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대마불사 (大馬不死)다”

2016-06-02

추진희 기자 | 92clelia@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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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12년 3월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2000년, 2004년에 이어 3선에 성공했다(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실세 총리’로 재임). 제성훈 교수는 러시아에서 당분간 푸틴 대통령을 대체할만한 지도자가 등장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더불어 푸틴 대통령이 이끌고 있는 러시아의 주요 경제정책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푸틴 대통령의 장기집권이
러시아에 미친 영향은?

푸틴 대통령의 장기 집권화에 대해 러시아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러시아에선 2000년대 고도성장으로 중산층의 비중이 증가했고, 이들은 점차 푸틴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권위주의적 통치방식에 불만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기존 체제가 바로 ‘성공으로부터의 고통(suffering from success)’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2013년 말 우크라이나 사태의 발발로 서방과 러시아 간 긴장관계가 형성되자, 갑자기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의 급상승했다. 국가적 위기에 처했을 때 최고 지도자를 중심으로 단합하는 러시아 국민들의 정치문화가 이런 현상을 가능케 했다. 또, 2014년 3월 크림 반도 합병으로 소련 해체 이후 최초로 러시아 영토가 확장되면서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은 85%를 넘어서게 됐다.
러시아 국민들은 초강대국이었던 소련 시절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경제 이슈뿐 아니라 국가적 자존심이 걸린 대외적 이슈에도 관심이 많다. 이 때문에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은 장기집권이 아니라 크림 반도 합병과 같은 단호한 대외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경제상황이나 대외관계의 변화라는 변수가 있긴 하지만 2018년에 있을 다음 러시아 대선에서 푸틴 대통령이 연임(총 네 차례 중임)할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다음 대선에서도 정권교체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국민 중엔 권력의 정점에서 엘리트들을 통제하고 있는 푸틴 대통령이 갑자기 물러날 경우, 러시아가 국가적 위기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당분간 푸틴 대통령의 장기집권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장기집권은 민주국가라면 응당 가져야 할 ‘정권교체의 경험’과 그를 통한 민주주의 공고화를 방해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보는 시각도 많다.

푸틴 대통령이 집권에 계속 성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러시아 정치의 가장 큰 딜레마는 푸틴 대통령을 대신할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러시아의 정당 구도와 집권세력의 책략 때문이다. 2000년대부터 러시아의 집권여당인 ‘통합러시아당’은 언제나 적어도 50% 이상의 지지를 얻는다. 반면, 제2당인 공산당은 지지층이 20% 정도에 불과하고, 다른 정당들도 각각 10~15% 이상의 지지를 얻기 힘들다. 또한, 유력 야당인 민족주의, 자유주의 정당도 이른바 ‘친여 정당’으로서 푸틴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공공연히 표방한다. 즉, ‘일여다야’ 구도에서 야권 통합의 가능성마저 희박하기 때문에 푸틴 대통령의 장기집권이 가능한 것이다.
정치적 선전, 선동도 역시 푸틴 대통령의 재집권에 기여해왔다.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이 매우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서방 정치인과 언론의 잦은 비판과는 달리 러시아 대선에서 물리적 부정선거가 당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매스미디어를 이용한 정치적 선전, 선동은 만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정부의 직·간접적 통제 하에 언론은 푸틴 대통령의 리더십과 그의 정책에 대한 긍정적 측면만을 강조하고, 부정적 측면에 대한 언급은 거의 하지 않는다.
한편, 푸틴 대통령의 ‘리더십’도 재집권의 성공요인이다. 그는 1990년대 국가를 사유화했던 ‘올리가르히’(Oligarch, 러시아 신흥재벌, 과두지배세력)가 정치권력을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과거 올리가르히와 외국 기업들에 헐값으로 팔아넘겼던 알짜배기 국유기업을 재국유화하기도 했으며, 국제무대에서 러시아가 자존심을 되찾고 강대국의 지위를 회복하는데 기여했다. 1990년대엔 지방의 엘리트들이 ‘영주’처럼 행동해 혼란스러운 분권체제가 계속되고 있었는데, 2000년대 중앙집권화를 통해 이를 해소한 사람도 바로 푸틴 대통령이다. 모든 정책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있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정책들도 모두 부정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소련 해체 후 정치, 경제, 대외관계 등에서 총체적 위기를 겪었던 러시아가 2000년 푸틴 대통령의 집권을 계기로 이러한 혼란에서 벗어나 ‘질서’를 회복하게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다수의 러시아 국민들은 푸틴 대통령이 그동안 구축한 ‘질서’를 당분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각 나라마다 발전의 모델과
경로는 다를 수 있다”

“러시아가 망하면 세계경제가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
정도로 러시아는 *대마(大馬)다”

푸틴 대통령의 이념을 일컬어 ‘푸티니즘’이라는 말이 생겼다. ‘푸티니즘’은 무엇인가?
푸티니즘은 정치적으론 ‘질서 있는 국가’를 지향한다. 질서 있는 국가는 ‘법의 독재’가 실현되는 국가이다. 쉽게 말하자면, 권력기관들이 임의가 아니라 법과 규칙에 따라 움직이고, ‘권력수직화’를 통해 정연한 체계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는 권력기관의 부정부패를 방지하고, 국가정책의 효율적인 수행을 가능하게 한다.
경제적으론 ‘국가 주도 경제발전’을 지향한다. 이는 국가가 경제발전의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자원을 가용하고 경제 각 부문을 조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러시아의 풍부한 에너지 자원(석유, 천연가스 등) 부문을 비롯한 전략 부문을 국가의 통제 하에 둬야 하며, 이를 통해 러시아는 독자적인 발전 모델과 경로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된다. 푸티니즘은 대외적으론 ‘강력한 국가’, 즉 강대국을 지향한다. 이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세계질서에 순응하지 않으며, 러시아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러시아는 진퇴양난(進退兩難)?

현재 러시아의 국내 경제정책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2000년대 초, 중반 고유가를 기반으로 고도성장을 거듭했던 러시아는 2010년 이후 6년 연속 경제성장률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 2014년에는 0.6%, 2015년에는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현재 세계 경제가 전반적으로 침체된 가운데, 저유가와 서방의 경제제재라는 악재까지 겹쳐 경제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러시아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비즈니스 활동 자유 확대 및 투자환경 개선, 크림 반도와 극동(러시아 영토 중 가장 동쪽에 위치하고 동북아와 인접한 지역) 등 중점 지역 개발, 합리적 수입대체 정책을 통한 비원료 부문 발전, 경제 발전에 필요한 재원의 국내 조달, 예산지출의 합리화 등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혁신 부문(IT, 통신 및 우주 기술, 원자력 기술 등)의 발전을 위한 ‘경제현대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유라시아 경제연합’은 러시아에게 왜 중요한가?
유라시아 경제연합(EAEU, Eurasian Economic Union)이란 2015년 1월 러시아가 같은 구소련 국가인 벨라루스, 카자흐스탄과 함께 출범시킨 경제통합체이며, 아르메니아, 키르기스도 여기에 가입했다. 유라시아 경제연합은 2014년 기준 인구 1억 8천만 명, GDP 2조 2,000억 달러 규모의 단일시장이다. 이미 러시아의 서쪽에는 유럽연합(EU)이 있고, 동쪽인 아태지역에서도 중국의 경제적 부상과 미국의 역내 경제 질서 재편 시도를 배경으로RCEP(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TTP(Trans-Pacific Partnership,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등 경제통합에 대한 논의가 가속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러시아는 어디로 가야 할까? 러시아는 세계적인 경제통합의 흐름에 맞서는 동시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결국 ‘구소련 국가들과의 경제통합’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판단했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경제관계도 밀접한 이들 국가와의 경제통합을 통해 유라시아의 중심에 거대한 단일시장을 건설해 ‘통합된 유럽’과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아태지역을 연결하는 끈이 되는 것이 대안이라고 본 것이다.

‘유라시아 경제연합’은 어디까지 왔나?
지난해 1월에 출범했기 때문에 아직까지 성과를 논하기는 이르다. 유라시아 경제연합의 가장 큰 문제는 러시아의 경제규모가 차지하는 비중(회원국 GDP 총합의 약 87%)이 압도적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러시아의 경제상황이 유라시아 경제연합의 성공 여부를 좌우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재는 러시아의 경제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다른 회원국들을 지원하는 것이 버거운 상황이다. 하지만 유라시아 경제연합이 아직 발전의 초기단계에 있기 때문에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