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 2016-06-02
기자 | 이메일 조회수 538  댓글 0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문학상은 ‘채식주의자’를 쓴 한강 작가에게 돌아갔다. 해당 작품의 번역가인 영국인 데버라 스미스(Deborah Smith)도 공동수상자로 선정됐다. 흥미로운 것은 28살인 스미스가 21살까지 한국문화에 문외한이었음은 물론 한국인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인터뷰한 내용이다. ‘채식주의자’가 ‘The Vegetarian’이란 영문명으로 지난해에 출판된 점을 감안하면 불과 6년도 안 되는 시간에 한국어를 영어로 온전히 번역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20대에 들어 외국어 회화를 배우기 시작해 원어민 수준에 이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고려할 때 글을 쓴다는 것의 특별함에 더욱 주목하게 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기자들은 사회와 조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글을 쓴다. 학자들은 자신의 학문분야를 설명하는 이론과 실제를 규명하기 위해 글을 쓴다. 작가는 다양한 장르에 걸쳐 자연, 인간, 사회의 본질을 자신만의 프리즘에 통과시켜 예술의 영역에 자취를 남긴다. 이 모든 작업은 글을 쓴다는 것이 동기는 다르지만 한 점을 지향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바로, 개인적 차원의 소아적 사고를 넘어 집단적 영혼의 공유된 특징을 밝혀냄으로써 인간을 성숙한 존재로 이끈다는 점이다. 현 인류가 태곳적 동굴에 새겨진 벽화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해석하듯, 글을 쓴다는 것은 이생에 갇힌 영혼들이 시공을 초월해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것이다.
이 같은 글쓰기의 가치를 먼저 깨닫고 소중히 여겨온 민족이 바로 한민족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목판활자본과 금속활자본이 나온 곳일 뿐 아니라 언어학계에서 과학적 문자체계의 정수로 받아들여지는 한글을 사용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한강이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을 수상한 것이 때늦은 감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약 정치·경제·군사적 헤게모니가 한국에 있었다면 이미 다수의 한국인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리란 유추도 가능하다. 언젠가 통일한국이 실현되고 한민족의 전성기가 도래해 한글을 사용하는 다국적 작가들이 쓴 시, 소설, 수필을 평가해 ‘한글 문학상’을 선정하는 날이 도래하길 고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