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승려들의 잇단 일탈행위와 불교개혁 2017-08-30
기자 | 이메일 조회수 275  댓글 0
 
불교의 나라 태국
태국에 가면 언제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불교 사원과 황색 승복을 입은 승려들이다. 국민의 대다수가 불교를 신봉하는 불교국가로 업보와 윤회사상에 기반을 둔 낙천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태국인들의 입가에는 항상 미소가 머물러 있다. 태국에 언제 불교가 유입됐는지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지만 13세기 소승불교라는 상좌부 불교가 도입되면서 태국은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웠고 태국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왔다.

불타의 가르침을 태국어로는 ‘탐마’라고 하고 계율을 ‘씬’이라고 한다. 도덕이나 윤리를 뜻하는 ‘씬라탐’은 이 두 단어의 합성이다. 태국인에게 있어서 도덕이나 윤리의식은 불타의 가르침을 행하는 ‘선’이며 계율을 어기는 것은 ‘악’이라는 기본적 사고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불타의 가르침은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이면서 삶의 근본 원리가 됐다. 그래서 선악을 구분하고 사리분별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기간 출가하여 불타의 가르침을 배우고 수양을 하는 불교 풍습이 생겨났다. 이를 ‘부엇’이라고 한다.

승려의 지위와 역할
태국은 전통적으로 남자가 20세가 되면 3개월간 출가하여 부엇을 했다. 부엇을 하지 않는 사람을 ‘콘딥’이라고 불렀는데 이는‘미성숙한 사람’이란 뜻이다. 전통 태국사회에서는 부엇을 해야 비로소 성인으로 인정받아 결혼을 할 수 있었으며 남자가 출가하여 부엇을 하게 되면 그 공덕으로 부모가 극락에 간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따라서 오늘날까지도 태국 사회에서 남자가 부엇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가 공덕을 쌓는 일이기도 하면서 또한 부모에게 행하는 커다란 효도이기도 하다.

태국 사회에서 승려는 아주 특별한 존재이다. 태국의 전통사회에서 승려는 주민들의 영적 생활을 돌보아 주는 사제이면서 마을공동체의 정신적 지도자이기도 했다. 승려는 불상을 제외한 그 어느 누구에게도 엎드려 절하지 않는다. 태국의 언어문화에서는 승려들에게 사용하는 용어가 따로 있다. 버스를 타도 승려를 위한 좌석이 별로도 마련돼 있다. 이렇게 승려가 존경받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보다도 물질적 탐욕에서 벗어나 청빈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기 때문이다. 승려는 227계를 지켜야한다. 탁발을 통해 시주 받는 음식만을 먹어야 하며 그 음식도 아침과 점심 두 끼만을 먹고 정오 이후에는 씹어서 먹는 음식을 먹지 못한다. 엄격한 종파에서는 돈을 직접 만지지도 못하고 여성이 건네주는 물건을 직접 받지도 못한다. 태국의 역사가 선을 지향하며 발전해 온 데에는 불교에 기인한 바 크다. 그 중심에는 항상 절제된 삶을 살아가는 승려가 있었다.

불교의 세속화와 승려의 일탈 
그런데 최근 태국 사회 일각에서 승려들의 일탈행위가 잇따라 보도되면서 여러 가지 우려와 개탄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승려들의 일탈행위는 근래 들어 태국 사회가 상업주의와 소비주의로 물들기 시작하면서 사원과 승려가 빠른 속도로 세속화 돼 가고 있는데 기인한다. 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원으로 알려진 탐마까이 사원의 주지인 탐마차요는 클렁짠 방콕 신용협동조합 전 이사장이 횡령한 120억 밧 중에서 10억 밧 이상을 ‘기부’ 받은 혐의를 받았다. 탐마차요는 거듭되는 법원의 출두명령을 병을 핑계 삼아 무시하고 있다가 작년 5월에 구속영장이 나오고 나서는 아예 모습을 감췄다. 그 후 체포영장을 발부 받은 경찰이 사원으로 출동하여 기습작전을 펼쳤으나 끝내 검거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신도들이 대치하는 상황이 연출됐으며 한 남성이 이에 항의하며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탐마차요 사건은 태국의 불교 사원이 세속화 돼가고 있는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태국 북동부의 위라폰 쑥폰이라는 승려는 사람의 과거를 알아내는 능력이 있다고 신도들을 속여 거액의 재산을 축적하는 한편 사원과 불상 건립명목으로 엄청난 기부금을 챙겼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 돈으로 자신의 전용 제트기를 타고 다니는 등 호화스런 생활을 즐겼다. 그의 사기행각은 사치스런 생활을 SNS에 올리는 바람에 일반 대중에게 알려지게 됐고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그에게는 ‘제트족 승려’라는 별명이 따라 붙었다. 여기에다 과거의 문란했던 사생활까지 드러나게 되자 미국으로 도피했던 그는 얼마 전 태국으로 송환돼 수사를 받고 있다. 이밖에도 사원의 재산을 횡령하고 마약을 복용하는 등 크고 작은 일탈행위가 이어지고, 동남아 일대에서 승려를 사칭하여 구걸하는 가짜 승려들이 늘어나게 되자 급기야 정부에서는 승려들에게 스마트 신분증을 발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가짜 승려를 솎아내는 일이 그리 간단치 않을 것 같다.

불교개혁의 필요성
최근 들어 태국에서 승려에 관한 보도나 기사에는 ‘영적사기’, ‘자금횡령’, ‘돈세탁’, ‘마약복용’, ‘구걸행각’, ‘성추문’ 같은 어휘가 자주 붙어 다닌다. 태국의 승려들이 그만큼 타락해 가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이런 승려들의 세속화에 대한 우려와 불교 개혁의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2015년에 태국의 국가행정개발위원회에서 일반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결과에 따르면 불교개혁에 찬성하는 비율이 77%로 나타났다. 일부 불교학자들은 승가의 조직개편과 권력 분산 및 사원의 운영방식 개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승려들의　비리를　방지하기　위해서 현재의 승가 최고 위원회를 혁신하고 사원운영을　이원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원 운영의 이원화란 일반 신도들이 사원 운영에 적극 참여하게 하고 승려는 불타의 가르침을 배우고 이를 실행하는 수도생활에 전념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과연 승가에서 이러한 요구를 얼마만큼이나 수용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태국의 불교가 아무리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그리고 승려가 아무리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집단이라 하더라도 내부로부터 스스로 정화하지 못하면 외부로부터의 개혁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