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권의 책과 만 리 길의 여행 그리고 만 명의 친구 만리행

2015-10-08

김정록 기자 | 91rock@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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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만권서 행만리로 교만인우(讀萬卷書行萬里路交萬人友)’,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의 길을 가며 만 명의 친구와 사귄다는 뜻을 가진 ‘만리행’은 중국어통번역학과 내 학회로 시작해 글로벌배움터에 동아리 인준 후 서울배움터에도 동아리 인준을 받아 지금은 우리학교 양 배움터를 아우르는 중앙동아리입니다. 처음에는 ‘자전거로 중국을 모두 돌아보겠다’ 라는 계획이었지만 지금은 중국뿐만 아니라 ‘해외 여행지를 정하고 직접 자전거를 타고 가서 그곳을 느끼자’라는 취지로 바뀌었습니다."

‘만리행 남미팀’은 임지혁(통번역·스페인어 11) 군을 대장으로 안상민(경상·경영 11) 군은 구조, 이윤정(통번역·일본어 13) 양은 회계, 한보경(인문·언어인지 15) 양은 서기를 맡아 이번 여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를 거치는 남미 여행을 사고 없이 마쳤다. 국제학사 303호 만리행 동아리방에서 그들을 만났다. 검게 그을린 임지혁, 안상민 군의 얼굴은 그들의 여행이 얼마나 고됐을까를 온몸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4000km에 육박하는 거리를 자전거로 여행한다는 것이 남성대원에게도 쉽지 않았을 일인데 여성대원도 해냈다는 것이 놀라웠다.

한보경 : “6명으로 시작했지만 도중에 2명이 부상으로 빠지게 됐어요. 선배들도 힘들어하는데 막내인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팀에 짐이 되는것은 아닌지 걱정됐지만 훈련과정에서 팀원들의 격려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임지혁: “그만큼 국내에서 훈련을 열심히 합니다. 체력훈련 중 팀에서 낙오되는 인원도 있습니다. 출발 전 국내에서 체력시험을 실시하는데 말이 통하고 글을 읽을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조차도 견디지 못한다면 의사소통이 어렵고 현지어 간판과 현지의 특별한 기후, 날씨 등에 크게 영향을 받는 외국에서는 더욱 쉽게 체력과 정신력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죠”

이윤정 :“저는 팀에 늦게 합류해 체력적으로 더 힘들었어요. 아마 팀원 중에 가장 많이 뒤쳐진것 같아요. 하지만 뒤쳐질때마다 팀원들과 함께해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여행동아리는 흔하다. 꼭 우리학교뿐 아니라 다른 대학들, 일반 동호회에도 여행동아리는 많다. 하지만 만리행은 다른 동아리와 다르다.

안상민 : “만리행은 우리학교의 특성이 살아있는 동아리입니다. 우리학교는 다양한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등 다른 나라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만리행에서는 온몸으로 현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학교는 다른 나라를 연구한 교수님들이 많아 정보를 구하기도 수월했습니다”

임지혁 : “만리행의 특색은 자전거입니다. 자전거를 선택한 이유는 걸음보다 빠르고 자동차보다 느리기 때문입니다. 걸어다니면 빨리 지치고, 자동차로 다니면 단순한 관광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면 현지의 특징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멈춰서 살펴보고 물어볼 수 있었습니다”

동아리방을 찬찬히 둘러보니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바로 세계지도와 나란히 있는 체 게바라 낙서였다. 체 게바라의 일생도 대학시절 친구와 함께한 여행으로 180도 바뀌었다. 그는 여행을 통해 민중의 삶을 배웠다. 평범한 의대생이었던 그를 혁명가로 바꾼 것은 어쩌면 여행일지도 모른다.

대원들은 이번 여름 에콰도르–페루-볼리비아에 이르는 약 4,000km 남미 지역을 탐방했다.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잔인하게 뻗은 산맥과 내리쬐는 햇빛은 그들을 힘들게 했다.

이윤정 : “오르막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산행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네요. 게다가 바람도 역풍으로 불어 체력적으로 정말 힘들었습니다”

한보경 : “들개가 무서웠어요. 여행을 하면 야생개들이 쫓아오는데 한 번은 자전거 뒤쪽을 물어뜯어 짐 받침대가 떨어져 나갔어요. 물론 더위도 힘들었어요. 여행 중 더위를 먹고 쓰러진 적이 있었는데 정신이 들어보니 길거리에 누워있었어요. 그때 팀원들이 옆에서 물 뿌려주며 ‘일어나!’라고 외쳤어요”-한보경

임지혁 : “적도인 에콰도르의 키토에서 출발을 해 더위에만 익숙해져 있던 대원들이 태평양을 따라 페루쪽으로 내려오게 되면서 온도차이에 감기도 걸리고 몸살도 나 고생했습니다. 하지만 고산지대를 여행할 때는 준비를 철저히 하고 고산병 상비약도 알맞은 시기에 복용해 큰 무리 없이 고산병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치안은 개인적으로 가장 부담이 되는 점이었습니다. 팀의 대장으로 총책임을 지는 입장에서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더라고요. 특히나 안전이 요구되는 도시에서는 제가 팀원들에게 통제도 하고 잔소리를 많이 했는데, 팀원들이 잘 참아줘 단 한 건의 치안사고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윤정 : 40여일 간 외국에서 의지할 것은 서로밖에 없었던 만큼 팀원들은 하나같이 똘똘 뭉쳐있었다. 매 답변마다 서로에게 감사함과 미안함이 묻어나왔다.
“가기 전에는 현지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이 있었는데 막상 여행하니 좋은 사람도 많았어요. 한 번은 제가 팀에 뒤처져 혼자 가고있었는데 현지인이 집에서 나와 너무 힘들어 보인다고 물도 주고 샤워도 하고 가라고 했어요. 힘들었지만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죠. 그리고 안상민 대원에겐 더 고마워요. 제가 뒤쳐질 때마다 안상민 대원이 가던 길을 되돌아와 함께 가줬거든요. 자신도 힘들었을텐데, 큰 힘이 됐어요”

안보경 : “저 개인적으로 동기부여가 됐습니다. 외국어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어요. 다른 팀원들은 현지인들과 소통을 하는데 저만 못하니 아쉬웠습니다”

임지혁 : “제가 느낀 것은 ‘일상의 소중함’입니다. 여행은 일상을 탈피하기 위해 떠난다고 하는데 막상 가보면 얼마 안 돼 현지 환경에 많은 불만이 생기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한국을 그리워하며 한국의 소중한 일상에 감사하게 됩니다. 특히 체력적 소모가 심하고 정신적으로도 힘든 자전거여행을 하다보면 일상이 더욱 그리워질 때가 많아요. 하지만 장기간의 자전거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보낸 뜨거운 열정이 그리워지는 날이 와요. 실제로 저는 2011년에 다시는 자전거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이번해 대장으로 남미 자전거 여행을 한 것을 보면 장기간의 자전거 여행은 강력한 중독성을 지닌 것이 분명합니다”

한보경 : 긴 시간의 인터뷰에도 만리행 팀은 아직 할말이 남은 듯했다.
“여행 중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옆에서 격려해주고 함께해준 팀원들 덕분에 해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임지혁 대장이 여행 내내 아프지 않다가 여행을 끝내자마자 긴장이 풀려 앓아 누운 것을 보고 미안하기도 하고 고마웠습니다.

임지혁 : “우선 저를 대장으로 믿고 따라준 우리 팀원들에게 고맙습니다. 여행 중 각자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을텐데 그 시간이 자신의 발전에 밑거름이 될 것이라 생각하길 바랍니다. 여행 전 많은 도움주신 신정환 스페인어통번역학과 교수님, 정경원 스페인어과 교수님께 감사합니다”

안상민 : “만리행은 여행뿐 아니라 공부도 많이 합니다. 또 여행을 마치면 발표회나 책을 만드는 등 결과물을 만들어 뿌듯함도 있습니다. 이런 기쁨을 많은 학생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만리행은 열려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니 왜 만리행의 동아리방에 체 게바라가 그려져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가 볼리비아에서 게릴라 군을 조직해 전투 중 정부군에 체포돼 죽음을 맞이할 때 그의 가방 속에 끝까지 남아있던 것은 다름아닌 책이었다. 목숨을 건 전투 속에서 조금이라도 무게를 줄이려 이것저것 버렸을 그가 책만은 끝까지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체 게바라를 움직이게 한 것은 책과 여행이었다. 그리고 만리행이 가지고 있는 것은 책과 자전거다.

김정록 기자 91rock@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