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예보 총성 100년’에 비친 오늘의 교훈과 우리의 선택

2017-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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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Bosnia and Herzegovina, 이후 보스니아로 약칭함)의 수도는 사라예보(주민 수 약 37만 명, 2013)이다. 1461년 오스만 터키는 이곳에 도시를 건설했고, 이후로 사라예보는 전략적 상업 도시이자 유럽 내 대표적인 이슬람 도시로 발전했다.
과거 역사를 통해 보스니아는 유럽 내 대표적인 ‘종교와 문화의 모자이크 지역’으로 불려 왔다. 이곳엔 이슬람을 믿는 보스니아 무슬림 외에도 정교를 믿는 세르비아인, 가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인 그리고 그 외 유대인 등이 서로 복잡하게 혼재돼 거주해 왔다. 그래서인지 미래 학자인 샤뮤엘 헌팅턴은 보스니아를 팔레스타인과 더불어 대표적인 문명 충돌지로 묘사해 왔고, 이곳을 연구하는 학자들 또한 사라예보를 ‘유럽의 예루살렘’이라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오랜 동안 이들 민족들은 여러 역사 속에서 발생한 갈등들 속에서도 서로의 종교와 문화를 존중해 왔다. 그러나 이런 민족, 종교 간 조화로움의 퍼즐은 20세기말 유럽 최대의 민족 분쟁인 보스니아 내전을 통해 깨지고 말았다. 내전 이후, 보스니아는 1국가 2체제, 즉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공화국’ 안에 세르비아계가 장악하고 있는 ‘스르프스카 공화국(RS: Republika Srpska)’(영토의 49%) 그리고 보스니아 무슬림과 크로아티아계가 차지하고 있는 사라예보를 비롯한 영토 51%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Federacija Bosne i Hercegovine)’으로 나뉘어 졌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인 1914년 6월 28일, 종교와 문화의 모자이크인 사라예보에서 총성이 울렸다. 발칸반도로의 진출을 추진하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의 페르디난드 황태자 부부(Franz Ferdinand 1863-1914/ Sophie Chotek, 1868-1914)가 당시 19세였던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였던 가브릴로 프린찌프(Gavrilo Princip, 1894-1918)의 총탄에 사망했다. 황태자 부부가 사라예보를 방문한 이 날은 이들에게 있어선 결혼 14주년을 기념하는 뜻 깊은 날이었다. 하지만, 세르비아인들에게 있어 이 날은 1389년 6월 28일 코소보 언덕에서 치룬 오스만 터키 군과의 전투 패배로 중세 왕국이 몰락한 치욕적인 날이었다.
100년 전 사라예보에서의 총성은 제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됐다. 대전 발발이전, 발칸유럽을 둘러싼 국제 정세는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등 강대국들의 영향력 확보 다툼과 함께 영토 확대를 위한 발칸 유럽 내 국가들 간 잦은 전쟁 등으로 매우 복잡하고 혼미한 상태였다. 독일과의 군사 동맹을 재확인한 오스트리아는 7월 23일 세르비아에게 최후 통첩안들을 제시했다. 이 안에는 황태자 부처 암살과 관련된 인사들의 체포 및 구금 그리고 이를 조사할 수 있도록 오스트리아 관리의 세르비아 입국 허용, 반(反)오스트리아 단체 해산 및 공무원 파면 등 세르비아가 수용하기 어려운 내용들 또한 포함돼 있었다. 약소국이었던 세르비아는 주권을 위협하는 안을 제외한 나머지 안들을 수용하겠다는 뜻을 피력했지만, 7월 28일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게 된다. 7월 29일 역시 발칸반도로의 영향력 확대를 추진하던 러시아에서도 총동원령이 발효됐고, 이에 대해 독일은 러시아에겐 총동원령 해제를, 프랑스에겐 러시아와의 전쟁시 프랑스의 분명한 입장을 요구했다. 러시아의 거부와 프랑스의 전쟁 개입 불사에 대한 답을 들은 독일은 8월 1일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고, 이내 유럽은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됐다. 대전 기간 동안 유럽은 약 500만 명의 민간인과 약 900만 명의 군인이 목숨을 잃었다.
1918년 말, 대전 이후 여러 동유럽 민족들은 ‘민족자결주의’원칙에 따라 각자의 독립 국가를 구성할 수 있었지만 이 또한 패전국의 식민지에게만 해당하는 조치였다. 유럽 내 여러 피지배 민족들의 독립 쟁취 소식은 우리 민족을 자극했고, 곧 이어 1919년 일본 식민지를 벗어나기 위한 독립 만세 운동들이 전개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독립을 얻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당시 강대국 중심의 국제 정치의 결과물과 논의 선상에서 우리의 현실은 무시됐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은 제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었다.
사라예보 총성이 울린 지 100년이나 지난 현재, 보스니아 내 민족들과 유럽의 각 국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이 날을 기념하고 있다. 하지만, 그 다양함 때문이지 이를 바라보는 보스니아 내 민족들과 유럽 각국의 인식 차는 더욱 더 복잡한 스펙트럼을 그려내고 있다.
2014년 6월 28일, EU 공식곡인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가 보스니아 내전 당시 불탔다 재건된 국립 도서관에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콘서트를 통해 사라예보에 울려 퍼졌다. 이 곳에 참석한 세계 각국 인사들은 과거 그 당시처럼 여전히 분열하며 싸우고 있는 발칸반도에 진정한 평화와 통합을 역설했다. 하지만 이날 기념식에는 초기 참석을 희망했던 세르비아 인사들이 참석하지 않아 반쪽 행사로 전락했다. 사라예보 국립도서관 입구에 세르비아인들을 ‘범죄자’로 묘사한 명판이 부착된 데 대한 반발 때문이었다. 대신, 이들은 행사 전날 본토 보스니아 동부에 자리한 ‘안드리치 그라드(Andrić grad/ 비쉐그라드 Višegrad)’에서 2m 높이의 프린찌프 동상을 세웠으며, 세르비아인의 자유와 해방을 싸운 프린찌프의 업적 추모식을 따로 치렀다. 사라예보 총성 100년이 지난 오늘날, 동일한 사건과 인물을 둘러싼 보스니아 내 민족들의 서로 다른 역사적 해석과 견해차는 오늘날 보스니아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해 주고 있다.
사라예보 총성 100년이 지난 오늘날 국제 정세는 대전이 발발한 1914년과 매우 유사하다. 미국 중심의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가 약화되고, 중국 중심의 ‘팍스 시니카(Pax Sinica)’로의 세계 질서 재편이 본격화되는 상황 속에서, 100년 전 프랑스, 러시아 대(對) 독일, 오스트리아처럼, 미국 대(對) 중국 간 충돌 우려가 확대되는 중이다. 국제 역학 구도의 변화 속에 강대국들의 세력 확대 추진, 그리고 끊이지 않는 갈등 고조와 분쟁을 우리는‘사라예보 신드롬(증후군)’으로 묘사하고 있다. 100년 전 그 날처럼 주요 지정학적 전략지들에서의 분쟁과 충돌이 세계 대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이 되새김되고 있다. 그 한 가운데에 자리한 한반도, 이제 우리의 전략적 선택에 대해 심각한 고민이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