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계급사회? 응답하라 한국사회! 2015-12-08
경지영 기자 | 91abraxas@hufs.ac.kr 조회수 632  댓글 0
 
사회 계층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가지 개념이 있다. 경제적 생산 수단의 소유 여부에 따라 나누어진 집단을 가리켜 계급이라고 한다. 반면 다양한 사회적 희소가치에 의해 서열화돼 있는 개인과 집단의 복합적인 위치를 가리켜 계층이라고 한다. 마르크스는 생산 수단의 소유 여부에 따라 유산 계급(자본가)과 무산 계급(노동자)으로 구분했다. 계급사회에서는 동일 계급 내 소속의식이 강하고 다른 계급에 대한 적대감을 강하게 표출한다. 이러한 계급사회에서는 계급간의 경제적 차이가 정치적·사회문화적 차이를 낳는다.
지금 우리사회는 계급사회인가 혹은 계층사회인가? 사람들은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은 지났다고 말한다. 이제 금수저가 아니면 아무리 노오력해도 헬조선에서 살아남기 힘들어 보인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이 고착화돼가는 한국사회에서 자조와 관조만 하기에는 우리의 젊은 날이 너무나도 푸르다.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는 빨간 약을 선택하고 안락한 가상현실(매트릭스)대신 암울한 현실을 마주한다. 그는 진실을 선택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며 삶을 이어나간다. 계급사회의 수혜자이든 피해자이든 빨간 약을 선택한 네오처럼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민낯을 직시해 보자.

◆키워드로 보는 한국사회
#헬조선
헬조선은 지옥을 뜻하는 헬(hell)과 대한민국을 의미하는 조선의 합성어로 ‘한국이 지옥에 가깝고 전혀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기존의 ‘N포세대’에서 나아가 지옥같은 현실로 더 과격하게 표현된다.

#수저계급론
수저계급론이란 부모의 자산이나 소득수준 등에 따라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순으로 계급을 매긴다는 신조어다. 이에 대한 반격으로 자식의 성공여부에 따라 부모의 계급이 결정되는 자식계급론까지 등장했다. 자식계급론은 자식에 의해 부모가 얻는 경제적 이익이나 심리적 자부심에 따라 금자식, 은자식, 흙자식으로 나눈다.

#노오력
‘노력’을 길게 발음한 노오력은 노력만 강조하는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과 함께 아무리 노력해도 변화가 없는 사회를 풍자하는 단어이다.

◆통계로 말하는 한국사회
△계층 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난 11월 26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5 사회조사’에 따르면 평생 노력해서 사회경제적 지위를 상승시킬 가능성이 ‘낮다’고 답한 사람은 62.2%로 10명 중 6명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3년 조사결과인 57.9%에 비해 무려 4.3% 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반면 ‘높다’는 응답은 21.8%로 압도적으로 적었다.
자식세대에서의 계층이동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낮다’고 답한 비율은 2013년에 비해 6.8% 포인트 높아진 50.5%였다. 2명 중 한 명은 자식의 계층이동 가능성이 낮다고 본 것이다. 반면 ‘가능성이 높다’고 답한 사람은 31%에 불과했다.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 응답자 53.0%가 중간층이라고 답했다. 이들 중에서도 중상(17.9%)보다는 중하(35.1%)의 비율이 높았다.

△수저계급론, 현실인가요?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지난 11월 16일 ‘한국에서의 부와 상속, 1970∼2013’ 논문을 공개했다. 김교수는 피케티 교수가 제시한 연간 상속액과 저축액을 이용해 전체 부의 축적에서 이전된 자산이 기여한 비중을 구한 방법에 따라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상속·증여가 전체 자산 형성에 기여한 비중은 1980년대 연평균 27.0%에 불과했지만 1990년대 29.0%가 됐고 2000년대에는 42.0%까지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국민의 총자산이 100만원이라고 치면 1980년대에는 27만원이 부모에게 상속받은 것이고 나머지 73만원은 저축 등으로 모은 것이었지만 상속으로 쌓인 자산이 20년 만에 42만원으로 불어난 것이다. 이는 한국에서 상속·증여가 개인의 부에 기여하는 영향력이 증가했음을 보여준다. 이로써 한국사회에서 수저계급론이 점점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셈이다.

△이에 두 분의 교수님께서 ‘생(生)을 앞서 산 사람’을 의미하는 선생(先生)의 마음으로 제자들에게 각각 한 권의 책을 권했다. 카프카는 “머리를 망치로 내려치듯 깨우고 흔드는 책이 아니라면 왜 읽는 수고를 해야 하나. 책은 우리 내면의 얼음바다를 깨는 도끼라야 한다”고 말했다. 선생님들께서 추천해 주신 책이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가 삼킨 빨간약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현실을 직시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자조와 관조의 시대 속 청년세대에게 사유의 망치가 돼 줄 빨간 책을 만나보자.

◆청년들에게 권하는 빨간 책
△이주열 미네르바교양학부 교수
행복하고 보람찬 삶을 위해서는 자신을 둘러싼 사회의 상황에 대한 관심이 필수적이다. 결코 홀로된 공간에서의 고민과 학문적 행위만으로는 이상이 실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2030세대들에게 정치권 혹은 정부를 향해 문제의 해결 촉구를 어떻게 얼마만큼 제기했는지 따져 묻고 싶다. 2030청년세대들은 ‘내가 아니더라도 누가 해결해 주겠지’하는 안일함을 버리고 지속적인 국가의 정책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비판적인 시각을 갖추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광장에 나가 일사불란한 액션을 취하지 않더라도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각자가 생각하는 바를 당당하게 투표로써 의견을 타진하는 것이야말로 2030세대의 개인문화에 걸맞은 것 아닐까. 비판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내는 정당한 목소리는 지도자들로 하여금 정책적 오류를 최소화하고 그릇된 판단을 방지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나는 2030세대에게 <뉴욕타임즈>로부터 오늘날 살아 있는 가장 중요한 지식인이라고 상찬을 받은 바 있는 노암 촘스키(Noam Chomsky)의 &#985172;촘스키, 희망을 묻다. 전망에 답하다.&#985173;를 추천한다. 언어학자이며 철학자인 촘스키는 대중과 단절된 연구실에서 추상적인 문장만을 만들어내지 않고 직접 사회현실에 참여해 국가를 운영하는 지도자들에게 과감한 비판적 목소리를 내면서 불의에 맞서 늘 항거했다. 이 책은 다소 거칠고 일반적인 사회현상을 늘여놓은 듯한 표면적인 문장들 이면에 일반인들이 쉽게 인지할 수 없는 사회구조와 사회의 본질에 대해 날카롭게 다루고 있다. 국제문제를 바라보는 다양한 논리로서의 희망을 제시하고 있어 정치적인 이념을 떠나 이 책을 통해 개인적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나가는 데 밑거름이 됐으면 한다.

△이정현 미네르바교양학부 교수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나를 보내지 마』에는 복제인간들이 거주하는 ‘헤일섬’이라는 구역이 등장한다. ‘헤일섬’은 ‘정상 인간’들의 거주지와 다를 바 없이 모든 것이 갖춰져 있다. 딱 한 가지만 제외하고는. ‘헤일섬’에서 양육되는 복제인간들은 17~20세가 되면 정상인간들의 장기 이식을 위해서 하나씩 ‘차출’된다. 뇌사자나 사고자의 기증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장기이식 수요를 메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섬뜩한 설정이지만, 소설 속의 ‘헤일섬’은 고요하기만 하다. 이와 비슷한 영화 《아일랜드》에서는 복제인간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거부하고 탈출을 시도한다. 그들은 정부가 파견한 특수부대와 처절한 전투를 벌인다. 하지만 이 소설에는 그런 액션이 존재하지 않는다. ‘헤일섬’의 복제인간들은 “조금 더 살고 싶다”는 희망을 말하지 못하고 기껏해야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보내 달라’는 요구를 할 뿐이다.
가상의 미래를 다뤘지만 이 소설은 현실에 대한 소름끼치는 알레고리를 담고 있다. 복제인간들은 다른 삶을 상상하는 능력이 미미하다. 그들은 자신들을 억압하고 일방적으로 운명을 설계하는 체제에 질문을 던지지도 않는다. 인간세계의 ‘건강한 삶’에 기여하는 것이 그들의 생, 그 자체다. 한국 사회가 청춘들에게 강조하는 ‘바람직한 청년상’과 아주 흡사하지 않은가. ‘순종’과 ‘적응’만을 강요하고 ‘규칙’과 ‘질서’를 위반하면 ‘부적응자’나 ‘패배자’로 낙인찍히기 십상인 지금-여기의 현실은 독자로 하여금 이러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곳은 과연 ‘헤일섬’과 얼마나 다른가. 복제인간들이 순종할수록 장기이식을 주도하는 대기업과 의료기관이 더욱 부유해진다는 사실은 소설 속의 ‘헤일섬’을 바라보는 독자에게 높은 기시감을 선사한다. 다른 삶은 가능하다. 그 가능성은 상상력으로부터 움튼다. 우리가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지금-여기가 바로 ‘헤일섬’이다.

경지영 기자 91abraxas@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