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학보사들, ‘백지발행’의 속내 2017-05-10
조규린 기자 | 93klcho704@hufs.ac.kr 조회수 352  댓글 0
지난 13일 서울대학교 학보인 <대학신문>이 1면 백지발행을 했다. <대학신문> 해당 호 1면에는 ‘서울대 공식 언론인 <대학신문>은 전 주간 교수와 학교 당국의 편집권 침해에 항의해 1면을 백지로 발행합니다’라고 쓰여 있다. <대학신문>이 백지발행을 하게 된 배경을 알아보고 학보와 학교, 주간교수와의 관계와 역할을 살펴본 후 5년 전 본지를 되돌아보며 학보의 방향에 대해 파악해보자.

◆백지발행은
신문의 백지발행은 흔히들 ‘무저항의 저항’이라고 한다. 백 마디 말보다 침묵의 영향력은 크다. 특히 신문의 1면 백지발행은 면의 비움을 통해 저항의 목소리를 극대화한다. 백지발행을 통한 침묵은 불의에 대한 규탄과, 억울함에 대한 항의를 나타낸다. 백지발행과 같은 파격적인 편집이 언론사의 저항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백지발행을 한 학보들
지난 13일 서울대학교 학보인 <대학신문>은 전(前) 주간교수와 학교의 편집권 침해로 인해 1면을 백지발행 했다. 최예린 서울대 <대학신문> 편집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지난해 1월 학생기자단은 삼성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다뤄온 시민단체인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을 선정하고 취재 후 기사 작성까지 완료했지만 전 주간교수는 기사가 노동자 입장에서만 작성됐다는 이유로 게재를 막았다”고 말했다. 게다가 “서울대 학생들의 시흥캠퍼스 철회를 요구하는 본부 점거 이슈를 축소하고 개교 70주년 기념의 이슈를 확대하라고 했다”며 백지발행의 배경과 실상에 대해 전했다. 덧붙여 “다른 의견과 시각에 대한 조언을 넘어 기자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조언과 방향 수정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2015년 5월 27일 서울여자대학교 학보인 <서울여대학보>는 주간교수의 편집권 침해로 인해 606호의 1면을 백지발행 했다. 서울여대 총학생회가 학내 축제 개최를 이유로 청소 노동자들이 걸어놓은 현수막을 일방적으로 철거하자 서울여대 졸업생 143인이 이에 대한 비판 성명을 내고자 했다. 그러나 <1면 백지발행에 대한 입장문>에 따르면 주간교수가 학보 인쇄를 앞두고 성명서를 실을 경우 발행을 허가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다며 졸업생 143명이 졸업생 전체를 대표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론이라고 보기 어렵고 학보사는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고 밝혔다.

◆학보와 학교, 학보와 주간교수, 그 구조성
서울권 대학 학보사 연합인 서울권대학언론연합회에 소속돼있는 학교를 대상으로 알아본 결과, 각 대학교의 학보는 학교 내 기구에서 각각 다른 위치를 갖고 있다. 서울대 학보인 <대학신문>은 학교 산하기구이지만, ‘법인 및 기타기관’으로 분류돼있다. 서울대에서 ‘기타기관’으로 분류된 시설은 노동조합과 서울대학교병원, 총학생회 등이 있다. 서울여대 학보인 <서울여대학보>도 학교 산하기구이지만, 도서관과 박물관 등과 함께 ‘부속기관’에 속해있다. 고려대 학보인 <고대신문> 또한 학교 산하기구이며, 정확히는 ‘고려대학교 교육부총장 산하 기타기관’의 하나로 소속돼있다. 경희대 학보인 <대학주보>는 학교 ‘신문방송국 산하기구’다. ‘신문방송국 산하기구’에는 <대학주보> 외에 방송국과 영자신문사가 있다. 또한 국민대 학보인 <국민대신문>을 포함해 본지의 조사에 응한 대부분의 학보사가 대학 산하기구의 범주에 속한다.
하지만 각 대학의 학보는 주간교수의 참여도에서 차이를 보였다. <대학신문>에서는 일주일 중 세 번의 공식적인 편집회의 중 주간교수가 두 번 참여한다. 이때 주간교수는 소재의 발제를 듣고 검토 및 조언을 한 후 초판을 검토한다. <서울여대학보>의 경우는 2년 전의 백지발행 이후 주간교수가 바뀌었는데, 아이템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 최종 기사를 살펴보는 정도의 참여를 하고 있다. <고대신문>은 편집국장의 편집권이 보장된 편이다. 편집국장은 주간교수가 참여하는 기획회의에서 한 주 신문의 방향성을 결정한다. 한편, <대학주보>는 간사가 학보편집에 참여하는 편이고 <국민대신문>에서는 주간교수가 학생기자들의 의견을 존중해 원만한 운영을 하고 있다.
우리학교 학보인 본지는 ‘대학본부 서울캠퍼스 부속기관 외대신문사 소속’이다. 채영길 외대학보 주간교수는 “주간교수로서 교내에 어떤 일이 있는지 먼저 파악하려고 노력한다”며 편집의 구체적인 절차에 대해서는 “학교의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편집장에게 중요한 이슈 기사화를 건의한 후, 내부 회의를 통한 편집계획서를 보고 사건의 접근 시각을 제안 및 조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조판이 되면 편집에 대해 추가로 이야기하고 전체적인 것을 조율하는 역할이다”고 설명했다. 또한 주간교수의 역할에 대해 “공정한 교내 언론사 역할을 하고 교내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려 노력한다”며 “편집에 대한 관여를 최소화하려하기 때문에 제도가 관여할 수 있는 상황이더라도 학생기자들의 입장을 지켜주려 한다”고 밝혔다. 또한 “학보가 내부 공동체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많은 커뮤니티들과 연계해 교내 구성원들의 많은 목소리를 담을 수 있어야 한다”며 “주간교수는 이를 지원하고 저널리즘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자리”라고 말했다.

◆5년 전의 외대학보는
2012년 12월, 본지는 총학생회 선거를 앞두고 출마 후보의 공약 소개와 분석 등을 담은 호외 특집호를 준비했다. 그러나 학교 측에서 예산과 선거에 미치는 영향 등의 이유로 이를 금지했다. 당시 본지 기자단 측은 학교 측의 주장을 언론에 대한 비상식적인 탄압으로 규정하고 선거특집호를 인쇄했으며 기자들의 사비로 만든 자체 발간 지면을 직접 배포했다.
당시 학교 측은 신문 발행 중지 조치를 철회할 생각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게다가 당시 일부 처장들은 이번 선거가 단선이라 후보가 하나밖에 없는 선거이기 때문에 학보에서의 공약 소개는 불법 선거 개입이라며 학생들의 행동이 정치적 목적이 될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학교 측이 총학생회 선거 관련 보도 자체를 막으며 학보의 발행을 중지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당시 정기자였던 양재상 씨는 “학보에서 그런 방식으로 신문을 발행했는데도 학교에서의 공론화가 충분히 되지 않았던 것 같다”며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행동했지만 해결된 것 같지 않게 느껴져서 안타까웠다”고 밝혔다.

◆학보의 방향은
김춘식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는 “학내 저널리즘의 역할을 무엇으로 볼 것이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학보 역할의 규정에 따라 발행인과 주간교수, 기자의 역할이 정해지고 학보의 존립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학교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라고 규정한다면 학교의 메가폰 역할을 하게 되지만, 학교의 정책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면 학생들의 입장에서 학교 행정에 참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저널리즘은 기본적으로 환경 감시 기능을 하기 때문에 기성 언론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정부를 감시하는 것과 같이 학보가 대학을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학교 구성원들이 학보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도 중요하다”며 “다른 학교 학보와의 비교 및 분석을 통해 학생들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기사의 유형과 방식을 재편성해야한다”고 말했다.
학보의 내부적으로도 “기사를 작성함에 있어 위계 구조를 신경 쓰게 되면 자기 검열이 일어나기 때문에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뉴스 가치만을 바라보고 기사를 써야한다”고 조언했다. “사건을 바라봄에 있어서는 주제의 관련성뿐만 아니라 주제에 대한 접근 방식이 중요하다”며 “기성 언론과는 다른 대학생들의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접근 시각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덧붙여 거시적인 관점에서 채영길 주간교수는 “이미 사회에서 요구하고 있는 정보의 자료와 커뮤니티가 다양하지만 기성 언론에서도 이를 하나로 모으는 미디어가 없는 것이 문제다”며 “뉴미디어적인 프레임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학보의 역할 또한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규린 기자 93klcho704@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