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로울 수 있을까

2016-09-20

추진희 기자 | 92clelia@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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횅하던 총장실 앞이 학생들로 가득 찼다. 학교는 당황하고 학생들은 뿔이 났다. 박철 전 총장이 명예교수(名譽敎授, 대학교 또는 대학에서 교원으로 재직하다 퇴직한 자 중에서 그 재직 중의 업적이 현저한 자를 추앙(推仰)하기 위해 당해 대학교 또는 대학에서 추대한 자)로 추대된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부터다. 총장실 앞 점거 농성은 지난 10일부터 8일간 지속됐으며 서울캠퍼스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22일 교육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박철 전 총장 명예교수 임명에 대해 교육부의 감사를 촉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박철 전 총장의 명예교수 임명 철회 성명에 1000명이 넘는 우리학교 학생들이 동참했지만 학교와의 견해차는 좀처럼 좁아지지 않고 있다. 학교와 학생 간의 갈등은 해결될 수 있을까.

◆재판 선고
박철 전 총장은 지난 6월 16일, 재판에서 교비를 횡령한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받았다.
2014년 7월, 민주노총 전국대학노동조합 한국외국어대학교 지부(이하 노조)가 2006년 2월부터 2014년 2월까지 8년간 박철 전 총장이 우리학교 총장으로 재임할 때 교비(校費, 학교의 여러 일을 하는 데 드는 돈)를 지출했다며 그를 검찰에 고발한지 2년이 지나서였다. 노조는 박철 전 총장이 교직원을 징계 및 해고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교비를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박철 전 총장은 지난해 8월 약식기소로 벌금 1000만 원을 물었었다. 하지만 박철 전 총장은 이에 순응하지 않고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그러나 교비에서 12억 원을 지출한 혐의(업무상 횡령 및 사립학교법 위반)로 기소된 박철 전 총장은 전과 동일한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6월 박철 전 총장의 명예교수 임용이 교원인사위원회에서 승인되자 서울캠퍼스 비대위는 항의 방문 및 공문 전달, 점거 농성, 기자회견 등을 통해 박철 전 총장의 명예교수 임용 철회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노조가 그를 고발한 이유
박철 전 총장을 고발하게 된 자세한 경로를 묻자 신승철 우리학교 노조 지부장은 “박철 전 총장이 ‘노조가 인사권을 가지고 있으며 초봉이 다른 학교에 비해 높다’는 이유로 단체 협약을 파기했다”며 “이에 반발해 노조가 파업하자, 불법파업을 했다고 노조 직원들을 부당하게 해고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12억의 법무비용이 발생했는데 이를 교비에서 충당해 박철 전 총장을 고발하게 됐다는 것이다.
“처음엔 단순히 교비 횡령으로 고발했지만 지금 다시 사회에서 재조명되고 있는걸 보아 다시는 이런 일이 이러나지 않도록 조취를 취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신승철 지부장은 “대학 사회에서 있어선 안 되는 일이 우리학교에서 자행되고 있고, 이는 사회적으로 봐도 용납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전했다.
끝으로 그는 “결국 이 사건에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은 학교에 등록금을 내는 우리학교 학생이다”라며 “학교가 누구를 위해 운영돼야 하는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학생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학교의 입장
박철 전 총장의 명예교수 임명은 학교 규정에 의해 학과 의견서, 학장 추천서, 공적조서를 통해 이뤄졌다. 인사는 교원인사위원회에서 담당하고 최종적으로 총장의 결재 단계를 거치면 승인이 된다.
지난 17일 글로벌캠퍼스 비대위장단은 총장과의면담에서 김인철 총장과 ‘박철 전 총장 명예교수 추대’에 대해 한차례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이날 김인철 총장은 “박철 전 총장이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학교일을 수행하면서 발생된 문제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것이기 때문에 당시의 정황을 생각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벌금형을 선고받은 박철 전 총장을 명예교수로 추대한 이유에 대해선 “전직 총장으로서 학교발전에 기여했고 문제가 된 금원이 전액 재단에서 학교로 보전해줬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명예롭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전했다.
“대법원 판결이 난 후 박철 전 총장을 명예교수로 임명하는 것이 적합하다”는 글로벌캠퍼스 비대위측의 주장에 김인철 총장은 “현재 항소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결과를 지켜봐야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김인철 총장은 “대화는 하되 일방적 점거 시위는 용인 못하며 지금 보이는 상황의 단면보다는 전체적인 상황을 고려할 것”을 요청했으며 “이번 건은 절차가 제대로 지켜졌으므로 명예교수 임용을 철회할 생각은 없다”고 못 박았다.
1기 처장단(2006년 노조 파업 당시 학교 집행부 일동)은 노조 탄압에 교비를 사용했다는 노조측의 주장에 대해 “당시 전국 200여 사립대학은 학교운영과정에서 발생되는 법률 비용을 통상적으로 교비에서 처리해 왔다”며 “당시 비용을 집행하기 전 재단과 교육당국의 승인을 받았다”고 답했다. 또한, 도덕적이지 않은 사람을 명예교수로 임명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의견에 대해 “학생 수업권 보고와 행정 정상화를 위해 지출한 교비다”라고 1기 처장단 일동은 전했다.

◆비대위의 계속되는 움직임
서울캠퍼스 비대위는 지난 1일 “불명예 교수인 박철 전 총장을 명예교수로 임용하는 모습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명예교수 임용을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막아낼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이후 학생대표자회의를 거쳐 총장실 진입을 결정한 비대위는 김인철 총장과 2시간여 동안 면담했다. 그들은 면담에서 의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지난 10일 총장실을 점거한 채 농성에 들어갔다. 학교와 2차례의 추가 면담에도 “학교와의 대화에서 더 이상 진전을 느끼지 못 했다”는 비대위는 농성을 접고 22일 세종시 교육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곳에서 ‘박철 전 총장의 명예교수 임명에 반대’하는 내용의 탄원서를 교육부에 제출했다.
이외에도 비대위는 명예교수 추대 철회 피케팅(picketing, 노동 쟁의 때 조합원들이 공장이나 사업장의 출입구에 늘어서거나 스크럼을 짜서 파업의 방해자를 막고 동료 가운데 변절자를 감시하는 일)을 위한 거점을 만들기 위해 8월 17일부터 18일까지 이동 학생회를 진행했다. 그리고 22일을 제외한 10일부터 지금까지 피케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지속적인 시위에도 불구하고 박철 전 총장을 명예교수로 임용한다는 학교의 완고한 입장은 달라지지 않아 비대위의 행보는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다.

◆우리학교 학생들은?
우리학교 학생들 역시 박철 전 총장의 명예교수 임명 건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서울캠퍼스는 비대위를 중심으로 △영어대 △사회대 △중국어대 △동아리연합회 △LD학부 △경영대 △동양어대가 글로벌캠퍼스는 △통번역대 △국제지역대 △인문대 △자연과학대 △공과대 △동유럽대 △경상대에서 박 총장 교수직 임명에 대해 반대하는 성명서를 냈다. 학생들의 연서명은 1000명을 돌파한 상태다. 이들의 이름은 서울캠퍼스 총장실 복도에 대자보로 붙어있다.
박슬아(동양어·베트남어 13)양은 “혐의뿐이라 하더라도 박철 전 총장이 명예교수가 되면 학교 이미지가 오히려 더 떨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슬(서양어·스칸어 13) 서울캠퍼스 비대위장은 “교수들이 학술적인 측면과 총장을 연임한 면을 보고 박철 전 총장이 명예교수로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하지만 도덕적이지 않은 사람을 명예교수로 추대한다는 것 자체가 학교의 명예를 떨어트리는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