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전승절과 한미일 외교관계

2015-09-22

우정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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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일 천안문광장 단문에서 중국의 전승절 기념행사가 열렸다. 중국의 전승절 행사는 보통 당 창건일에 맞춰 치루는 것이 관례나 이번 행사는 항일전쟁승리 70주년에 맞춰 진행됐다는 점에서 이례적이고 대대적 열병식 거행으로 전 세계 언론의 눈길을 끌었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의 동맹관계에 있는 국가원수 중 유일하게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기념식 참석이 주목을 받았다. 동북아지역 패권을 놓고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추구하는 미국과 ‘신 아시아 안보관’을 내세운 중국이 대립하는 가운데, 이번 박 대통령의 방중을 계기로 한중 양국이 더 긴밀해지면서 상대적으로 한미동맹관계가 소원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한미관계를 고려할 때 한국의 현 정부가 참석을 결정하기까지 외교적 고민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러한 신중한 결정 뒤에는 몇 가지 외교적 평가가 뒤따른다.

우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고한 한미관계에 신뢰성이 전제돼야 한다. 분단된 남북 간 대치상황에서 한미관계가 60여 년을 지켜온 것은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과 힘이 아직까지 중국과 비교할 때 절대적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즉 중국이 한국을 ‘전략적 동반자’로 인식하는 이유 중에는 한국이 미국과 굳건한 동맹관계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역사적 사실에는 만약이라는 가정을 허용하지 않지만, 과연 중국이 한국을 미국과 굳건한 동맹관계가 아닌 상태에서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인식했을까하는 문제는 한번쯤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공고한 동맹을 통해 이뤄지는 한미관계의 신뢰성을 미국이 인정하고 또 이 관계가 강력하다면 대통령의 이번 중국 고위급행사 참석은 매우 적절한 결정이라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한미관계에는 보이지 않는 미묘한 신뢰문제가 있다. 최근 중국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과 주한미군의 한반도 사드(THAAD) 배치 문제는 각각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하고 한미당국 간에 외교적 이견을 보여준 단적인 예다. 미국은 한국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굳건한 동맹국이지만, 한편으로 우리가 원하면 뭐든지 다해줄 나라도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동안의 한미관계가 건실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북한이라는 변수에 한국과 미국 모두 동맹의 신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전략적 실질적 이득이 비동맹 상태에서 받게 될 손해보다 훨씬 더 컸기 때문이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동맹관계에는 크게 두 가지 딜레마로 연루(entrapment)와 방기(abandonment)의 문제가 늘 존재한다. 연루는 동맹이라는 이유로 원치 않는 사건에 휘말리는 것이고, 방기는 꼭 필요할 때 동맹국이 외면하는 것이다. 동맹관계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 신뢰를 잃었을 때 나타나는 방기다.

우선순위에서 한미관계를 차선으로 놓거나 동맹의 틀 속에서 비록 원치 않을 때도 어느 정도 협력해주는 비용을 감내하지 않으면 우리가 꼭 필요할 때 방기당할 수 있다. 미국의 시선에 한국이 ‘작은 중국(Little China)’의 이미지로 비춰질수록 미국이 동맹을 같이하는 일본의 정책을 두둔하는 것은 당연한 국제정치적 논리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대통령의 중국방문 결정은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상당부분 정치적 성과로 평가되나, 방문과정에서 열병식 참석은 좋은 외교적 선택이라 보기 어렵다. 중국은 아직까지 정치적으로 엄격한 사회주의체제이고 독재정권인 북한과 군사적 혈맹관계에 있는 한 우호적 모습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한국이 미중 사이의 이해관계 속에 있을 때 우리의 우선순위는 어디까지나 미국이라는 점을 미중 양국에 분명히 밝히는 것이 외교적으로 훨씬 더 안정되고 이익이 됨을 주지해야한다.

둘째, 한일관계의 복원이다. 한국은 한일관계를 양국 사이의 문제로 국한하지만 한미관계와 연결해 국제관계의 큰 틀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국제관계에서 일본은 중일 간에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한국이 중국의 편을 든다고 인식해왔다. 전범국가인 일본정부의 역사인식 문제로 인해 전향적 반성과 사죄 없는 자세가 한일관계의 미래에 걸림돌임은 분명하지만, 북한과 대치중인 한국의 현실정세를 감안하면 한국이 적어도 일본과 안보문제에 관해 외교적 협력을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일본의 군사대국화 움직임에 관한 주변국가의 우려에도 미국이 아베 총리의 대외정책을 우회적으로 지지하는 것도 한반도 안보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국제관계 현실에서 보면 미국은 결국 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철저한 동맹중심의 정책에 기반해 접근하고 있음을 냉정히 인식해야만 한다. 즉 중국으로부터 얻는 경제적 이익도 미일과의 신뢰에 기반한 안보이익이 선행될 때 가능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북한 발 위협에 따른 공통의 안보분모가 한미일 간에 여전히 존재하는 한, 우리는 미일관계의 행간을 잘 읽고 국제관계에서 국격을 높이는 최선의 외교적 전략선택은 무엇인지를 주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