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자전거와 골동품 a decrepit old bike & an antique

2017-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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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집 가까운 신한은행에 통장정리를 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간 일이 있었다. 은행 앞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업무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대학교 동문인 은행 지점장이 따라 나와 내가 타고간 자전거를 보고 놀라며 ‘앤티크’(Antique) 즉 골동품, 고미술품, 고대유물이라고 미화하며 위상을 세워줬다.
27년 전 생일선물로 큰아들이 사준 3000리 자전거가 지금은 고물자전거가 돼버려 나의 낡은 소유물에 이렇게 값진 호칭을 부쳐주니 나는 큰 용기를 얻게 됐다. 그의 한마디에 그 자전거를 자랑스럽게 타고 다니며 특히 주말이면 운동을 하며 소중히 여기며 자신감을 갖는다. 그 후부터는 고물차가 아니라 골동품 차를 타고 다니니 창피하기보다는 ‘keeping up’(옛것을 버리지 않고 소중히 간직함)의 단어를 생각하며 보람을 느낀다.
세상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점점 떨어지는 것이 상례라고 본다. 흔히 오래된 물건을 고물이라고 한다. 반면에 시간이 지나고 오래되면 될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것들이 있다. 옛날 돈, 우표, 기념주화 등 옛 조상들이 쓰던 물건들이 그렇다고 보아 값진 골동품이 된다. 노인과 어르신의 차이가 바로 그것이다. 내 나이 고희가 됐으나 내가 좋아하는 친구, 나를 좋아하는 친구가 많다고는 보지 않지만 그들과 만나면 세월이 지날수록 나에게는 귀한 물품을 대하듯 소중한 생각이 든다. 볼수록 정이 들고 만날수록 친근해지고 시간이 흐를수록 귀히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몇 가지 바라는 마음이 생각났다.

첫째, 내가 친구들에게 골동품과 같은 존재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초등학생에서 대학원 영문학 박사에 이르기까지 사귄 친구들은 숫자로 보아 상당히 많다고 보겠지만 본인이 교직자로서 특히 제자들에게 지식 전달뿐 아니라 베푸는 관용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이들에게 좀 더 겸손하고 따뜻하며 진솔함을 보여주고 싶어진다. 하지만 마음먹은 만큼 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도 있다. 내가 인격과 수양이 부족한 탓이라고 보겠다. 다만 바라는 마음은 앞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만나고 싶고 더 다정한 모습으로 다가서고 싶어진다. 갈수록 쓸모없게 되는 고물인간이 아니라 지날수록 더욱 친근하고 가치 있는 골동품 인간이 되고 싶다.

둘째, 친구들과 제자들에게 값지고 존경받으며 살아가는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 매일 만나도 밥 먹듯이 싫증나지 않고 가끔 만나도 보약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서로의 결점을 덮어주고 관용과 사랑으로 감싸주며, 지난날의 서운했던 일은 모래 위에 새기고, 즐겁고 고마웠던 일은 반석 위에 새기는 친구, 만나면 또 만나고 싶고 자꾸만 만나고 싶은 친구가 됐으면 좋겠다. ‘먼 길을 갈 때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최선의 교통수단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자동차, 기차, 비행기 심지어 로켓(rocket)이 아니고, 남녀 구별 없이 매우 다정한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이 정답이라고 한다.

셋째, 친구들과의 만남은 골동품처럼 귀하고 변함없이 아름다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상 사람들의 만남은 이익이나 쾌락이 될 수도 있지만 그립고 보고 싶어 만나며,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다정하고 진실한 친구면 좋겠다. 좌절한 친구에게는 격려하고 슬픔을 당한 친구에게는 위로하며 기쁜 일을 맞이한 친구를 축하하고 서로를 위해서 칭찬하는 친구가 됐으면 좋겠다. 점점 우정이 메마른 고물 친구가 아니라 만날수록 정이 깊어 값지고 아름다운 골동품 친구가 되기를 소망한다. 순결(純潔)은 흰색이라 물들기 쉽고, 사랑은 붉은색이라 바래기 쉬우나, 우정(友情)은 무색이라 영원하리라. 금슬지교 장생복락 (琴瑟之交長生福樂: 우정이 돈독하니 서로의 행복과 즐거움이 오래오래 지속된다)을 소리 내어 읊어본다.

류제봉 교수
(영어·영어 57)
4.19 민주혁명 동지회 회장

이번 호 ‘지구촌을 읽다’ 코너는
류제봉 교수의 기고글로 대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