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에서 가치로

2021-05-16

우경주 기자 |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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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땐 사회 문제와 단절됐었다. 기숙사 생활로 주말에만 사용할 수 있던 와이파이 때문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접하기 어려웠다. 종이 신문을 구독할 만큼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친구도 있었지만 내게 사회 문제는 그 정도로 중요하지 않았다. 2016년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당선일, 온 학교가 떠들썩했지만 난 크게 관심이 없었다. 2017년 수많은 시민이 분노하며 광화문 광장으로 나설 때도 난 학교에 남았다. 매일 아침 등굣길에 놓인 신문 1면을 보고 대강 파악한 흐름으로 그들의 분노 원인을 추측할 뿐 더 자세히 알고싶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수험생인 내게 분노는 사치라고 생각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으리란 기대로 수험생활을 버텼지만 대학생이 된 난 예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여전히 바쁘게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할 뿐이었다. 그러던 2019년 겨울방학, 단조롭던 일상에 변곡점이 생겼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첫 선거권을 의미 있게 행사하기 위해 사회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겨울방학 거의 모든 시간을 △뉴스△라디오△일간지와 함께했다. 기사를 매개로 사회에 눈을 떴고 더 나아가 직접 기사를 쓰고 싶어졌다. 대학 입학 이후 지난 두 달을 가장 바쁘게 보냈다. △기삿거리 탐색△취재△기사 작성△퇴고를 반복하다 보니 벌써 한 학기 절반이 지났으니 말이다. 뜻깊은 시간이었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무엇보다 정확한 정보를 담는 과정이 부담스러웠다. 정확한 정보를 객관적으로 전달해야 기사를 읽을 불특정 다수와 취재원의 시간을 헛되지 않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걸 매주 신경쓰다 보니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졌지만 학보에 들어온 걸 후회하진 않는다. 이전과 가장 달라진 것은 그동안 내게만 집중하던 눈을 외부로 돌렸다는 것이다. 예전엔 오늘의 내 일정만을 생각했다면 지금은 학내 구성원들의 생활과 관심사에 귀 기울이고 있다. 세상을 기록하며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고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나가는 수많은 이들에 주목하게 됐다. 대학 입학 전 막연하게 꿈꾸던 가치 있는 삶에 다가가며 더 나은 사람이 돼가고 있는 듯하다. 네 번의 마감을 했지만 내게 기자란 칭호가 아직 과분하다고 생각해‘ 우경주 기자’보단‘ 외대학보 소속 우경주’라고 소개하는 게 편하다. 무엇이 좋은 기사인지, 어떻게 하면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해 외대학보란 집단에 숨지 않고 나를 당당히 기자라고 소개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