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로 사는 것이 아름답다”

2016-04-19

기자 |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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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미국에서는 연방 대법원이 동성 결혼을 합헌으로 판결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성소수자 관련 웹툰, 연예인의 커밍아웃 등으로 점점 동성애는 음지에서 양지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 학교에는 성소수자 모임인 ‘Q사디아’가 있다.
Q사디아는 ‘퀴어(Queer)로 사는게 디*게 아름답다’의 줄임말로 현재 50명 정도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친목 위주의 모임으로 비정기적으로 세미나를 열기도 한다. 지난해는 회지(모임에서 펴내는 기관 잡지)를 발행했고 이번해 말에도 발간할 예정이다. 성소수자의 범위를 LGBTAIQ로 보고 회원을 넓게 받고 있다.
외대학보는 Q사디아 회원 중 3명에게 이야기를 들어봤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 그들을 레즈비언(Lesbian, 이하 L), 게이(Gay, 이하 G), 바이섹슈얼(Bisexual, 이하 B)로 표기했다. 그들에게 성소수자들에 대해 궁금했던 이야기들을 들어본다.

*LGBTAIQ : 성소수자 중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를 합쳐서 부르는 단어인 LGBT에서 스스로의 성 지향성이나 정체성에 대해 확정하지 않은 사람(Questionary), 양쪽 성의 성기를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Intersexual), 무성애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는 사람(Asexual)을 더한 것이다

우리는 퀴어다!

Q. LGBT, LGBTAIQ와 같이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여러 용어들이 있는데 어떻게 부르는 것이 모두를 포괄할 수 있을까?
G : 퀴어(Queer, 성소수자(레즈비언 · 게이 ·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를 포괄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가 가장 괜찮다고 생각한다. 퀴어를 많이 쓴다.
L : 정체성은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로 선 긋듯 정해진 것이 아니라 스펙트럼이라고 생각한다. LGBTAIQ로 성소수자를 나누는 것도 하나의 범주일 뿐이다. 어떤 사람의 경우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데 5줄이나 걸리는 사람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퀴어라고 지칭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Q. 정식으로 인준된 타 대학 성소수자 동아리들이 많은데, Q사디아도 정식 동아리로 인준받을 의사가 있는지?
L : 모임 내에서 이야기가 계속 거론되고 있지만, 동아리 특성 상 정식동아리로 인준되는 것을 꺼려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아직은 조심스럽다.
B : 하지만 정식으로 동아리가 된다면 얻을 수 있는 이점도 많은 만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최근에 대학 내에 성소수자 동아리에 대한 현수막 훼손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15일 서울대 성소수자 동아리 큐이즈(QIS·Queer In SNU)가 걸어놓은 신입생 환영 현수막이 22일 훼손된 채로 발견됐다. 앞서 지난 3월 1일 서강대학교에서도 한 교수가 학내 성소수자 모임 현수막을 폐기한 것이 적발됐다.

Q. 최근 타대학 성소수자 동아리들에서 내건 현수막들이 훼손된 사건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G : 이번 서울대 훼손 건은 훼손의 흔적이 너무나 명백하고, 학생회장이 성소수자라는 점에서 더욱 더 크게 이슈가 되는 것 같다. 이에 Q사디아는 대학 성소수자 모임 연대체인 QUV(Queer University)와 함께 성명서를 냈다.

QUV는 성명서를 통해 누구에게나 안전한 공간이어야 할 캠퍼스가 이런 증오범죄의 현장이 된 점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QUV는 성소수자 단체를 공격하는 손괴범들에 대해 형법 제336조 “타인의 재물 또는 문서를 손괴 또는 은닉 기타의 방법으로 그 효용을 해하는 죄”라며 범죄임을 지적했다.

자신을 알아갔던 시간

Q. 자신의 성 정체성이나 성 지향성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정체화라고 말하는데, 정체화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나?
L : 사람마다 겪는 방식이 다른 것 같다. 내 경우에는 정체화를 하는 과정이 오래 걸렸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레즈비언이라고 정체화한 것은 고등학교 2~3학년 때였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무서웠고, 사회가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도 어린 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웠다. 하지만 받아들이고 나서는 오히려 더 편해졌다. 진정한 나를 찾은 느낌이다.
B : 어머니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에 집에서 동성을 좋아하는 것을 용인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중학교 3학년 때 너무 좋아했던 친구가 있어 정체화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낄 것은 없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지나갔다. 하지만 아직도 집에 말할 생각은 없다.
G :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집안 사정도 어려울 때라 정신적으로 상당히 힘들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내 자신을 정체화하긴 했는데 세상에 알리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23살까지 숨어 살았다. 평생 한번 사는 삶인데 한 번도 행복한 적 없이 불행하다고 느꼈다. 군대에 갔다 와서는 도저히 숨기고 못 살겠더라. 24살 때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고 지금은 행복하게 살고 있다. 커밍아웃을 하더라도 비성소수자와 성소수자가 느끼는 세계가 다르기 때문에 말이 잘 통하지는 않지만 자유롭게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행복하다.
성소수자를 둘러싼 편견들

Q. 우리 학교 안에서 성소수자로서 부당한 대우나 차별을 당한 경험이 있나?
G : 직접적인 사례는 아니지만 남자인 동기가 호모포빅(homophobic,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개인 및 집단)한 글을 SNS에 올렸다.
L : 커밍아웃을 해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이 내 정체성을 알 수 없다. 그래서 직접적인 차별을 느끼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내가 성소수자라는 걸 모르고 호모포빅한 발언을 하는 등의 차별은 받는다.
B : ‘쟤 게이같다’는 말이 그 예다.
G : 여성스러운 남자를 보고 게이같다는 말을 비하의 표현으로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또, 학교 안에 게이샷, 레즈샷 같은 문화가 있다. 다른 학교들은 총학생회에서 아예 성소수자 동아리에 문의해 이 부분에 대한 메뉴얼을 만든다.
L : 아예 게이샷, 레즈샷 이런 것들이 금지된 학과들도 있다고 들었다. 또, 어떤 교양 수업을 Q사디아 회원 4~5명이 같이 들었던 적이 있다. 교수님이 트랜스젠더를 비하하고 동성연애자라고 이야기하는 등의 발언을 했다. 학기 말에 교수님께 호모포빅한 발언이 불편했다고 수업 평가지에 써서 냈다.

Q. 동성애자들은 에이즈(HIV/AIDS)에 걸릴 수 있다는 편견이 있는데?
G : 성소수자, 특히 남성 동성애자를 공격할 때 흔한 레파토리가 바로 HIV 이야기다. 하지만 에이즈는 남성 동성애자들의 전유물이 아닐 뿐더러 항문성교를 한다고 해서 무조건 걸리는 병도 아니다. 보균자와 콘돔을 착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관계를 맺은 경우 5% 내외의 확률로 걸린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게이들은 에이즈 예방과 관리에 큰 관심을 쏟는다. 콘돔 착용은 기본이고 6개월에 한번씩 혈액 검사도 받는다. 혹시 병에 걸렸다고 해도 HIV는 더 이상 죽음의 바이러스가 아니다. 하루에 약 1알이면 혈액 검사할 때 검출되지도 않는다.
L : 레즈비언은 그러한 논란에서 언급되지도 않는다. 에이즈에 대한 공격을 받을 때마다 레즈비언들은 존재 자체도 인정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퀴어문화축제(Korea Queer Culture Festival , KQCF)는 2000년 이래로 서울에서 매년 6월에서 9월 사이에 열리는 성소수자 축제다. 이번해 6월로 예정된 ‘2016 제 17회 퀴어문화축제’가 서울광장에서 열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시민단체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달 24일 바른성문화를위한국민연합 외 68개 시민단체는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광장 사용을 반대했다. 그들은 성명서를 통해 퀴어문화축제에서 ‘알몸 과다 노출’과 ‘알몸 퍼레이드’가 있었으며 국민 정서와 양식에 반하는 행위라는 의견을 냈다.

Q. 어떤 사람들은 퀴어문화축제와 같은 것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정체성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나? 또한 퀴어문화축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G : 미디어에서도 다 이성애만 보여주는데 왜 동성애자가 있는가? 개인적으로는 후천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다. 지난해에 퀴어문화축제에 처음 갔다. 전날에 너무 행복해 떨려서 잠도 못 잤다. 가보기 전에는 대중매체에서 너무 자극적으로 보도해서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 중에서 노출있는 복장을 입은 사람들은 정말 몇 명 안된다. 물론 그들이 노출 있는 복장을 입는다고 해서 안 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L : 정체성이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는 아직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문제이다. 그리고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를 따지는 것 자체가 이미 차별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Q. 성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고 있거나 주변의 시선이 무서워 벽장에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조언한다면?
B : 정체성은 우리가 조언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에서 받아들여야 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G : 자기 혼자 숨어 계신 퀴어 분들을 흔히 ‘벽장’이라고 칭한다. 벽장 분들이 활짝 문을 열어젖히고 ‘행복’을 맞이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