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흐르듯 노르웨이

2015-12-07

나참솔 |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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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동안 눈을 맞으며 아무 것도 없는 도로에서 떨다가 가방을 뒤져 공책을 찢었다.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려고 했지만 차는 종종 지나가는데 멈춰서는 차는 없다. 혹시나 글씨를 못 봤을까 싶어 더 크게 썼다. 한 시간 만에 더그(Duog)의 차를 타고 플롬(Flam)에 도착했다. 내가 예약한 숙소는 농장의 목조 2층 주택이었다. 지나가는 길에 털이 덥수룩한 소들이 보인다. 영화에나 나올법한, 방음은 안 되고 삐걱거리며 운치가 있는 건물은 피오르드 마을의 특이한 느낌을 준다. 산과 폭포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건초와 소똥냄새가 향긋하다. 노르웨이 산골이라도 마트는 있다. 1500원짜리 시리얼 외에는 전부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이다.
고생해서 보러 온 피오르드는 안개와 비로 꽁꽁 싸맨 채, 그 모습을 다 보여주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살짝 숨어있는 모양이 더 좋다. 페리를 타고 지나가는 마을들과 거친 산들 사이의 바다는 수줍음이 많아 풋풋했다.
노르웨이에는 3대 트레킹이라 불리는 멋진 곳이 있다. 트롤의 혀처럼 생겼다 하여 트롤퉁가(Trolltunga) , 깊은 산 속에 있는 쉐락볼튼(Kjeragbolten), 네모난 바둑판처럼 피오르드를 내려다보는 프레이케스톨렌(Preikestolen). 여름이었다면 세 곳 모두 가 봤겠지만, 10월말의 노르웨이는 너무 추웠다. 트롤퉁가와 쉐락볼튼으로 가는 길은 막히거나 교통편이 끊겨 있다. 프레이케스톨렌도 교통편이 없었지만 다행히 2시간만 걸으면 입구가 나온다고 해서, 하나라도 해보기로 했다.
길도 잃고 바람에 휘청거리며 고생을 하고 나서 본 프레이케스톨렌. 사진에서만 보던 모습이다. 낙엽들이 한데 모여 피오르드를 따라 줄지어 떠내려가는 모습을 내려다보는 기분이란. 이 느낌을 간직하고 싶어 천길 낭떠러지, 사각 바위의 끄트머리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사람이 아무도 없어 저 멀리서 비디오로 흐릿하게 담았지만, 짜릿한 추억은 가 본 사람만 아는 것이다.
물가가 비싼 노르웨이에서 오래 있을 수가 없어, 이틀마다 이동하면서 바쁘게 보고 다녔다. 한국보다 두 배로 돈이 드는 이곳에서 그나마 아낄 수 있는 것은 숙박비였다. 플롬과 오다에서의 1박씩을 제외하고는 노르웨이에서는 모두 카우치서핑으로 해결했다.
숨 가쁘게 송네 피오르드(Sogne Fjord)와 프레이케스톨렌의 거친 자연을 지나서 내려오니 사람이 그리웠다. 수도 오슬로(Oslo)에서는 동아리 후배가 마침 교환학생을 하고 있어서, 염치불고하고 기숙사에서 하룻밤 얻어 잤다. 노르웨이에서의 교환학생 생활 이야기도 해주고 공원과 미술관을 안내해준 고마운 후배에게 한국에 가서 밥이라도 사야겠다. 그가 기숙사 주방 냉장고를 털어 만들어준 한 끼 식사는 내 뱃속을 따뜻하게 했고, 그 느낌은 아직까지 지워지지 않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슬로에서 뭉크의 망령과 마주한 후, 안데르센을 만나기 위해 야간버스를 탔다. 이전까지는 몰랐는데 덴마크 코펜하겐은 섬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뭐,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다리로 이어 붙인 나라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곳, 코펜하겐에서 인어공주는 공원에 다소곳이 앉아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제법 길어진 머리를 휘날리며 인어공주와 사진을 찍고 새로운 대륙, 아메리카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나참솔(상경. 경제 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