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화장실에서 ‘그것’이 사라졌다 2017-03-08
김희지 기자 | 93heedying@hufs.ac.kr 조회수 3233  댓글 0
 
-사라진 휴지통의 자취를 따라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화장실 칸 안에 비치돼 있는 휴지통은 익숙하다. 우리나라에 살면서 ‘변기가 막히니 화장지는 휴지통에 버려주세요’라는 경고문을 본 적 없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2009년 한 외국인 여행객이 유튜브(YouTube)에 올린 영상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했던 화장실 문화에 의문을 제기했다. ‘한국 화장실 휴지(Korean Toilet Paper)’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영상 아래엔 ‘주의: 엄청 역겨운 영상(Warning: super gross images)’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었다. 단순히 변기와 그 옆에 놓여있는 휴지통을 클로즈업하며 찍은 1분 30초의 짧은 영상이었다. 이 영상의 조회수는 20만 건을 넘었고 외국인들은 ‘더럽다’, ‘충격적이다’는 반응을 보였다.
화장실 칸에 휴지통을 비치해 놓는 곳은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남아메리카의 몇몇 국가뿐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에 변화의 물결이 밀려왔다.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와 공공기관을 비롯해 여러 단체와 기관들이 ‘화장실 휴지통 없애기 운동’을 시작했다. 사라지고 있는 화장실 휴지통, 그 자취를 따라가 본다.


◆‘휴지는 휴지통에’, 언제부터? 왜?
88올림픽이 개최될 당시, 서울 공공화장실의 70퍼센트 가량은 재래식이었다. 재래식 화장실에서는 주로 값싸고 물에 녹지 않는 질긴 휴지를 사용했다. 재래식 변기는 구조상 어떤 휴지를 이용해도 막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좌변기가 들어오기 시작하며 문제가 발생했다. 재래식 화장실에서 쓰던 휴지를 좌변기 화장실에서도 동일하게 쓰다 보니 변기가 막히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좌변기에 휴지를 넣으면 잘 막힌다’는 고정관념이 생겼고, 이때부터 우리나라에선 변기 옆에 따로 휴지통을 두게 됐다.
이후 좌변기가 막히는 원인이 물에 녹지 않는 재래식 화장실용 휴지를 썼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발견됐다. 요즘엔 예전과 달리 물에 녹는 화장지를 쓰기 때문에 화장지가 변기 막힘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화장실에서 사용한 휴지를 휴지통에 넣는 문화를 지속하고 있다.

◆휴지통에 휴지 버리기, 왜 안 좋나
정유식(경영·경영 15) 씨는 “정말 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공공화장실을 쓰지 않는다”며 “누군가가 사용한 휴지를 보는 것은 곤욕”이라고 했다. 이처럼 사용한 휴지를 휴지통에 버리는 것은 시각적인 혐오감을 준다.
미관상뿐만 아니라 위생상 문제도 발생한다. 사용 후 공기에 노출된 휴지에서는 각종 세균이 증식한다. 세균은 공기를 타고 점점 빠른 속도로 화장실 전체로 퍼져나간다. 화장실에서 나는 악취도 이와 관련돼있다. 손우준(경영·경영 15) 씨는 “화장실 칸 안에 들어가면 옆에 있는 휴지통에서 냄새가 심하게 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럴 때마다 도대체 왜 화장실 칸 안에 휴지통이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화장실에서 느끼는 불쾌감의 원인은 휴지통에 있는 경우가 많다.

◆휴지통 없애기 운동
정부는 2년 전부터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에 ‘화장실에 있는 휴지통을 없애라’고 권고하고 있다. 백충엽 행정자치부 사무관은 “냄새뿐만 아니라 공기오염 등의 문제가 있다”면서 “이는 국가 이미지와도 직결된다”며 이 같은 정책을 시행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이후 서울 시청 등 공공기관에서 먼저 화장실 휴지통을 없애기 시작했다. 우리학교 화장실에도 휴지통을 대신해 위생용품수거함이 설치됐다.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정책 시행 이후 지하철 5~8호선의 모든 화장실의 휴지통을 없앴고, 한국도로공사는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휴지통 없애기 운동’을 실시하고 있다. 이처럼 전국에 있는 화장실의 휴지통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속출하는 문제, 어떻게 해야 하나
제도가 정착하는 단계인 만큼 문제가 속출했다. 휴지통이 담당했던 역할을 변기가 대신하게 되면서 변기 막힘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게 된 것이다. 우리학교의 경우 세면대 옆 휴지통까지 없애 문제가 됐다. 손을 닦은 휴지를 버릴 곳이 없어 변기 하나가 아예 휴지통처럼 쓰이기도 했다. 이에 우리학교 도서관에선 없앴던 휴지통을 다시 배치했다. 권영진(경영·경영14) 씨는 “세면대 옆에 휴지통만 두어도 변기 막힘이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변기가 막히는 이유는 변기에 휴지가 아닌 위생용품, 물티슈 등을 무분별하게 버리기 때문”이라며 “시민 의식개선을 유도하면 문제가 점차 해결될 것”이란 입장을 드러냈다. 서울도시철도공사 관계자는 “여성 및 장애인화장실의 경우 각 칸마다 위생용품 전용수거함을 설치하는 한편, 승강장과 전동차의 액정표시장치(LCD) 홍보와 안내문 등을 통해 깨끗한 화장실 이용을 유도하겠다”고 했다.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지난해 10월부터 에코 변기(변기 막힘 현상을 개선한 친환경 변기)를 설치하는 시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기존의 변기는 휴지로 인한 막힘 현상이 빈번히 발생했지만 새로 설치한 친환경 에코 변기로 막힘을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계역, 마들역, 천호역 등에서 에코 변기를 시범 운영했고 그 결과 변기 막힘 현상이 95% 감소했다. 특히 하계역에서는 변기 하나당 막힘 건수가 기존 35.5회에서 1.2회로 줄었다. 막힘 현상을 96.7% 개선한 것이다.
새로운 제도가 들어오는 시기엔 여러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위생적이면서도 편리한 화장실을 만들기 위해서 정부와 민간 모두 알맞은 대책을 마련해 단계적으로 시행해야 할 것이다.


김희지 기자 93heedying@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