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이라서

2016-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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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어느 날 방청소를 하다가 우연히 처음 보는 책을 발견했다. 그 책은 첫눈에 봐도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다. 바로 윤동주 시인의 <별을 노래하는 마음>이었다. 정리하기 전에 한번 들춰나 보자 하는 마음에 첫 장을 넘겼고, 그 속엔 왠지 모르게 세상에서 가장 짠한 한 구절이 적혀 있었다.
‘이 아름다운 시집을 이병택 군에게 드립니다. 1986년 11월 2일 누나가’ 이 한 문장이 왜 이렇게 짠했을까? ‘이병택 군’은 나의 외삼촌이고 ‘누나’는 나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문장에서 아주 당연하지만 미처 몰랐던 것을 깨달았다. 엄마도 나의 엄마가 아닌 한 남동생의 누나였고, 그전에 한 소녀였다는 사실이다.
1986년이면 엄마가 1970년생이니까, 내가 태어나기 전임은 물론이고 엄마가 고등학교 1학년일 때다. 외삼촌은 중학교 2학년이었다. 엄마는 어린 시절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수곡2동이라는 아주 시골에서 자랐다.
이곳은 그때도 지금도 학교를 가려면 2~3km를 걸어야 한다. 엄마는 3남 2녀 중 첫째이고 외삼촌은 둘째다. 외삼촌은 어려서 공부를 잘했고 백일장에서 상을 받아올 정도로 문학에도 관심이 있었다. 그런 동생에게 시집을 선물하는 누나의 마음이, 나의 엄마이기 이전에 그 소녀의 모습이었다.
외삼촌은 변변치 못했던 집안 사정에 많은 식구들, 또 다른 여러 가지 이유들 때문에 좋은 교육을 받지 못했고, 아쉽게도 어렸을 적 품은 꿈을 이루진 못했다. 하지만 이 시집의 첫 문장은 외삼촌을 시인으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지금 내겐 이 시집 안의 모든 시보다도 더 내 마음을 울리는 시가 됐다.
가끔 엄마와 외삼촌의 통화를 듣는다. 좋은 말만 오가지는 않는다. 돈 이야기로 목소리가 커질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에게 미안하다. 엄마는 나의 엄마이기 이전에 동생을 사랑하는 누나였고, 그전에 꿈을 가진 한 소녀였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엄마로서, 그때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처럼 지금은 나 때문에 그렇게 얼굴 붉히며 통화하게 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엄마, 보고 싶은 영화나 공연 있으면 돈 아끼지 말고 보고, 가고 싶은 곳 있으면 여행도 다녀와. 그리고 영수증 나한테 줘. 내가 나중에 커서 돌려줄게” 라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웃으며 “웃기고 있네” 한다. 그러고는 나와 내 동생이 필요하다는 물건엔 아낌없이 돈을 쓴다. 아마 엄마는 지금도 당신보다 나와 내 동생을 더 많이 생각하는 것 같다.
요즘 엄마는 항상 여행프로그램이 나오는 채널에 TV를 맞춰놓는다. 그곳에서는 자유로워 보이는 출연자가 오늘은 아시아, 다음번엔 유럽을 마음대로 돌아다닌다. 엄마는 TV를 보다 잠이 든다. 아침부터 출근해서 저녁이 돼야 퇴근하고 피곤한 몸을 누이면 꿈속에서 자유롭게 유럽을 누비나 보다.
엄마가 나의 엄마이기 전에, 외삼촌의 누나이기 전에, 한 소녀였을 때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혹시 세계를 자유롭게 누비는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