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이제는 좀 알고 제대로 먹읍시다!

2015-09-22

이진형 기자 | 89matteo@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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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믈리에’란 포도주를 관리하고 추천하는 사람을 뜻한다. 최근에는 포도주 대신 사케를 맛보고 평가하며 고객들에게 추천하는 ‘사케 소믈리에’도 등장했다. 그 중심에는 일본의 수많은 양조장을 찾아다니며 최상의 사케를 제공하기 위해 힘쓰는 김봉규 니혼슈코리아 본부장이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는 건전한 술 문화 전파를 위해 동분서주한다. 자신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기에 일본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술 문화만큼은 싫어할 수가 없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은 그를 만나봤다.

Q.현재 사케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데 어떠한 계기로 사케에 빠지게 됐나?
A.대학생 시절 경영학을 배우기 위해 일본에서 유학을 했다. 일본에서 1년 동안 공부하다보니 유학을 마쳐야할 때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가 너무 아쉬웠다. 더 머무를 수 있는 좋은 방법을 모색하던 중 무역학과의 전공을 살려 일본의 무역회사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결국 일본에서 취업을 준비하게 됐고 일본 주류도매상에 입사했다. 그때부터 일본 술을 많이 접하기 시작했다.
사실 대학생 때 술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어 지금도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직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구두에 막걸리를 부어 마시고 사발에다 담배꽁초를 섞고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런 후진 문화가 정말 싫었다. 술은 즐기기 위한 것인데 술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술은 전혀 달랐다. 일본 사람들은 술 한 잔을 두 시간 동안 마셨다. 술은 마시고 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의 매개체였다. 우리나라는 술이라고 하면 소주와 맥주가 보편적이지만 일본엔 수천 가지의 칵테일 종류와 수만 가지의 청주 종류가 있었다. 와인의 종류도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이러한 환경이 한국과는 매우 달라 정말 새로웠다. 이러한 문화가 너무 좋아서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접해보니까 전혀 쉬운 분야가 아니었다. 사케는 제대로 공부를 해야만 알 수 있는 정말 깊고 심오한 세계였다. 먹고 즐기는 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탐구를 해보고 싶었다.”

Q.여러 주류 가운데 사케만이 가지는 매력은 무엇인가?
A.사케는 어울림의 미학을 지닌 술이다. 여러 음식들과 어울렸을 때 그 매력이 두드러진다. 와인은 음식과 잘못 어울리면 맛이 없어지고 위스키는 맛이 너무 강해서 다른 음식의 맛을 죽인다. 소주는 알코올 농도가 세기 때문에 기름기를 씻어주는 보조 역할만 한다. 이와 달리 사케는 먹으면서 마시는 ‘식중주’의 대표적인 술이다. 맑고 깔끔해서 어느 음식과 어울려도 이상하지 않고 음식의 본연의 맛을 거스르지 않는다.
보통 와인에 있어서 ‘떼루아’를 중요한 점으로 꼽는다. 떼루아는 토양이라는 뜻으로 좋은 토양의 자양분을 받은 포도가 와인을 결정한다. 물론 사케도 좋은 품종의 쌀이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장인의 기술과 노력이다. 좋은 토양에서 자란 좋은 포도를 쓰면 명품 와인이 나오지만 좋은 쌀과 좋은 물을 썼다고 해서 명품 사케가 나오지 않는다. 사케는 여러 장인들의 피와 땀의 결정체다. 그런 점에서 매우 의미 있고 우리나라에도 알리고 싶은 술이다.

Q.‘사케 소믈리에’라는 직업은 생소하다. 사케 소믈리에가 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으며 어떠한 노력을 했는가?
A.사케 소믈리에 자격증은 국제 공인 자격증으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 여러 나라에서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이를 주관하는 곳이 사케서비스연구회(SSI)다. 자격증을 따기 위해 사케 테이스팅이나 이론공부는 기본적이다. 나는 일본에서 주류회사를 다니며 자격증을 땄다. 아카사카, 롯폰기, 시부야 등지에 있는 거래처 술집을 다니며 경험을 쌓았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 2010년에는 우리나라에도 사케서비스연구회가 진출을 하면서 사케 소믈리에 자격증 강사로 초빙되기도 했다. 당시에는 국내에 전문가가 많지 않아 일본인 강사를 통역하며 강의를 진행했다.

Q.사케 교육부문에서도 활발히 활동한 이력이 있다. 학생들이나 비전문가들에게 사케에 대해서 가르칠 때 특히 강조하는 자신만의 철학이 있나?
A.사케는 종류마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사케의 사연을 알고 마시면 더 맛있기 때문에 교육에 나갈 때마다 ‘알고 마시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와인의 경우는 이미 많이 대중화돼 동호회가 활발하게 활동하지만 사케는 아직 동호회가 한두 개뿐이다. 그만큼 사케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마시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나의 예로 노자의 말씀 중에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는 말이 있다. 물은 동그란 모양의 통에 담으면 동그란 모양이고 네모 모양의 통에 담으면 네모 모양이다. 물처럼 거스르려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포용하려는 것이 바로 선이라는 뜻이다. 이 말만큼 사케를 잘 표현한 말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상선여수를 뜻하는 ‘죠젠 미즈노고토시(上善如水純米吟釀)’라는 이름의 사케도 있다.

Q.사케의 종류가 엄청 많다. 사케는 어떻게 감별하며 어떤 사케가 좋은 사케인가?
A.사케 소믈리에들은 사케를 맛과 향의 타입으로 나눈다. 구체적으로는 향이 있는 타입, 깔끔하고 경쾌한 타입, 맛이 진한 타입, 숙성 타입이 있다. 하수들은 대체로 가격만 보고 사케를 고르지만 전문가들은 맛과 향의 타입으로 사케를 선택한다.
와인의 아펠라시옹 도리진 콩트롤레(AOC)등급처럼 사케도 등급이 있긴 있다. 쌀을 얼마나 깎았는지를 나타내는 도정률이 몇 퍼센트냐에 따라서 등급이 달라진다. 하지만 이는 좋은 사케와 그렇지 않은 사케를 구분하는 등급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술에 세금을 매기기 위해서 주류조합법에 의거한 특정명칭주를 지정한다. 그것이 바로 흔히 알고 있는 사케 등급인 혼죠조, 긴죠, 다이긴죠, 준마이, 준마이긴죠, 준마이다이긴죠의 6등급이다. 이 등급은 어느 정도의 사케의 급을 구분하는 척도가 될 수는 있지만 절대적인 등급은 아니다. 단지 세금을 매기기 위한 등급이라서 정말 비싼 술중에는 등급이 붙어있지 않은 것도 있다. 따라서 이런 등급에 너무 연연하기 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맛과 향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또 이를 위해 사케 소믈리에가 존재하는 것이다.

“너무 등급에 연연하지 말아라”

니혼슈코리아는 일본의 장인들이 직접 만든 ‘지사케’를 주로 판매한다. 그만큼 외식업체 사이에서는 지명도도 높다. 김 본부장은 “돈을 벌기 보다는 사케와 일본의 술 문화를 전파하고 싶어 비싼 술 대신 장인의 혼이 담긴 술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고 자신의 경영철학을 밝혔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주세법에 의해 수입할 때 사케의 가격은 현지의 두 배가 된다. 그래서 비싼 가격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는 ”한 번 마셔보면 그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달을 것“이라고 사케에 대해 확신했다.

Q.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A.최근에 ‘나 별일 없이 산다’라는 술이 회사에서 출시가 됐다. 우리나라 청주들은 약주의 성격이 강한데 그래서 거의 대부분 달고 약맛이 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색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어서 왜색 없이 청주를 출시했다. 일본의 유명한 지사케 브랜드인 ‘쿠보타’가 우리나라를 위해 만들어 준 술이다. 이름은 요새 별의별 일들이 너무 많아서 별일 없이 살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짓게 됐다.
이렇게 한국에 맞는 사케를 출시한 것처럼 조금 더 사케가 한국에 대중화되기 위해 문화 전파에 더 힘쓸 것이다. 이것이 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와인 동호회, 사케 동호회, 기업 특강에 가서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제발 ‘먹고 죽자’라는 생각은 버리자고 말한다. 사케 먹고는 죽지 않을뿐더러 먹고 죽으려면 돈이 어마어마하게 든다.(웃음) 술 마시고 노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교양 있게 문화를 즐기면서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는 활동을 음주에서도 찾길 바란다.

사진·글 이진형 기자 89matteo@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