 판결이었다. 사르트르다운 자신감이라고 할까? 사르트르의 논점은 단 한 가지 개념에 집중돼 있다. 바로 ‘자유’라는 개념이다. “당신의 작중 인물들이 살아 있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그들이 자유롭도록 하라.” 사르트르의 생각에 예술작품은 창조의 산물이 아니다. 작중인물을 대하는 소설가의 입장은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의 입장에 불과하다. 소설가는 인물들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신과 같은 능력을 소유할 수도 없고, 소유해서도 안 된다. 소설가는 기껏해야 단 한 명의 인물과 스스로를 동일시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단번에 인물들의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하는” 모리악의 기법을 사르트르는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관점에는 사르트르의 철학적 입장이 반영돼 있다. 사르트르는 작가이기 이전에 철학자로, 정확히 말해 실존주의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그는 “실존주의의 교황”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의 철학은 “실존이 본질에 선행한다.”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대표되기도 한다. 이 원칙이 정립되기 위해, 즉 실존이 본질에 선행하기 위해 인간은 절대적인 자유의 상태여야 한다. 따라서 사르트르의 입장에서는 소설의 ‘실존’보다 작가가 선행한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명제였던 것이다.
반대로, 모리악의 입장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모리악은 사르트르와는 여러 가지 면에서 대조적인 특징을 지닌 작가였다. 무신론적 실존주의를 주창했던 사르트르와는 달리 모리악은 종교적 삶에 충실한 가톨릭 소설가였으며, 한 때 공산주의적 성향까지도 내비쳤던 사르트르와는 달리 드골주의자이자 우파 지식인으로 활동했다. 특히 문학에 있어서 그의 입장은 ‘작가’를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 세계관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모리악에게 있어서 소설의 본질적인 특징은 삶을 ‘부여받은’ 존재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작중 인물들이 살아가는 삶은 오로지 자유의 선택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작가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다. 이처럼 ‘부여받은’ 존재들의 모습이야말로, 실제 인간의 모습, 인간의 삶의 모습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이 모리악의 생각이다. 모든 인간은 ‘부여받은’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탄생의 순간부터가 철저히 수동형으로 이루어진 것이 인간의 삶 아닌가?) 따라서 <구토>의 작가와는 달리 모리악이 보기에 “스스로 소설가라고 말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삶을 부여할 줄 알아야 하며, 살아 있는 존재들을 창조해 낼 수 있어야 한다.”
모리악에게 있어서 소설을 쓴다는 것은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비극적 실존의 조건 속에 붙잡혀 있는 인간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그 인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다. 1946년에 있었던 한 컨퍼런스에서 모리악은 이렇게 이야기한 바 있다. “우리 작가들은 작품의 유일한 주인입니다. 이 위치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작품의 운명을 떠맡아야 합니다. 우리 외에 다른 누구도 작품을 꿰뚫어 볼 시선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건 작가들에게 주어진 권리입니다. 우리는 작품에 대한 책임을 가진 유일한 사람들입니다. 사람들 앞에서도 그렇고 하나님 앞에서도 그렇습니다. 작품이란 우리에게 속한 세계입니다.” 인물들에 대해서 어떠한 판단을 내리건 내리지 않건, 단순히 하나의 캐릭터를 제시하건 한 인물의 운명을 상세히 그려내건, 그것은 철저히 작가에게 속한 자유이다. 다시 말해 모리악은 사르트르와 달리 인물들의 자유가 아니라, 작가의 자유를 더욱 중시했던 것이다.
사르트르는 창조자로서의 작가의 자유를 제한하고, 인물의 자유를 극대화시킬 것을 요구한다. 모리악은 인물의 자유란 허구에 불과하며, 본질적인 것은 작가의 창작이라고 주장한다. 모리악이 문학에 대한 전통적 관점을 대변한다면, 사르트르는 ‘저자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비평적 관점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을 더 제기해 보자. 이 둘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지점은 과연 없는가? 모리악과 사르트르의 접점을 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가? 즉 ‘작가’가 ‘작품’의 주인이기를 자처하는 문학과 ‘저자의 죽음’을 선포하는 문학 사이의 접점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접점’은 존재한다. 이것이 우리의 대답이다. 그 ‘접점’은 바로 ‘독자’이다. 사르트르와 모리악 공히 ‘독자’의 존재를 문학의 필연적 요소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르트르에게 문학은 실존하는 인간의 궁극적 목표, 즉 신과 같은 존재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 ‘즉자-대자’ 존재에 이를 수 있는 대안이다. 사르트르의 철학에서 철저한 ‘자유’의 존재인 인간은 그 자유의 무게 때문에 고통당한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실존의 선택을 통해 자기의 본질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짐이 인간의 어깨를 짓누른다. 따라서 인간은 자유로운 주체성을 간직하면서도 동시에 사물과 같이 정립된 존재로서의 상태를 누리고 싶어 한다. ‘즉자-대자 존재’라고 표현되는 존재의 방식, 사르트르의 표현에 따르면 신이 있다면 바로 그 신의 존재에 해당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것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현실에서 인간은 주체성을 가진 ‘주인’이거나, 사물의 상태로 전락한 ‘노예’ 둘 중 하나의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즉자-대자’의 존재 가능성을 실현시킬 수 있는 영역이 있는데, 바로 문학이다. 작가와 독자의 협력을 통해 이 가능성이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가 자신의 주체성을 투영해 작품을 집필하면, 독자가 자신의 주체성을 투영해 그 작품을 읽고 객관화한다. 작품이라는 텍스트 속에서 작가의 주체성과 독자의 주체성이 만나는 순간, 작가의 의도와 독자의 해석이 갈등 없이 공존하는 순간, ‘즉자-대자’ 존재가 구현되며, 사르트르는 이것을 ‘문학을 통한 구원’이라고 칭한다.
모리악 역시 독자의 중요성을 자주 강조한다. 모리악이 보기에 문학은 작가와 인물, 그리고 독자가 동일한 현재를 살아가는 순간 완성된다. 인물이라는 매개를 통해 작가와 독자는 서로 만나고 소통한다. 작가는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줄 사람, 즉 독자를 찾는다. 독자는 작품 속에서 자기와 유사한 누군가를 만나기 원한다. 결국 작가의 소원과 독자의 소원이 작품 속에서 연결돼 의미를 생산하고 감동을 자아내는 것이다. “작가는 본질적으로 고독 속에 스스로를 함몰시키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들 가가자는 사막과도 같다. 작품은 항상 사막 속에서의 외침과 같다. 발에 편지를 달고 떠나는 비둘기 같은, 속에 편지를 담아 바다에 던져진 병과 같은 것이 작품이다. 중요한 것은 그 메시지를 누군가가 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단 한 명이라 할지라도 들어줘야 한다. 우리가 소설가라고 할 때 인물들을 통해 전달되는 우리의 생각이 우리와 다른 생각, 다른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읽혀지고, 이해되고, 또 사랑받을 수 있어야 한다.”
‘저자’는 죽었는가? 죽었다면 누구에 의해서인가? ‘독자’인가? 아니면 ‘비평가’인가? 분명한 것은 우리 ‘독자들’은 ‘작가’를 죽인 적도 없고 죽일 생각도 없다는 것이다. 작가가 창작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해도 좋고, 작품 뒤로 슬며시 자취를 감추어도 좋다. 현존하는 작가이건, 숨겨진 작가이건, 오늘도 우리 독자들은 작가의 영혼(모리악적 표현) 혹은 주체성(사르트르적 표현)과 만나고 대화하고 공감한다. 그것이 문학이고, 그것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