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을 읽다] 우크라이나 내전 들여다보기

2015-03-05

유혜민 | 90hyemini@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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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2일 장장 16시간 동안의 기나긴 협상 끝에 민스크 평화 합의안이 승인됐다.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 놓여있었던 우크라이나의 내전 상황은 민스크 4자 회담 덕분에 임시적으로나마 봉합될 수 있었다. 이번 민스크 합의안은 본질상 2014년 9월 5일 체결된 민스크 협약의 데자뷰나 마찬가지였다. 작년과 올해의 민스크 협정이 형식과 내용면에서 대단히 유사했기 때문이다. 4자 협상 참여자들(독일, 프랑스, 우크라이나, 러시아)은 우크라이나 정부와 동부 분리주의 세력 간에 교전 중지와 평화 구축을 최우선적인 목표로 삼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발생과 국제화
우크라이나 사태는 2013년 11월 21일 우크라이나 정부가 유럽연합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전격적으로 유보함에 따라 촉발됐다.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의 대외정책 노선은 유럽행 궤도에서 이탈함과 더불어, 러시아 쪽으로 방향을 급선회하게 되었다. 분노한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독립광장에 모여 우크라이나의 유럽행을 강력하게 요구하면서 지속적으로 반정부 시위를 벌여나갔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집단행동의 이면에는 집권 이후 야누코비치의 권력 강화와 독단적 국정운영, 사회 내부에 만연한 부정부패, 경제적 혼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 시위대와 경찰들 간에 물리적 충돌이 여러 차례 발생해 100여명이 넘는 사상자가 속출함에 따라, 경찰의 강경한 시위 진압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이 커지게 되었다.
2014년 2월 21일 국제적 조정자들(독일.프랑스.폴란드 외무장관, 러시아 대통령 특사)의 중재 아래 우크라이나 반정부 시위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여야 대표자 모임이 긴급하게 개최됐다. 회담의 결과로 여야 간에 ‘2.21 합의안’이 마련됐으나, 시위대의 주동 세력이었던 극우 민주주의 집단들이 합의안을 일방적으로 파기함으로써 정치적 대변혁이 발생하고 말았다. 의회 내에서 야당 성향의 새로운 다수파 출현, 친 정부 성향의 연립정부 와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러시아 도주, 헌법 개정과 대통령 탄핵, 새로운 혁명 정부 구성 등이 연쇄적으로 벌어졌다.
우크라이나 혁명세력의 권력 장악은 러시아에게 중대한 국가적 위협으로 간주됐다. 우크라이나 혁명정부의 유럽행 재개 선언은 푸틴 정부의 강대국 러시아 건설전략에 치명적인 악재나 다름없었다. 푸틴 정부는 우크라이나의 탈러시아 정책에 대한 강력한 대응 방안을 통해 자신의 힘과 영향력을 과시하고자 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러시아는 서방과 우크라이나의 영토 침탈에 대한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외교력과 군사력을 총동원해 크림반도 합병작업을 신속하게 마무리해버렸다. 한편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영토 침탈 행위에 대한 압박 차원에서 각종 경제적 제재조치를 시행했다. 그 결과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 냉전을 방불케 하는 새로운 대립구도가 형성됐다. 이처럼 우크라이나의 국가적 현안에 대해 러시아와 서방세계(미국과 EU)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나섬에 따라 우크라이나의 정치 이슈가 국내 정치적인 성격을 벗어나 국제적인 중대 사안으로 부상하게 됐다.

동과 서 사이에서의 충돌
혁명 정부의 출범 이후 동부 지역에서 분리주의 집단들의 활동이 본격화됐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인민공화국을 선포하면서 주민투표 실시 등을 통해 러시아로의 귀속을 도모하고 있었다. 2014년 5월 대선을 통해 수립된 우크라이나 신정부도 영토적 단일성을 확립한다는 정치적 목표 아래 동부 분리주의 반군세력을 격퇴시키기 위한 군사작전을 감행했다. 정부군과 친 러시아 민병대 간 무력 충돌의 결과 유혈참사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말았다. 2014년 9월 1차 민스크 협정 체결 후 잠정적인 평화체제가 유지돼 왔지만, 올 초 교전이 재개됨으로써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5500명이 넘는 희생자들을 양산했다. 푸틴 정부는 내전 대비와 러시아인 보호라는 미명 아래 자국 군대를 우크라이나 동부 국경 근처에 집결하여 긴장 상황을 고조시키기도 했으며, 반군에 대한 암묵적인 형태의 군사적 지원을 통해 동부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굳건하게 유지해오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내전은 동서 지역주의에 근원적인 동인을 두고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동’(러시아)과 ‘서’(중동부 유럽) 사이에 위치하면서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두 지역을 대표하는 강대국들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아왔던 국가였다. 독립 이후에도 ‘동’과 ‘서’라는 지정학적 특수성은 우크라이나의 정치과정과 대외정책 결정에 있어서 핵심 변수로 작용했다. 특히 친 러시아 성향의 동부 지역과 친 유럽 지향의 서부 지역의 정치적 갈등과 대립은 국가적 통합성을 훼손할 수 있는 중대한 내부적 불안 요소였다. 우크라이나의 신정부 인사들이 주로 서부 지역에 정치적 기반을 두면서 친 유럽을 지향하고 있는데 비해, 동부 지역 반군들은 친 러시아 성향을 나타내면서 정부군에 대해 결사항전 태세를 취해왔던 것이다.
2차 민스크 합의와 우크라이나의 미래
내전 확산의 위기감 속에서 최근 체결된 2차 민스크 합의안은 극적으로 이루어진 정치적 대타협이었다. 이 협약은 독일과 프랑스의 적극적인 중재 노력,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현실적 계산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물이다. 특히 유럽 측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살상무기 지원 가능성에 큰 정치적 부담을 갖게 됐다. 만일 미국의 군사무기 지원을 빌미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사태에 본격적인 군사적 개입을 단행한다면, 우크라이나 사태는 더욱 복잡한 혼돈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유럽의 안보질서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자,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손실을 초래할 개연성이 크다. 또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경우에도 경제적 위기에 처해있기에 내전 확산에 따른 추가적인 정치적 부담과 경제적 피해를 우선적으로 고려한 선택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미래는 2차 민스크 합의안의 실행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13개 항목으로 구성된 2차 민스크 합의안에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실질적인 작동 메카니즘과 실행 로드맵이 구체화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2차 민스크 합의안도 상황 변화에 따라 언제든 1차 합의안처럼 폐기될 여지 또한 존재하고 있다. 결국 2013년 11월 21일에 시작된 우크라이나 사태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