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들을 위한 제도? 선배들을 위한 웃음거리? 2017-03-08
이하정 기자 | 94haj@hufs.ac.kr 조회수 940  댓글 0
새내기들은 입학 전 만들어지는 새내기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이하 단톡방)에서 궁금증을 미리 해결하고 대학생활을 엿본다. 하지만 이런 단톡방에 소위 ‘엑스맨’이라 불리며 신입생인 척 잠입하는 ‘스파이’ 선배들이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일부 학생들은 이를 ‘선·후배 간 친해지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로 보지만 일부는 엑스맨 제도를 ‘새내기들을 골탕 먹이는 악·폐습’이라며 비판한다.
새내기 오리엔테이션(이하 오티)이나 새내기배움터(이하 새터)에서 진행되는 ‘새내기 장기자랑’도 매 해 입학 시기가 되면 일어나는 논란 중 하나다. 새내기 장기자랑은 강제적으로, 혹은 자율적으로 선배들 앞에서 시행되는 학과 행사다. 하지만 이 또한 ‘선·후배간 즐기는 행사’로 여기는 의견과 ‘후배들을 괴롭히는 악·폐습’으로 보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이렇게 매해 입학 시기마다 갑론을박 논쟁이 일어나는 이 제도들은 계속 진행돼야하는 것일까?


◆엑스맨, 새내기들이 원하는 제도일까?
새터에 온 17학번 새내기 김 씨는 아연실색했다. 처음 새내기 단톡에 들어왔을 때부터 활동한 16학번 ‘엑스맨’이 정체를 밝혔기 때문이다. 그녀는 불쾌한 기분을 느꼈다. 엑스맨 선배가 새내기들의 단톡방을 염탐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티나 새터 때 먼저 말 걸어준 사람, 어색했던 새내기 단톡방 분위기를 풀어줬던 사람 또한 그 선배였기 때문에, 그 선배를 마냥 미워할 수도 없었다.
입학시기가 되면 페이스북 페이지인 한국외국어대학교 대나무숲(이하 대숲)에는 엑스맨과 관련된 글들이 넘쳐난다. 이번 해에도 ‘어떤 의도로 엑스맨을 하는 건지 잘 알겠지만 새내기 단톡에서 먼저 말을 조금 나눴다고 친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엑스맨은 성과가 없다고 본다’, ‘엑스맨으로 인해 선·후배간의 믿음이 깨지는 거 같다’, ‘새내기들은 선배들에게 농락당했고 웃음거리가 된 것 같다’ 같이 엑스맨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들이 올라왔다.
대숲에서 모 학과의 새내기라고 밝힌 작성자는 ‘수시 합격자가 발표돼 새내기 단톡방이 만들어진 이후 12월 말까지 단체 카톡방에 선배가 들어와 새내기 행세를 했다’는 글을 올렸다. 이 작성자는 ‘과회장의 사과와 정확한 상황 설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지만 사건 대한 설명이나 해명에 대한 댓글은 달리지 않았다. 대신 ‘글쓴이가 대학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작성자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드린 거 같다’와 같이 작성자를 탓하는 댓글이 달려 더 큰 마찰로 이어졌다. 결국 이 사건은 오프라인에서 과회장과 새터 주체가 직접 새내기들에게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반면 대숲의 일부 글들은 ‘엑스맨 덕분에 더 재밌는 새터가 됐다’, ‘다음 해에도 꼭 엑스맨을 하고 싶다’와 같이 엑스맨에 대한 긍정적 의견을 담은 글들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번 해 엑스맨 제도를 시행한 조용근(사회·정외 16) 정치외교학과 과회장은 “새내기들은 정보를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학교 일정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잘 몰라 어려움을 겪는다”며 “엑스맨이 새내기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거나 새내기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분위기를 주도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며 엑스맨의 긍정적인 기능을 밝혔다. 또한 “엑스맨을 밝힌 후 새내기들에게 기분을 물어봤는데 다들 재미있었다고 말했고 선·후배 사이에 큰 갈등이나 오해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장기자랑, 재밌기는 한데...
새내기인 박 씨는 새터 장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 수치심과 좌절감을 느꼈다. ‘버스판’이라고 불리는 버스 안 새내기 장기자랑 때문이다. 평소 노래나 춤을 즐기지 않았던 박 씨는 장기자랑에 관해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하고 버스에 올랐다. 하지만 새터 장소로 가는 버스에서 지목된 새내기들은 빠짐없이 장기자랑을 선보여야 했고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장기자랑을 하고 싶지 않았던 박 씨는 ‘전통’을 강조하며 강압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선배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노래를 불러야 했다. 박 씨는 이로 인해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느꼈지만 또 다른 새내기 이 씨는 “빨리 준비한 노래를 선보이고 싶다”며 “버스판 덕분에 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았고 선배와 후배 사이에 유대감이 생긴 것 같다”고 버스판에 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장기자랑도 엑스맨 제도와 마찬가지로 긍정적인 의견, 부정적인 의견이 대립한다. 대숲에는 여전히 새내기 장기자랑에 대한 찬·반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이러한 논란 때문에 인도어과는 새내기 장기자랑을 폐지했다. 이호림(동양어·인도어 13) 인도어과 과회장은 “새내기 장기자랑은 대숲에서 큰 논란이 되는 행사다”라며 “그런 여론을 반영해 이번 오티와 새터에선 버스판을 비롯한 장기자랑을 전면 폐지했다”고 말했다. 또한 “사전에 새내기들에게 장기자랑이 없다고 통보하니 이에 대한 새내기들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장기자랑을 폐지해 생긴 단점도 있었다. 이호림 인도어과 과회장은 “새내기 장기자랑을 폐지하니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부족했다”며 “그래서인지 지난해에 비해 새내기들과 친해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 것 같다”고 밝혔다.
선·후배가 함께 참여하는 장기자랑 행사를 진행한 학과도 있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새터 주체 차유경(사회·미컴 16) 씨는 “선배들이 새내기들의 장기자랑 준비를 도왔다”며 “선·후배가 함께 준비한 장기자랑은 선·후배 사이를 가깝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신입생들의 장기자랑을 구경한다는 의미보다는 장기자랑 준비 과정과 선후배간의 화합의 역할을 더 중요시 한다는 입장이었다. 차유경 씨는 최근 대숲에 올라온 장기자랑 논란에 대해 “일부 학과에서 새내기 장기자랑을 ‘강압적인 분위기’ 내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통을 지키고, 악습을 폐지하고
‘엑스맨’과 ‘신입생 장기자랑’은 여전히 찬·반이 갈리는 문제다. 일부 학과에선 이런 제도들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한 학과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강제적이었던 버스판을 ‘신청제’로 바꾸고, 새내기만 참여하던 장기자랑에 선배들도 함께 참여하면서 ‘단지 선배들을 위한 제도’라는 인식을 바꿨다.
엑스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새내기인 김효경(사회·정외 17) 씨는 “처음에는 새내기들 사이에 엑스맨 선배가 있다는 사실이 불쾌했지만 엑스맨의 긍정적인 의도 듣고 나니 이해가 됐다”고 말했다. 엑스맨을 밝힌 후 적절한 설명과 대처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선·후배가 서로를 존중하면서도 의미 있는 입학 문화를 만들기 위해선, 전통을 유지하는 동시에 악습은 없앤 다양한 콘텐츠 개발이 필요해 보인다.


이하정 기자 94haj@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