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P와 한국경제 2015-12-07
오동휘 교수 | 조회수 559  댓글 0
 
오동휘 교수
(국제지역대학원 겸임교수)

중국은 70년대 말경, 유럽사회주의 국가들은 90년대 초부터 시장경제체제를 채택하며 국가 간 무역규모가 빠르게 확대됐다. 이에 보다 효율적인 무역확대를 위해 무역 자유화 조치가 폭넓게 강조됐다. 무역자유화를 확대시키기 위해서는 관세 및 비관세장벽을 완화 또는 철폐해야한다. 최근에 이르기까지 무역자유화를 촉진시키기 위한 세계무역정책의 수단으로는 국가별로 맺어지는 양국 간 FTA(Free trade agreement, 자유무역협정)가 있다.
우리나라도 2004년 최초로 한-칠레 FTA 이후 2012년에 한-미 FTA, 2015년에 한-중 FTA를 포함해 세계 각국과 수많은 FTA를 체결했다. 관세율의 감면 폭과 감면기간을 결정하는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고려된다. 어떤 상품을 수입할 경우 수입 가격(수출국의 수출 가격)과 자국기업의 동종 상품 판매가격을 비교한다. 이후 자국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시킨다는 산업정책적인 측면에서 외국기업의 수출가격이 공정한 것인가를 검토한다.
수출가격의 공정성은 여러 가지 형태의 보조금, 임금을 비롯한 근로조건, 지식 재산권의 침해여부, 수출국 정부의 환율 및 금융정책, 공해문제 등과 관련해 판정될 수 있으므로 교역 국에 따라 다양한 결정이 나올 수 있다. 이에 따라 외국의 수출업자는 여러 가지 자료와 기업정보를 제출해야 해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이밖에도 FTA를 체결한 국가 수가 많을수록 제품생산에 필요한 원료와 부품 등의 원산지에 관한 규정과 통관 절차 등이 제각기 달라 FTA의 실효성에 대한 비판이 확산됐다. 또한 급속히 진전되는 세계화 추세에 따라 상품거래 이외의 분야(투자, 서비스산업, 지적재산권 등)에 대해서도 보다 효율적인 자유화 조치가 이뤄질 필요성이 증대했다. 이러한 문제점 등을 포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최근에 대두된 것이 TPP(Trans-Pacific Partnership, 환태평양지역 경제동반자 협정)와 RCEP(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 같은 다국 간 FTA(Mega FTA)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FTA는 관세감면 등의 특혜를 체결국 사이에서만 주고받는 배타적인 장치로 협정체결국들은 새로운 무역창출 효과를 누릴 수 있지만 비체결국에 대해서는 기존의 시장을 잃게 하는 구조적 특성이 있다. 다국가 간 체결되는 메가 FTA 역시 단순한 경제협정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강력한 배타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데에 또 다른 관심이 집중된다. 즉 세계경제질서를 어느 나라가 주도 할 것이며, 주요국간의 패권다툼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TPP와 중국이 주도하는 RCEP의 귀추가 주목된다.
TPP는 5년 반 동안의 협상을 거쳐 지난 10월 공식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RCEP에는 적극적이었으나 TPP에는 관망적인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TPP가 공식적으로 발족되자 뒤늦게 참여의사를 밝혔다. RCEP에 참여의사를 밝힌 나라는 ASEAN 10개국과 한국, 일본, 인도, 호주 등 16개국으로 공식 발족은 다음해에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TPP 가입의 경제적 효과는 협정문의 많은 부문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기에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최근까지 알려진 정보를 바탕으로 산업연구원이 분석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의 최근 선례에 비춰 미국, 호주, 베트남 등 쌀 수출국으로부터 강한 시장개방 압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 자동차 부품, 전기전자, 기계 등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일본이 TPP로 관세 감면을 받게 되면 우리나라는 FTA 체결로 얻게 된 선점효과가 무력화된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멕시코를 제외한 10개 TPP회원국과 개별적으로 양국 간 FTA를 체결한 바 있다. TPP 협정에서 유의해야 할 부분은 TPP 참가국에서 생산한 원료나 중간재는 자국 산으로 인정해 특혜관세를 적용받도록 돼 있는 누적원산지 규정이다. 예컨대 베트남에서 생산한 부품을 일본에서 조립해 미국으로 수출해도 일본은 특혜관세를 적용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누적원산지 규정은 중간재 교역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에 매우 유리한 조항이다. 셋째, 자동차 부품업종은 미국시장 등에서 일본과 강도 높은 경쟁이 예상된다. 완성차의 경우 한-미 FTA 때문에 TPP 체결로 인한 부정적 영향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넷째, 가전제품도 일본기업들에 비해 우리기업이 불리한 입장이나 우리의 주력수출 품목인 휴대폰, 디스플레이 등은 정보기술협정에 따라 무관세 적용 대상이므로 TPP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다. 다섯째, 섬유업종에서는 우리기업들이 이득을 볼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 일본 등 TPP 역내 국가들은 역외국인 중국보다 역내국인 베트남으로부터 의류 수입을 늘릴 가능성이 크다. 섬유와 의류부문에 있어서 세계 최대의 수출국인 베트남에 우리기업들이 많이 진출해 우리나라 또한 누적환산지 규정의 혜택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끝으로 국영기업을 통한 비상업적 보조, 환율의 경쟁적 평가절하와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금융시스템 안정과 재정운영 등에 관한 정책들이 TPP 규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인정될 경우 TPP 가맹국들과 협의해야 한다. 이로 우리정부의 거시경제정책 운용에 있어서 제약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TPP 협상의 세부사항이 확정되고 각 가맹국의회의 비준을 거쳐서 발효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중국이 주도하는 RCEP 가맹국과의 협상도 계속해야 하므로 두 가지 협상에 균형을 유지해 실리를 거두는데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역자유화의 실리는 우리 경제의 국제경쟁력 강화에서 얻어진다는 것을 재인식하고 이를 위한 제도적 개혁과 산업 및 기업의 구조조정을 더욱 과감하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