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을 보며

2017-03-08

신성윤 |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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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민족들이 다양한 문화를 그리며 오늘도 지구촌을 함께 꾸며 가고 있다. 그들 가운데 유난히 한민족과 유사한 역사적 경험과 심성을 가진 한 민족이 눈에 들어온다. 세계 인구의 0.2%를 차지하고 있는 유대인들이다. 서양에서와 달리 우리에게 비춰지는 유대인들의 모습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흔히들 유대인들의 탁월성을 노벨상 수상에서 언급한다. 지금까지 노벨상을 수상한 개인들 중 유대인의 비율은 20%를 조금 넘는다. 0.2% 인구에서 20%를 넘게 수상했으니 대단하다고 할 만하다.
유대인은 여러 면에서 흥미로운 민족이다. 제일 먼저 부각되는 것은 그들의 자체적 다양성이다. 유대인들은 더 이상 한 핏줄이 아니다. 외모가 서구화된 ‘아쉬케나짐’이 있는 가하면 유대인 본래의 체형과 외모에 가까운 모습을 지닌 것으로 여겨지는 ‘스파라딤’이 있다. 언제 어떻게 들어갔는지 모르지만 아프리카 대륙으로 내려갔다가 수천 년 만에 귀환한 흑인 계열 유대인도 있다. 언젠가 한국으로 흘러 들어온 유대인들이 있다면 그들은 지금 평범한 한국인의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외적으로도 다양한 유대인들의 내적 세계는 더욱 복잡하다. 이천 년 전의 유대 바리새파 전통을 따라 사는 소수의 정통파 유대인들(Orthodox Jews)이 있는가 하면 무신론자임을 자처하는 다수의 세족주의 유대인들(Secular Jews)이 있다. 정통파처럼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지도 않지만 세속주의자들처럼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지도 않는 전통주의 유대인들(Traditional Jews)도 존재한다. 신학적인 관점에서 유대교는 크게 세 부류로 나누어진다. 옛 율법을 고수하는 정통주의 유대교, 유대 율법의 현대적 해석을 과감하게 적용하는 개혁주의 유대교, 정통주의와 개혁주의 양끝을 잡으며 그 둘을 견제하면서도 타협을 추구하는 보수주의 유대교가 그것이다.
유대인들이 가진 다양성의 스펙트럼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이 공유하는 유대적 동질성이다. 유대인 엄마에게서 태어난 모든 이들은 유대인으로 규정된다. 어떠한 태생적 배경도 ‘유대인 됨’의 동질성을 건드릴 수 없다. 타 종교에서 개종한 유대인들도 동일한 유대인으로 여겨진다. 태어난 유대인이나 개종한 유대인들 간에는 유대인 됨에 있어서 어떠한 차이나 차별도 없다. 유대민족이 가진 이 다양성과 동질성의 조화가 이들의 민족적 역량일지 모른다.
유대인들과 함께 지내면 보이는 특징들 중 하나는 ‘안식일’이다. 금요일 저녁 해가 지면서 시작되고 토요일 해가 지면 끝이 난다. 철저하게든, 느슨하든 모든 유대인들이 이 안식일을 지킨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켰기 때문에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켰다”고들 말한다. 안식일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연속적인 시간의 구별, 내지 단절에 있다. 168시간 가운데 24시간은 안식해야 하는 시간이다. 유대인들 가운데는 ‘일 중독자’가 생기기 힘들다. 유대인들은 일하기 위해서 쉬는 것이 아니라 쉬기 위해서 일한다.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히브리어에서 ‘일’이라는 단어와 ‘노예’라는 단어는 같은 어근을 가진다. 여기서 유대인들이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이 보인다. 그들에게 삶의 목적은 노동이 아니라 쉬고 누리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물질적인 풍요의 문제와 상관없이 대체적으로 유대인들은 심적으로 여유로워 보인다.
유대인들의 구전율법을 기록한 미쉬나의 산헤드린 4장 5절에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 בשבילי נברא העולם “세상은 나를 위해서 창조됐다”. 세상이 나를 위해서 창조되었다는 표현은 어떻게 보면 독선적이고 이기적이다. 그렇지만 그 만큼이나 유대인들에게 한 인간의 존엄이나 가치는 절대적이다. 유대인들이 상대방을 짓밟는 경쟁을 가능한 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들은 다른 이들이 건드리지 영역들을 찾아 개척한다.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한 깊은 인식이 타인의 존재 가치도 인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유대인들의 창의성은 남이 하지 않는 것을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유대인들은 한 개인 안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전제한다.
해마다 4월경이면 유대민족 최대의 명절인 유월절이 돌아온다. 4백년간 노예로 살았던 이집트에서의 탈출을 기념하는 해방절로 전 세계 모든 유대인들이 지킨다. 유월절이 다가오면 모든 유대인 가정이 하는 일이 있다. 집안 대청소다. ‘하메쯔’라 불리는 발효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모든 음식물을 집안에서 청소해 내어야 한다. 가장 신경 쓰이게 만드는 것은 집안 어디엔가 남아 있을 빵 부스러기나 과자 조각들이다. 샅샅 쓸고 닦고 나면 아이들이 촛불을 켜고 집안 구석구석을 비쳐보며 혹시라도 엄마가 뭔가 남기지 않았는지 살피는 상징적인 행위도 한다. 그렇게 8일간은 ‘마짜’라 불리는 발효되지 않는 빵을 먹으며 산다. 유월절을 맞으며 일 년에 한 번씩 집안 대청소를 하듯이 복잡한 유대사회도 정기적으로 자신을 정화하는 전통을 일궈왔다. “생선은 머리부터 썩는다”는 서양 속담은 유대인들에게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부패가 발생하면 그 모든 책임은 지도자에게 있다는 유대인들의 인식은 우리의 것과 사뭇 다르다. 몸통은 두고 꼬리만 자르거나 깃털만 뽑아온 우리와 달리 유대인들은 대가리를 쳐낸다. 아무리 열렬한 환호를 보낸 자신들의 지도자라도 범법한 것이 발견되면 유대인들은 가차 없이 그를 제거한다. 지금도 두 명의 이스라엘 전직 대통령이 감방에 서 형을 살고 있다.
유대인들에게서 배우는 다른 하나는 그들의 진취성이다. 유대인들이 가진 표현 가운데 ‘תיקון עולם 티쿤 올람’이라는 개념이 있다. 세상을 고치고 개선한다는 뜻이다. 점차 혼탁해져 가는 세상에서 개인은 잘못 된 것을 개선하지 않으면 퇴보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매주 돌아오는 안식일에 규칙적으로 돌아오는 유대 명절들을 보면 이들은 도대체 언제 일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 와중에서도 유대인들은 꾸준하게 자신들을 개선해 나간다.
온 세상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은 자신을 이산민, 곧 디아스포라(Diaspora)라고 부른다. 이스라엘 독립선언서는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이 디아스포라의 집산이라고 규정한다. 자신들의 모국을 떠나 세계 여러 곳으로 흩어져 사는 많은 외국인들과 타민족들의 이민들 가운데 그런 경우가 더 있는지 모르겠지만 재외 한국인들이 이 용어를 사용한다. 디아스포라는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조국을 가진 해외 이주민들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용어다. 그렇게 생각하는 재외 한국인들의 의식은 어떤 면에서 유대인들과 닮아 있다.
한 때 미국에서 한국이민자들을 ‘Oriental Jew’라고 불렸다. 좋은 호칭은 아니었지만 이는 아마 일반 미국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이 유대인과 비슷한 이미지를 가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유대인들과 한국인들의 미국이민 역사는 다르다. 한국인들이 처음 하와이 농장으로 가기 시작했을 때 유대인들은 이미 본토에 자리 잡고 있었다. 미국 이민의 역사적 문맥과 규모도 달랐다. 그렇지만 미국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생각하면 유대인들과 한국인들의 역량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외대를 만나면 세계가 보인다. 그러나 세계를 움직이려면 유대인들을 만나야 한다. 세계 유수의 대학들엔 히브리어 또는 유대학 관련 학과들이 있다. 국회가 입법한 ‘특수외국어 교육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에 즈음하며 한국외대 안에 ‘히브리 유대학과’ 개설을 고려해봐야 한다. 히브리어와 유대학 관련 학과는 모교의 명성에 상당한 프리미엄을 가져다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