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선택은 결과가 아닌 과정

2017-12-21

전환욱 기자 | 95hwanwook3132@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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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삼성 입사 후 로스쿨 입학 그리고 변호사 활동까지 이력이 특이하다. 선배님의 인생 과정을 듣고 싶다.

나는 포르투갈어를 전공으로, 법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했다.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 성적이 좋지 않았고, 심지어 토익 응시 방법도 모를 만큼 취업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졸업을 앞두고 ‘이러다 무직이 되겠다’는 위기감에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고, 삼성에 입사할 수 있었다.
삼성에 입사한 후 성희롱을 겪었다. 회사에 피해 사실을 알렸으나 회사는 사건을 덮으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성희롱 외에 왕따 사건도 발생했으며, 일련의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기득권의 비리가 중첩된 것이 발견됐다. 나는 사건을 회사 내부에서 해결해보려 했다. 해결되지 않자 외부에서 회사 비리를 고발하기 위해 인권위원회, 행정소송, 민사소송 등 여러 소송을 진행했다. 법학을 전공했음에도 법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주위에는 조언을 해줄 사람도 없었다.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라 너무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고, 이례적으로 삼성 노동자로서 삼성을 대상으로 승소할 수 있었다.
소송 이후 로스쿨이라는 곳을 알게 됐고, 로스쿨을 가기 위해 노력했다. 학교 성적이나 토익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도 왠지 모를 자신감이 있었다. 사실 지원했던 모든 로스쿨의 최초 합격자 발표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운 좋게도 전남대에 추가 합격이 돼 그 곳을 갈 수 있었다.
로스쿨 3학년이 되면서 퇴직금이 바닥을 드러내자, 그 때부터 변호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런데 변호사 시험을 치고 나니 나이가 마흔이 됐다. 보수적인 대한민국 법조계에서 마흔의 초년생 변호사를 받아 주는 곳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생각을 갖고 사무실을 개업했다.

Q2. 왜 변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됐나?

나는 현실주의자다. 현실이 즐거우려면 과거에 후회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 경험을 현실에 유용하게 연결시키는 것이 후회를 없애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삼성에서 근무할 때 해외 영업 부서에 있었다. 회사원이지만 자유롭게 가격을 협상하기도 하고 계약하기도 했다. 그 때의 경험이 내 인생의 용기로 작용했다. 또한 막내딸로 자라면서 어떤 틀에도 길들여지지 않는 자유로운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었다. 길들여지지 않는 대신 자립심과 독립심을 기를 수 있었다. 석사 때 했던 영화 공부는 내 삶의 방향을 그리는 데에 도움이 됐다. 또 시나리오 글쓰기 공부는 소송 당시 내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됐다. 이러한 다양한 경험들이 나와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면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니 변호사라는 직업이 떠올랐다. 변호사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안에서 하고 싶은 일이었다.

Q3. 성폭력 사건을 주로 다루면서 발견하게 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성폭력 문제를 다룰 때, 성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성폭력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힘의 논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이 쉽게 성폭력 대상이 되는 이유는 물리적인 약자이면서 사회적 관계 속의 약자이기 때문이다. 권력, 서열 등 힘의 논리가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여성 혐오적 표현을 하는 일간베스트 이용자(일베)의 심리에는 ‘내 밥그릇을 감히 열등한 여자들이 가져가다니, 잘난 여자들은 싫어’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그들의 혐오감 안에는 힘의 논리가 들어가 있다. 또한 폭력을 거절할 수 없거나, 발생한 후 이의제기를 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성폭력을 가능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문제가 뒤섞여서 성폭력으로 나타나는 것일 뿐 성폭력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다른 문제들과 맥락을 같이 한다. 사측과 노동자, 비장애인과 장애인, 부유층과 빈곤층 문제 등이 같은 원리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더 많이 가진 쪽에서 덜 가진 쪽에게 무례함을 저지르면서 생기는 일이다. 무례함이 젠더 문제로 이어졌을 때 성폭력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Q4. 힘의 논리로 인해 발생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힘의 논리라는 같은 원인으로 문제가 발생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들을 획일화 시켜서 해결하는 것은 분명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문제 해결을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성폭력 하지 말자.’라는 구호를 외치기보단 교육을 통해 성폭력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문화 전반의 문제로의 전환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기득권과 비기득권이 상호간 기본적인 예의와 배려를 지키고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Q5.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도 중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해낼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은 무엇인가?

앞서 말한 대로 현재의 즐거움이 나에게 가장 중요하다. 매 순간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했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믿는 것들을 곰곰이 생각하고 나를 잘 들여다보고 결정한다면, 그것이 바로 인생의 선택일 것이다.
또한 선택에 최선을 다했다.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 선택에 부응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선택으로 귀결되는 이유는 좋은 선택을 고른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했기에 좋은 선택이라는 결과가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최선을 다하고 결과가 잘 되면 나는 또 행복하다. 결과는 또 다른 새로운 기회를 여는 가능성이 된다.
최선을 다하고도 기대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결과와 선택이 모든 인생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열심히 한다면 분명 과정 속에서 부수적으로 좋은 일들이 뒤 따라올 것이다.

Q6. 앞으로 계획 중인 행복을 위한 선택이 있다면?

내 삶이 크게 변화해야 한다거나,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을 이루느냐 보다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에 가졌던 마음 상태를 유지하고, 지금처럼 열심히 해서 지속적으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변호사로서 소송도 계속 다루고 싶고 이를 통해 얻어진 생각들을 사람들과 공유하며 살고 싶다. 우리나라는 경험에 대한 공유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때문에 약자가 기득권층과 싸워본 경험은 쉽게 사라져 다른 사람에게 공유되지 못한다. 반대로 기득권은 싸움을 통해 얻은 경험을 잘 공유해 그들 사이에서 축적된다고 본다. 기득권과 싸워본 그 경험들을 나누는 삶으로 만족한다. 더 나아가 경험을 공유하며 기득권과 대립하지만 그들에게 굴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전환욱 기자 95hwanwook3132@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