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을 읽다] 그리스 사태, 지도자 선택이 관건

2015-09-02

김정록 기자 | 91rock@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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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몰락과정에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원인이 중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몰락을 초래한 고질병은 뿌리가 깊어 향후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해 독자생존을 모색하더라도 이미 바닥으로 추락한 국가경쟁력을 회복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그리스는 2015년 6월 30일까지 국제통화기금(IMF)에 갚기로 한 채무 16억 유로를 상환하지 못했다. 사실상 국가부도가 난 것이다. 1944년 국제통화기금이 창설된 이후 ‘선진경제국’이 채무를 상환하지 못한 것은 그리스가 처음이다. 그리스는 19세기 초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한 이후 지금까지 총 다섯 번의 디폴트(채무불이행)를 경험했다. 1821년 독립 후 200년이 안 되는 기간의 약 절반을 디폴트 아래에서 보냈을 만큼 그리스 정치지도자들에게 국가부도선언은 낯설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스 사태의 원인
그리스가 끝내 국가부도상태에 빠지게 된 원인을 살펴보면 첫째, 2010년 재정위기 이후 구제금융 2,400억 유로를 받고도 경제회복에 실패했다. 구제금융자금을 그리스 경제를 살리는 데 쓰지 않고 빚을 갚는 데 사용했다. 그러면서 채권단이 강요한 긴축정책으로 그리스 경제는 지난 5년 동안 국내총생산(GDP)이 24.6%나 줄어드는 혹독한 불황을 겪었다. 노동인구의 26%인 13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임금도 38% 줄었다.
그리스는 1998년부터 2007년까지 유로존 평균을 웃도는 연평균 4%의 경제성장을 했다. 하지만 산업과 경제의 구조조정으로 경쟁력을 높이기보다는 부동산 투기에 몰입해 경제는 성장하지만 고용은 늘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이 이어졌다. 또한 경제에서 공공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5.7%인 반면 관광·해운업 등 서비스업의 비중이 90%로 지나치게 높았다. 자동차, 가전제품, 대부분의 소비재 등은 수입에 의존하고 제조업은 담배제조, 식료품가공 등에 불과해 임금근로자보다 자영업자 비중이 큰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둘째, 무리하게 북유럽국가의 복지수준을 적용했다. 1981년 사회당의 파판드레우 총리가 취임하면서 정부지출을 늘려 의료보험혜택을 전 계층으로 확대하고 평균임금 및 최저임금을 대폭 올렸다. 노동법 개정으로 함부로 해고하지 못하도록 하고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고교 졸업생은 국비 해외유학을 보내주기로 하는 등 우파든 좌파든 집권을 위해 더 많은 복지를 남발한 결과 그리스는 유로존 국가 중 가장 후한 연금제도를 구축했다. 또한 최근 그리스의 치명적인 부도 원인으로 현 치프라스 정권의 포퓰리즘 정책을 꼽을 수 있다. 치프라스 총리는 긴축정책에 대한 국민의 반발에 편승해 긴축 반대와 임금 인상, 복지 확대 등 달콤한 공약을 내걸고 2015년 1월 총선에서 승리했다. 그는 집권 후 경제를 살릴 방안은 내놓지 않은 채 사사건건 채권단과 충돌했는데 임금·연금 삭감에 분노하고 있는 노동자들과 퇴직자들은 환호했지만 국제사회의 불신이 커지면서 경제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셋째, 정치·관료계층의 후견주의(clientelism)의 비호 아래 탈세와 착복이 난무하는 지하경제의 비중이 과대팽창 했다. 그리스는 정치인과 관료 계층은 노조 및 지역이권집단과 유착해 마치 두목과 부하가 서로의 뒤를 봐주는 양상의 후견주의가 팽배했다. 후견주의의 비호 아래 탈세와 착복이 난무하는 지하경제가 팽창해 유로존 위기 이전 시기에 그리스의 지하경제 규모는 국내총생산의 25%를 넘었다. 2010년 국제투명성기구(TI)는 불가리아, 루마니아에 이어 그리스가 유럽연합(EU)에서 가장 부패한 국가라고 평가했다.

◆그리스, 유럽연합의 대처
2015년 8월 20일 그리스에서는 치프라스 총리가 사퇴하고 9월 중 조기 총선을 실시하겠다는 정치적 결단이 내려졌다. 현재로서는 치프라스가 이끄는 시리자가 조기총선에서 제1당이 될 가능성이 크다. 치프라스가 사임을 발표한 데는 과반의석을 확보해 시리자 단독정부를 구성해 권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유럽연합 최대 경제강국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그동안 부채탕감은 용인할 수 없다는 점을 천명하고 긴축과 경제개혁을 주창해 자기 빚은 스스로 갚으라는 원칙과 일관된 신념으로 그리스를 유로존에 남겨두려는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온건론과 지정학적 요인을 의식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절충론을 단호히 배격했다.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은 유로존 정상들과의 마지막 협상에서 치프라스 총리가 결국 채권국의 요구를 수용하게 만들었다.

◆그리스 사태에 직면한 국제사회의 대처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 총재는 그리스의 채무상환 만기에 대해 “단 하루도 연장은 없다”고 강경 대처했으나 2015년 6월 30일 그리스가 실제로 채무를 갚지 못하자 “이는 연체일 뿐 즉각적 디폴트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크게 물러섰다.
옐런 미 연방준비위원회(FRB) 의장이 백악관에 “그리스 문제를 어떻게든 안정시켜야 한다”고 주문한 것으로 보도됐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국제통화기금이 그리스에 강경하게 대처해 세계금융시장이 요동치면 연방준비제도(FED)도 금리인상이 어렵다고 피력하고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그리스의 유로 통화권 탈퇴는 막아 달라”고 주문했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경제부진으로 고뇌하고 있는 중국이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남중국해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국의 패권확대전략을 억제하는 데에는 금리 인상이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할 수 있다.
그리스 사태 해결의 이면에는 메르켈과 라가르드의 강·온 대치, 라가르드 뒤의 옐런과 오바마, 미·중의 패권경쟁, 중국의 핵심 경제파트너인 독일 등의 국제정치적 역학관계가 얽혀 있어 그리스 사태는 경제적이기 이전에 정치적 이슈로 읽어내야 할 측면이 존재한다.

◆그리스 사태가 세계경제 및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
그렉시트(Grexit,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발생할 경우,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 재정위기로 긴축재정을 시행하고 있는 남유럽국가도 잇따라 긴축재정에 반기를 들며 유로존 탈퇴를 강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면 기축통화로서 유로화의 지위가 흔들리고 국제금융시장에 위기가 고조돼 2010년 남유럽발 재정위기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렉시트가 일어난다고 해도 그리스와의 직접 교역규모가 작으므로 그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의 대 그리스 교역액은 2014년 현재 14억6천만 달러로 전체 교역액 1조982억 달러의 0.1%에 불과하지만 그리스 충격으로 글로벌 교역 자체가 축소될 경우 국내 해운·조선업에 미치게 될 악영향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