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네잎 클로버 시베리아

2016-09-20

글 홍석진 기자/사 | 93hong@hufs.ac.kr 93jyp@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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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진 국가다. 이 광활한 러시아 동쪽엔 러시아에 속한 21개 공화국 중 하나인 사하공화국이 있다. 사하공화국은 러시아 행정구역 중 가장 크며 석유, 천연가스, 석탄, 다이아몬드, 금 등 다양한 천연자원이 풍부하다. 하지만 내륙 지방이란 특성상 고립돼 경제적으로 낙후돼 있다. 이에 따라 사하공화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선 사하와 인접하고 있는 한·중·일과 교류가 필수적이다. 사하공화국은 교류 증진을 위해 인접국의 언어를 배울 수 있는 학교를 설립할 계획을 하고 있었다.
강덕수 교수는 1994년 한국에서 3천 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 사하공화국에 한국학교를 설립했다. 사하한국학교는 초·중·고 종합학교로 우리나라의 교육시스템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며 설립 후 22년이 지난 지금 야쿠츠크(사하공화국의 수도)의 명문 학교가 됐다. 강덕수 교수는 지금도 한국과 러시아를 오가며 두 국가의 연결 다리가 돼주고 있다.

청춘, 러시아를 만나다

Q. 1972년에 우리학교 노어과에 입학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소련에 대한 이미지 때문에 소련어(러시아어)를 전공한다는 것 자체가 안 좋게 보일 수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왜 많은 학과 중에 노어과를 지원했나?

A. 러시아와 러시아어과를 선택한 이유는 많다. 가장 큰 이유는 10년 뒤엔 러시아, 그 당시 소비에트 연방과 우리나라의 외교관계가 열릴 것이란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시아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프로스트의 시인 ‘가지 않은 길’처럼 나는 아무도 가지 않은 다른 길을 걷고 싶었다. 가지 않는 길을 걷는 것은 모험이다. 러시아를 내가 열 수 있는 방대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러시아어로 내 인생에 승부를 걸고 싶었다.

Q. 대학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가?

A. 대학생 때는 문학, 신문,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글 쓰는 것이 좋아서 신문을 많이 읽었고 사회 정의를 위해 사실을 전하는 기자가 꿈인 적도 있었다. 러시아어를 공부하기 위해 러시아 문학회를 창립해서 ‘자작나무’라는 번역시집을 낸 적도 있다. 러시아어를 한국어로 번역하기도 했으며 내가 쓴 시를 러시아어로 번역해서 시집에 실은 적도 있다. 외대 학보에서 주관하는 문학상 응모전에서 번역부문 상도 받았다.
Q. 교수님은 한국 교수 최초 공식적으로 소비에트 연방에 방문했다.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방문했나?

A. 그 당시 슬라브학회 총무를 하고 있었다. 소비에트 연방의 학술원(Академия наук СССР)에 교류하고 싶다고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초청장이 왔고 1989년에 일본을 거쳐 공식적으로 소련에 방문했다.

야쿠츠크의 자랑 사하한국학교

러시아 시베리아에 있는 사하한국학교는 사하프랑스학교와 함께 외국 국가 이름이 들어가 있는 학교 중 하나며 22년이 지난 지금 태권도, 한국어 등 한국의 정신을 전파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개교 초에는 200여 명에 불과했던 학생 수가 현재는 500여 명에 이른다. 많은 러시아인이 이곳에서 공부해 졸업 후 명문대학교에 진학하고 있다. 개교 초엔 강덕수 교수가 직접 봉사단을 파견했으며 그동안 스쿨버스로 스타렉스를 보내고 컴퓨터 등 교육 기자재를 지원했다. 사하한국학교 학생들이 한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매년 2~3주간 초청하는 행사도 22년간 지속해 오고 있다. 또한, ‘한류’라는 단어가 생기기 전에 사하공화국에 한국 문화를 보급함으로써 민간공공외교를 실천했다. 2000년엔 사하한국학교에 설립에 힘입어 북동연방대학교에 한국학과를 개설하는데 기여했다.

Q. 러시아는 21개의 공화국을 가지고 있는 연방국이다. 왜 하필 시베리아에 낙후된 공화국 사하에 한국학교를 설립했나?

A. 사하공화국과 나의 만남은 운명이었다. 내가 노어과 학과장이었을 당시 사무실로 전화가 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야쿠츠크시 관계자였고 도움이 필요해 사무실로 찾아오겠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나라 민속학자 한 명이 야쿠츠크에 설립될 한국학교를 지원해 주겠다고 약속을 한 모양이었다. 그 대가로 많은 민속자료를 받아갔지만 야쿠츠크시 관계자들이 한국에 방문했을 땐 그 민속학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어쨌든 한국 사람이 학교를 지원해 주겠다 약속했으니 우리 중 누군가는 책임져야 했다. 러시아어를 전공하는 내가 도움을 줘야한다고 생각했다.

Q. 개교 22년이 지난 지금 사하한국학교는 명문이 됐다. 사하한국학교의 특별한 점은 무엇인가? 2000년에는 사하학교에 이어 북동연방대학교에 한국학과가 개설됐는데 어떤 공헌을 했나?

A. 사하한국학교엔 연장자를 공경하고 예절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문화가 존재한다. 이런 문화가 사하한국학교를 명문으로 만들었다. 이외에도 사하 한국학교는 명문대학 진학률이 매우 높기로 유명하다. 러시아도 한국처럼 학구열이 높고 대학 입시가 치열하다. 사하한국학교는 사하공화국에서 대학 진학률이 상위권에 속한다. 그리고 사하한국학교에 들어가면 우리나라에 연수 올 수 있는 특전이 제공된다. 이는 러시아의 다른 학교들과 차별되는 장점이다.
한국학교 설립에 이어 한국학과를 개설하기 위해 공들였다. 그 당시 한국학과 설립에 소극적이었던 야쿠츠크 대학교 총장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결국 2000년에 한국학과가 개설됐다.

Q. 설립 당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A. 가장 힘들었던 것은 교사파견이었다. 물론 지금이야 사하한국학교에서 자생적으로 교사들을 임용하고 있지만, 개교 초에는 그럴 수 없었다. 안전 문제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군복무를 마친 남자 교사 4명을 파견했다. 그 후 10여 년간 우리 학교 학생들을 파견했다. 이번 여름엔 사이버한국외대 한국어학부 학생들이 연수 차 방문해 현지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마음껏 꿈꾸고 실천하라

Q. ‘성공’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A.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가장 실패한 인생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 삶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순 없기 때문에 현실에 뿌리내릴 수 있는 이상을 찾는 게 중요하다.

Q.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A. 처음엔 왜 러시아를 택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나는 러시아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러시아어를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시베리아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그리고 시베리아를 만나기 전에 나는 러시아를 만났다. 이처럼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 현실에서 기반을 쌓고 얼마나 노력하는가에 따라 인생의 당락이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