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인혼센 역들에 깃들인 역사와 문화 2016-09-20
기자 | 이메일 조회수 1372  댓글 0
 
산인혼센(山陰本線). 교토시 교토역(京都駅)을 출발역으로 해 일본열도 혼슈의 서쪽으로 해안선을 따라 달리다가 시모노세키시 하타부역(幡生駅)을 종착역으로 하는 서일본여객철도(JR西日本)의 철도노선이다. 이 노선의 서쪽 부분을 지난 해 7월 말에, 동쪽 일부는 이번 해 2월 말에 다녀왔다. 교토 쪽에 가까운 노선을 제외하면 산인혼센 주변의 꽤 많은 부분의 풍경과 역사와 문화를 눈에 담은 셈이다.
첫 번째 여행의 출발역은 히가시하기역(東萩駅)이었다. 이 역이 소재하는 하기(萩)는 과거 쵸슈번(長州藩)의 수도에 해당하는 도시다. 히가시하기역을 등지고 왼쪽으로 20분쯤 걸어가면 막말·메이지시대의 일본의 역사가 있다. 먼저 쇼카손주쿠(松下村塾)는 쵸슈번의 무사·교육자·사상가였던 요시다 쇼인(吉田松蔭)이 막말·메이지의 주역들을 교육했던 곳이다. 쇼카손주쿠를 거쳐간 인물로는 한국인에게 친숙하지 않은 존황양이파의 중심인물 구사카 겐즈이(久坂玄瑞)·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 등이 있다. 메이지시대 일본 정치의 중심인물이며 한국의 뼈아픈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근대 일본의 육군과 관료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도 쇼카 손주쿠와 인연이 깊다. 쇼카손주쿠 근처엔 유심히 살펴야만 찾을 수 있는 이토 히로부미의 구 저택이 있다.
『일본을 멸망시킨 요시다 쇼인과 쵸슈 테러리스트』라고 번역될 수 있는 책이 최근 일본에서 출판됐다. 근대·현대의 일본, 동아시아, 세계를 요동치게 했던 인물들을 낳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역사가 하기 곳곳에 숨어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히가시하기역(東萩駅)에서 열차에 올라 나가토역(長門駅)을 지나 몇 역을 더 통과해 히토마루역(人丸駅)이라는 작은 역에 도착했다. 택시 운전수에게 ‘이소베노모리’에 가달라고 부탁하니 논길 사이사이로 몇 분간 달린 후 한적한 작은 공원에 내려준다. 이 공원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소베 아사이치(磯部浅一)다. 이소베는 1936년 2월 26일 일단의 육군청년장교 및 하사관들과 함께 1,500여명의 병사를 이끌고 이른바 2·26사건을 일으켰다. 이소베를 포함하여 이 사건에 가담한 다수의 장교들이 체포됐고, 그 중 17명의 장교들과 2명의 민간인이 사형당했다. 이소베는 사형에 처해지기 전 감옥에서 자신들의 요청을 거절한 쇼와천황을 저주했다. 그의 외침은 이러했다. “천황폐하 왜 이런 실정을 하시는 겁니까. 왜 간신을 가까이하고 가장 충성스러운 저희들을 멀리하는 겁니까” 이소베를 추념하기 위해 이소베노모리에 세워진 석비에는 ‘쇼와유신열사(昭和維新烈士)’라는 문자가 새겨져 있다. 이 문자가 암시하는 것처럼 그리고 이소베의 성격이 그러한 것처럼 이소베노모리는 ‘반역적’기운으로 충만했지만 도도한 모습을 결코 잃지 않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소베노모리 부근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현 일본 총리의 부친인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郎) 등 아베계의 묘소가 있다고 한다. 이소베와 아베가 시간을 초월해 만날 수 있다면 어떤 말들을 주고받을까?
이소베노모리를 뒤로하고 다시 열차를 타기 위해 히토마루역에 돌아왔다.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발견한 포스터의 내용이 흥미롭다. ‘폭력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폭력단을 이용하지 않는다. 폭력단에게 돈을 주지 않는다. 목격했는데도 보지 않은 체 하지 않는다’ 이 지역은 폭력단 문제가 심각한 모양이다.
산인혼센의 종착역인 하타부역이 소재하는 시모노세키(下関)는 일본제국주의 시기부터 현재까지 한국 부산을 왕복하는 선박의 출입항으로 유명하다. 한편 이곳은 청일전쟁을 종결하기 위해 청·일간에 체결된 시모노세키조약의 현장이기도 하다. 시모노세키조약을 체결하기 위한 협상은 1895년 4월 17일 시모노세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