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은 나의 벽을 부쉈다.

2015-12-07

임지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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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학과 11학번 임지아
내가 워킹홀리데이(working holiday, 이하 워홀)를 결심한 것은 지난 2014년 8월, 필리핀 단기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오던 비행기 안에서였다. 원어강의 비율이 가장 높고 수업이 힘들기로 악명 높은 영어를 이중전공으로 선택한 나는 지레 겁을 먹고 휴학을 했다. 금발머리 코쟁이들 앞에만 서면 막연한 두려움과 열등감을 느꼈던 나는 영어를 극복하고자 필리핀으로 3개월 간 단기어학연수를 떠났다. 그리고 필리핀 어학원에서 생활하며 외국에서 지내는 삶의 즐거움에 푹 빠지게 됐다. 하루 종일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에서 지내고 엄격한 부모님에게서 독립해 새로운 사람들과 지내니 학교와 집으로부터 해방감을 만끽한 것이다. 나는 그 곳에서 워홀제도를 알게 됐고 부모님께 영어공부와 함께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고 설득한 끝에 허락을 받았다. 앞으로의 경제적 독립을 조건으로 부모님께 백 만원을 빌려 비자신청부터 비행기티켓 구매까지 한 달 동안의 준비를 혼자서 해내고 결국 필리핀에서 돌아온 지 한 달 정도 됐을 무렵 호주 브리즈번으로 워홀을 떠났다.
기댈 곳 없는 외국에서 의· 식· 주를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만은 않았다.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했고 신중하지 못했던 탓에 호주에 도착한지 이 주가 채 안 돼 취업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여건이 좋은 집을 찾는 것도 힘들었지만 좋은 동거인을 만나는 것도 운이 따라줘야 하는 일이었다. 요리라곤 볶음밥밖에 할 줄 몰라 끼니를 해결하는 것 또한 만만치 않았다. 워홀을 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야 하는 당연한 일들이었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시도였고 처음 겪는 일들이었다.
한국에서는 절대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일들도 ‘이것도 다 경험이지, 뭐.’ 라는 생각으로 부딪혀보았다. 스시가게의 계산원 일부터 닭고기 공장에서 칼 쓰는 일까지도 해봤다. 고소공포증이 있으면서도 암벽등반을 하고 물을 무서워하면서도 수영과 서핑을 했다. 피트니스라는 새로운 취미도 생겨 덩치 큰 외국인들 사이에서 운동을 하고 운전면허도 없으면서 자동차 정비에 대해서 공부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국에서 미리 작성했던 버킷리스트(bucket list)를 하나하나 지워갔는데 마지막으로 호주를 떠나기 전에는 서 호주 일대를 홀로 여행하며 많은 생각을 했고 그간의 추억들을 돌이켰다.
이 모든 과정에서 내가 배운 것은 독립심, 자립심 뿐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을 대하고 다양한 생각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것이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아직 명확한 답을 얻지 못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할 때 기쁜지는 알게 됐다. 호주에서는 좋은 일도 있었지만 나쁜 일도 있었고 좋은 사람도 만났지만 나쁜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고생도 꽤나 하면서 ‘이 세상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기도 했다. 호주 워홀이 내 인생에 있어 전환점이었다는 것, 스스로 조금은 성장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