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대인이 만난 세계] 쌉사름 시원한 플젠(Plzen), 체코

2015-05-29

김다정 | 88daisy@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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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가 맛있다는 소리만 무수히 들어본 나라 체코. 체코 여행은 맥주의 본고장격인 도시, 플젠의 명물 필스너 우르켈의 맥주공장부터 시작된다. 플젠에서의 하룻밤 소파를 기꺼이 내준 고마운 친구, 자라(Jara)는 아침에 출근하기도 바쁜데 식사까지 챙겨줬다. 같이 사진도 찍고, 시티센터까지 차로 데려다 준다고 해서 나왔는데 안개가 엄청 짙다. 공기 중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수준. 유럽의 가을은 이렇게 시작된다고 하니, 이들이 일년 중 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그토록 그리워할 만 하다. 중앙역사내 빵집에서 텁텁한 소시지빵 하나를 물고 공장으로 갔다.

투어는 공장내 버스를 타고 건물마다 내려주면 돌아보고 다시 타는 형식이다. 숙성되는 몰트의 향부터, 로스팅, 역사 까지. 명문 양조장 포스를 팍팍 풍긴다. 하이라이트는 오크통이 주욱 늘어서 있는 지하숙성고에서 필터되지 않은 날 것의 뿌연 맥주를 마시는 것이다. 쌉사릅하면서 칼칼했다. 여느 호프집의 흐리멍텅하고 탄산 가득한 맥주에 배신감을 느끼던 것과 달리, 한 잔이면 향과 맛에 취할 정도로 진실하다. 투어 후 기념품 점에 들러 자신만만한 플젠맥주의 큼직한 마크 새겨진 맥주컵받침을 발견했다. 장당 5코루나, 우리 돈 250원. 마지막 남은 받침6개를 싹 쓸어 담았다. 저렴하지만 한국에 있는 동갑내기 애주가들에겐 꽤 요긴한 선물이 될 것이다.

프라하로 가는 기차는 100코루나, 약 5천원 가량으로 엄청 싸다. 이웃나라 헝가리와 비교했을 때, 체코도 나름 유럽의 한복판에 있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여행자의 유럽여행 한 가운데 오아시스 같은 곳인 것이다. 이런 아름다운 물가라니, 프라하가 숨이 턱까지 차오를 정도로 높은 물가의 북유럽으로 향하기 전, 일주일 정도 숨을 고르다 갈 수 있는 곳이 될 듯하다. 기차에서 내리니 어느덧 해가 뉘엿하다. 저녁 6시면 이제 노을이 붉다, 싶더니 곧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이다.

프라하에서 만날 친구, 카밀라는 큰 개를 두 마리나 키운다. 동구의 느낌이 물씬 풍겨대는, 덜컹소리 요란한 트램을 타고 15분 정도 가니, 과연 어딘가 과하게 신나 보이는 덩치 두 마리를 데리고 마중 나와있다. 집은 개판. 다름이 아니라 룸메이트와 쉐어하는 아파트의 오로지 방 한 칸에 개 두 마리가 같이 살고 있으니 개판이라 하겠다. 그래도 난 개를 좋아하니까 그들과 기꺼이 한 공간, 한 마룻바닥을 공유하길 즐기기로.

저녁은 유럽의 도처 나라가 모두 자기들 전통음식이라 우기는 굴라쉬를 시도해봤다. 상상 속 굴라쉬는 맑은 짬뽕국물 느낌인데, 실제론 짜장소스 같은 검은 스프만 한 그릇 나왔다. 소고기와 수제비 같은 것도 있지만, 확실히 음식가리지 않는 나에게조차 취향 밖이다. 내일은 카밀라가 동네 산책을 시켜준다니 기대해봐야겠다. 물론 덩치 두 마리와 함께.

나참솔 (상경,경제 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