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반의 나래를 펼치다

2015-09-03

서명지,경지영 기자 | 91signpaper / 91abraxas@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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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한나래(국제지역·국스 11)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

“저는 등반이 정말 즐겁고 재미있어요. 긴장감을 유지하고 몰입하고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어서 대회에 나가요.” 일산 해피볼더 클라이밍 짐에서 만난 송한나래(국제지역·국스 11)선수는 산악인인 아버지를 닮아 등반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클라이밍이라는 스포츠는 비인기 종목이지만 암벽을 올라가는 과정이 우리가 삶에서 고난을 겪어가며 성장하는 모습과 닮아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종목이다. 한나래 선수의 이야기 속에 묻어나는 클라이밍에 대한 성실함과 흥미는 그녀를 더욱 더 빛나게 만들었다. 이런 태도의 티끌들은 청송 아이스 클라이밍 월드컵에서 첫 한국인 우승을 만들어냈다. 암벽 위에서도 삶에 있어서도 긍정적이고 성실한 자세로 임하는 그녀가 훈련하는 장소를 찾았다. 그녀는 인터뷰 내내 당찬 모습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Q: 2014·2015 청송 드라이 튤링 전국 대회 2연패와 UIAA 청송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2차 리드부문 1위를 했다. 어릴 적부터 노력해고 꿈꿔온 목표를 이룬 것과 다름없을 텐데 최고의 자리에 오른 느낌과 소감은 어떤가?

A: 처음에는 정말 얼떨떨했다. 월드컵 같은 겨울시즌의 경기는 보통 가을 전후에 시작한다. 하지만 작년엔 학교생활 중이라 시간을 내서 운동하기가 어려워 학기 끝나고 늦게 준비를 시작했다. 준비기간이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우승했다. 운이 많이 따랐 던 것 같다. ‘늦게 시작했지만 최선을 다해보자’라고 생각하며 준비했고 사실 평소에 남자 선수와 함께 훈련을 하는데 여자 선수들이 연습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게 한다. 이게 이번 경기의 난이도가 무난하게 느껴졌던 원인이 됐다. 월드컵 등반자체는 실수가 없었다는 점은 만족스러웠지만 그래도 동영상으로 다시 확인해보면 부족한 점이 많이 보였다. 다음 대회 준비를 앞두고 더 열심히 노력해서 이번 월드컵 우승이 운으로만 얻어진 결과가 아니라는 것도 보여주고 싶다. 월드컵 대회가 국내에 많이 유치가 됐지만 내가 최초로 시상식 때 애국가를 울려서 사람들이 더 알아봐 주시는 것 같다. 그래서 나중엔 좀 부담을 많이 느꼈지만 이제 그 부담의 짐을 덜기 위해 앞으로 더 노력할 것이다.

Q:월드컵 당시 0분 0초 휘슬을 부는 그 순간에 완등과 동시에 우승을 해냈다. 상상해보면 아찔함과 짜릿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 순간 어땠나?

A: 1분 남았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많이 촉박하다고 생각했는데 동영상을 확인해보면 느꼈던 것과 다르게 여유롭게 보였다. 마음은 급했지만 시간 자체는 느리게 느껴졌고 또 완등한 순간 그 사실 자체만으로 매우 뿌듯하고 기뻤다. 사실 완등 처리 된 것도 신기했다.(웃음)

Q:스포츠 클라이밍 제외하고 생소한 종목인데 스포츠 클라이밍, 아이스 클라이밍, 드라이 튤링 차이가 뭔가?

A: 스포츠 클라이밍은 맨 손으로 암벽화만 신고 도구 없이 내 몸과 발로 감각을 이용해 올라가는 것이라면 아이스 클라이밍은 미끄러운 얼음 특성상 도구가 추가된다. 손에 쥐어서 얼음을 타격해 찍고 올라가는 바이엘과 미끄럼 방지 신발인 아이젠이 필요하다. 아이스 클라이밍은 추가적으로 도구를 내 몸처럼 익혀야지 가능한 등반이기에 조금 더 위험한 면이 있다. 경기 룰에서는 큰 차이는 없다. 드라이 툴링은 잘 녹는 얼음을 대신해 다른 소재로 1)홀드를 만들어 아이스 클라이밍의 단점을 보완하고 기존 스포츠 클라이밍의 홀드를 더 다양하고 강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1)벽에 달린 돌이나 장애물

Q:클라이밍 선수가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어릴 때 산을 좋아하시던 아버지를 따라 온 가족이 산으로 캠핑을 자주 다녔다. 자연스레 산이 친숙한 존재가 됐고 친오빠랑 타잔과 제인처럼 산에서 놀았다. 아버지 덕분에 ‘등반’과 익숙해졌고 높은 곳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랐다. 선수가 된 결정적인 계기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실내 암벽장에 아버지를 따라간 것이었다. 알록달록한 홀드에 반해서 선뜻 한 번 해보기로 결심하고 8m의 암벽을 순식간에 올라갔다. 그 때 코치님께서 선수 생활을 제안하셨고 나는 재미있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연습이랑 경기 참여도 재미있게 했다. 체육특기생으로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더 진지하게 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Q:스포츠 클라이밍으로 운동을 시작해 2012년에는 아이스 클라이밍도 도전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A: 2학년 때 학교생활 하면서 운동을 병행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게다가 장거리 통학을 하느라 집에 가면 밤 8시가 됐다. 또 11시까지 운동하고 집 가서 과제하고 공부하면 새벽3,4시가 됐고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다. 이런 하루하루가 계속되니까 너무 지쳤다. 휴학을 해야겠다고 알아보니까 규정상 휴학을 하면 경기에 나갈 수 없었다. 학업과 운동을 모두 다 잘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니까 운동을 그만둬야하나 고민도 했었다. 그러던 중 아이스 클라이밍을 하던 언니와 상담을 하게 됐고 갑자기 아이스 클라이밍 대회를 나가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뭣도 모르고 나갔지만 힘으로 밀어붙여서 결승까지 갔다. 그때 너무 무리했는지 대회를 나간 다음 날 옷을 입는데 팔이 안 올라갔다. 조금 변태 같지만 그때의 몸살이 오히려 뿌듯하게 느껴져서 기분이 좋았다. ‘아 고민을 계속 해봐야 뭐하나 해결책도 없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힘든 일에 아예 집중해서 고민을 잊어버려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아이스 클라이밍을 시작했다. 결국 휴학 한번 없이 스트레이트로 8학기를 마쳤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아이스 클라이밍에서 우승을 많이 해서 주 종목을 아이스 클라이밍으로 바꾼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는 스포츠 클라이밍, 아이스 클라이밍도 두루두루 모두 다 하고 싶다. 아버지 또한 멀티플레이를 하길 원하신다.

Q:학구열과 의지가 대단하다. 2011년에 국제스포츠 레저 학과에 입학했는데 외대에 입학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

A: 클라이밍 특기생을 뽑던 다른 학교에도 합격했는데 내가 배우고 싶은 방향에 더 맞는 외대에 진학했다. 평소 언어 쪽에 관심이 있어서 외대가 더 비전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 어릴 적부터 아빠가 ‘공부를 못해서 운동선수를 한다’,‘ 운동선수는 공부를 못한다’ 라는 편견을 버리도록 강조 했고 나 스스로도 공부에 욕심이 많았다.

Q: 영어통번역을 부전공 했을 뿐만 아니라 스페인어까지 공부하고 학창시절부터 시간을 아껴가며 공부했다던데 왜 외국어 공부에 큰 관심을 가졌나?

A: 고등학생 때 스페인어를 제2외국어로 배우고 스페인에 갔는데 간판을 읽을 수 있었다. 신기했던 그 때의 경험을 계기로 스페인어 공부에 흥미를 갖게 됐다. 뿐만 아니라 스페인이 클라이밍 강국이다. 유명한 선수들도 많고 훈련 장소도 많아서 스페인어를 꼭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학교에서 스페인어를 배울 수 있는 과정이 잘 개설돼 있어서 외국어 연수 평가원 프로그램을 활용해 공부했다. 영어의 경우, 전부 영어로 대회가 진행되다보니 필수적으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어를 공부하면서 인터뷰나 대회 참여의 기회가 많이 늘어서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

Q:50m 달리기처럼 단숨에 치고 올라가는 시합이 아니라 자기 페이스 대로 다음동작을 위해 숨을 고르며 차분히 진행하는 아이스 클라이밍은 오롯한 자신과의 싸움인 듯 싶다. 한나래 선수만의 마인드 컨트롤 방법이 있나?

A: 나는 등반 자체가 결단력이 필요하고 자신감과 긍정적인 태도가 있어야 시도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루트를 관찰하는 시간에 머릿속으로 내가 올라가는 동작을 그려본다. 이후 대기실에서 ‘끝까지 가서 내가 저 홀드를 잡는다’는 확신을 갖고 자기암시를 한다. 이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예전에 고1때 한 코치님께서 가르쳐주신 방법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때 내가 똑같은 동작에서 계속 떨어졌었다. 그걸 본 코치님이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머릿속으로 동작이 되는 상상을 10번하고 시도해보라고 했다. 그렇게 했더니 정말 신기하게 그 동작이 잘 됐다. 정말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같다.

Q:다른 선수들에 비해 어린 편에 속한 거 같은데 어린 나이의 선수여서 좋은 점과 힘든 점은 무엇인가?

A: 뒤집혀서 떨어지고 거꾸로 떨어지고 수없이 희한한 자세로 떨어졌는데 웬만큼 떨어져보니 무섭지 않았다. 끊임없이 도전하는 습관은 젊음의 패기덕분인 것 같다. 또 어려서 습득하는 것도 빠르다. 힘든 점은 너무 버겁고 쉴 틈이 없는 것? 시즌에 들어가면 경기하고 너무 바쁘다. 내 또래에 비해 맛있는 음식 마음껏 먹거나, 자유롭게 놀러 가거나 모두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연애 할 기회도 없다. 개인시간을 많이 뺏긴 다는 점이 가장 안타깝다.

Q:앞으로 동계올림픽에서 이 종목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선수로서의 입지나 책임감이 더 커질 거 같은데 장단기 계획이나 미래목표는 무엇인가?

A: 올해 9월부터 시즌 준비를 시작하는데 이를 위해 기초체력이나 웨이트를 위한 훈련을 한다.상반기 봄에 메르스 여파로 경기들이 많이 취소돼서 하반기에 많이 몰릴 것 같다. 10월 체전까지는 스포츠 클라이밍 대회 출전을 준비할 예정이고, 그 이후부터는 아이스 클라이밍에 올인 할 것 이다. 그리고 11월에는 드라이 툴링 국가대표 선발 1차전이 있고 12월에는 월드컵 1차가 시작된다. 1월 첫 주에는 국가대표 선발 2차가 있다. 이후 청송에서 월드컵이 열리고 스위스, 이태리, 루마니아, 러시아에서 대회가 열린다.
대회에 있어서 성적도 중요하지만 개인적으로 후회 없이 완등하는 것이 목표다. 힘들지만 잘 참고 훈련을 해서 실수 없이 경기를 끝마치고 싶다. 경기가 딱 끝날 때 ‘온 몸에 힘을 다 썼다’고 느낄 수 있는 경기를 하고 싶다. 그러다보면 등수는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년에 내가 종합 3등을 했는데 올해는 잘하는 선수들과 겨뤄 당당하게 1등을 해보고 싶다.

“등반은 도전자체라고 생각한다. 코스는 같아도 환경과 여러 변수,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지기에 그때마다 다른 도전이 된다.”

글 서명지 기자 91signpaper@hufs.ac.kr
사진 경지영 기자 91abraxas@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