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대인이 만난 세계] 오래된 유토피아, 쿠바

2015-12-07

나참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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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발 날리는 북유럽에서 오들오들 떨다가 무더운 열대로 날아오니, 옷을 벗어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아메리카 대륙 중에서도 라틴아메리카의 관문, 정중앙 멕시코다. 하지만 식욕을 자극하는 타코 냄새에 채 익숙해지기도 전에 며칠간의 칸쿤(Cancun)을 뒤로 하고 다시 비행기를 탔다. 그렇게 무엇에 홀린 듯 다급히 온 곳은 시가와 체게바라의 나라 쿠바다.
아바나(Havana) 공항에 내리자마자 겨우 두 시간 거리인 멕시코와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게다가 통용되는 화폐도 두 가지. 쿠바는 두 개의 화폐를 쓴다. 쿡(CUC)과 모네다(CUP)는 각각 외국인과 내국인이 쓰도록 한 화폐인데 사실상 내외국인 모두, 둘 다 섞어 쓰고 있다. 하지만 어떤 화폐를 쓰느냐에 따라 체감물가가 24배까지 차이나기 때문에 배낭여행자들도 주로 모네다를 쓰며 여행한다.
셔틀버스도 지하철도 없는 공항에서 긴 실랑이를 거쳐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면, 70년대 영화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오래된 스페인풍의 건물들과 낡은 기침을 토하며 돌아다니는 형형색색의 올드카들. 초콜릿향 시가 연기 보다는 매연이 가득하지만, 아미고(Amigo)라며 바삐 지나가는 여행자들을 불러 세우는 쿠바노들이 벌써부터 친근하게 느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험하지 않냐고 묻는 쿠바. 그러나 이곳에서만큼은 치안에 대해 자신있게 ‘노프라블럼’을 외칠 수 있다. 공산주의 국가라는 특성이 아이러니하게도 굉장히 안전한 치안을 보장하고 있다. 새벽 두 시에 거나하게 취해 택시를 잡느라 비틀거리는 이방인들이 도처에 널려 있어도 누구하나 해코지 하는 사람이 없다.
현재 미국과 쿠바는 수교를 재개했지만, 체류당시에는 수교 전이라 폐쇄적인 느낌이 더욱 강했다. 세상과 담을 쌓은,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세운 쿠바인들의 유토피아. 비록 숫자로 월급은 적어도, 이곳에서는 그닥 상관하지 않는 듯하다. 광장에서는 저녁마다 사람들이 흥겨운 음악에 살사 스텝을 나누고, 카리브해의 파도가 몰아치는 방파제 ‘말레꼰’에서는 시가를 뻐끔뻐끔 피우는 한량들이 늘어앉아 있다. 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쿠바의 시간은 느리게 느껴진다.
조금 더 활기찬 쿠바의 아바나를 보고 싶다면, 오비스포(Obispo) 거리로 가보는 것도 좋다. 쿠바를 사랑한 문학가 헤밍웨이가 머무르며 원고를 쓰던 호텔방도 있고, 고급호텔에서 열리는 살사쇼도 볼 수 있다. 게다가 모든 직원이 공무원인 국영레스토랑에서 값싼 랍스터를 먹을 수도 있다. 값비싼 서양식 호텔부터, 저렴한 쇼까지 여행의 스펙트럼 또한 굉장히 다양하다.
살사클럽과 럼이 넘쳐나는 수도 아바나 말고도 쿠바는 들러볼 곳이 많다. 드넓은 지중해를 배경으로 관영 리조트들이 있는 바라데로(Varadero).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의 혁명을 주도한 중남미의 로맨티스트, 체 게바라 동상이 있는 산타클라라(Santa Clara). 백인과 혼혈인 물라또가 주를 이루는 서부와 달리 흑인들의 고유한 문화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산티아고 데 꾸바(Santiago de Cuba).
덜덜 거리고 오래되었어도 여전히 새빨간 광택으로 시선을 유혹하는 구식 세단을 타고 쿠바를 가로지르는 것은 아직도 거의 모든 여행자에게 충분히 판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