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대인이 만난 세계]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프라하, 체코

2015-06-10

박윤진 | 90yoon@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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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서면 사람만한 덩치의 개 두 마리와 함께 아침산책을 나왔다. 혼자 집에 있기도 뭐해서 카밀라를 따라 공원 한 바퀴를 돌았다. 공원 참 크다. 거의 수목림처럼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조깅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프라하에는 이런 공원이 22개나 있단다. 한국에 있는 우리집 강아지는 일주일에 한 번 산책한다고 했더니 자격미달이란다. 체코 사람들은 반려견을 산책시키지 않는 건, 함께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하긴 카밀라는 죠브와 쟘보, 덩치 두마리를 하루에 세 번 산책시킨다. 직장도 가까워 점심시간에도 집으로 와서 함께 밖을 나선다고 한다.

카우치 서핑을 할 땐 호스트와 시내는 잘 나가지 않는다. 그건 혼자서도 할 수 있으니까. 대신 친구들이 아는 숨겨진 명소나 교외로 나간다. 카밀라와 함께 있는 동안에도 프라하 시내구경 대신 근교에 있는 중세 성 주변을 트레킹 했다. 물론, 죠브와 쟘보도 함께. 이동할 때 버스와 기차를 탔는데 반려견에 대한 배려가 보인다. 대중교통에 대형견과 함께 앉을 수 있는 좌석이 구비되어 있다. 답답한 입마개는 해야 하지만.

버스를 타고 2시간을 달려 한적한 마을에 내렸다. 조금 걸어 아메리카 대륙처럼 생겼다는 호수를 지나치고, 신나서 달려대는 개들을 따라 정신없이 쫓다보니 어느새 황금빛 갈대밭이 펼쳐진 들판이 드러난다. 카밀라가 만들어온 초코브라우니와 샌드위치로 대신하는 점심. 프라하 성과 그 옆을 흐르는 강의 아름다움도 좋지만, 때로는 여행자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이런 곳에서 여유를 부리는 시간이 더 달콤하다.

찰스성이 보이는 산 언저리에 닿았다. 왕이 휴식을 위해 왕비를 비롯한 여자를 꺼리고 남자 하인들만 두고 살았다는 성. 13세기의 낡은 숨결을 느끼며 그 옆을 비껴 산을 내려왔다. 돌아가는 길은 기차를 타기로 했다. 카밀라도 나도 피곤했지만 마주보고 앉아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주로 여행에 관한 이야기. 유치원교사인 카밀라도 쉴 때는 몇 달씩 유럽을 여행한다고 했다. 그러다 왜 여행을 하냐고 묻길래 여러 문화를 돌아보며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툭하니 던지는 한마디. ‘여행은 나 자신을 찾으면 끝나야 해, 그 후에도 계속 되는 건 여행이 아니라 방황이야.’

머리를 쿵하고 때리는 느낌이었다. 도시와 도시를 이동하며 점점 여행의 의미와 목적이 퇴색되어가고 있던 시기여서 더 찔렸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불가리아에서의 호스트 디디도 같은 말을 했었다. 여행은 작은 삶이고, 그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큰 삶으로 돌아왔을 때를 준비해야 한다고. 가볍게 갔다가 무거운 숙제를 받아온 듯하다.

저녁에 카밀라에게 삼계탕을 대접했다. 체코 닭이 생각보다 커서 거의 4인분이 나와버렸다. 평소에 닭을 잘 안먹는다는 카밀라도 맛있다며 배가 부를 때까지 먹고도 내일 아침에 또 먹고 싶을 정도라는 칭찬을 해줬다. 이때부터였다, 내 여행요리의 시작은. 식사 후, 맥주 한 잔을 들고 프라하의 야경을 보러 강바람 부는 다리로 나갔다. 역시나 죠브와 쟘베도 함께. 강은 유유히 흐르고 불빛들은 그 위에 일렁인다.

나참솔 (상경,경제 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