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처럼 생겼다

2017-05-10

기자 |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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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처럼 생겼다는 말을 대여섯 번 들어봤다. 처음 한두 번 들었을 땐 별 생각이 안 들었다. 그런데 이후에도 서너 번이나 더 비슷한 얘기를 듣게 됐고, 어느 순간 난 궁금해 하고 있었다. 도대체 ‘기자처럼 생겼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그 의미를 추론하기 위해 먼저 이상적인 기자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기자는 냉철하고, 객관적이고, 정의를 구현하며, 매사에 철두철미하다. 그렇다면 난 냉철하게 생겼나? 평소에 객관적인 편이고, 정의로운가? 철두철미한 성격인가? 몇 가지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이미지가 차가운 편이어서 냉철하게 생겼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점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나머지는 내 인상을 대표할 정도로 나한테 강하게 나타나는 특성들은 분명 아니었다.
기자를 권력의 노예 혹은 ‘기레기’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다면 난 권력에 잘 굴복하는가? 기레기인가? 이 또한 아니다. 설령 그렇더라도 친구들이 나한테 그런 의미로 말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 외에도 더 구체적인 기자의 이미지를 연상해봤다. 사람들 사이에 껴서 정치인 옆에 마이크를 대며 “한 마디만 해 달라”고 하는 기자, 잠 잘 틈도 없이 취재를 다니며 수첩에 무언가 열심히 적는 기자, 중요한 행사에서 맨 앞자리에 앉아 노트북으로 타이핑을 하는 기자, 인사동 쌈지길 앞에 ‘대포카메라’를 설치하고 그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보도를 하는 기자, 연결문제로 이초씩 늦게 대답하는 기자. 이중 어떤 기자의 이미지에 내가 대입되어 ‘기자처럼 생긴’ 사람으로 비춰진 걸까?
어느 마감 날 새벽 5시 30분쯤 기사 작성을 모두 마친 우린 학보사실을 나섰다. 그때 동기 하나가 말했다. “누군가 지금 우릴 보면 기사 쓰느라 밤을 새운 기자란 걸 단번에 알 수 있을 거다.” 별 의미 없이 던진 말 같아보였지만, 그 말이 크게 와 닿았다. ‘기자같이 생겼다’는 말은 ‘초췌해 보인다’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었다.
예전에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선생님은 선생님처럼, 발레리나는 발레리나처럼 생기면 안 된다. 누군가가 그들의 직업처럼 생겼단 건 그들이 스스로의 직업에 얽매여 자신을 잃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면서 과연 기자가 여러모로 기자처럼 안 보이는 것이 가능할까? 만약 기자처럼 보이지 않는 기자가 있다면, 그 기자는 진정한 기자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들은 ‘기자처럼 생겼다’는 말은 물론 초췌하단 의미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기자는 초췌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 내 모습이 어떻게 바뀌어 있을 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