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연서

2020-12-04

허지나 편집장 |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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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대학보에 들어와 처음 썼던 기사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떨렸던 첫 인터 뷰와 취재 과정을 거쳐 기사를 완성했을 때 뿌듯함을 잊을 수 없다. 그 첫 기사 를 통해 대학언론의 존재 의미를 깨달았다. 대학언론 기자로서 기사를 어떻 게 써야겠단 방향성을 잡게 된 계기였다. 취재의 기본은 여러 사람의 다양한 입장을 듣는 일이다. 그때야 비로소 기사의 주제가 드러난다. 그 시작은 편집 장으로 학보 생활을 마치는 지금까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다.
정기자 시절 썼던 뒷담하는 기자를 다시 읽어봤다. 당시‘ 잘 견디며 단단한 사람이 돼 학보 생활을 마친다면 멋있는 일을 해냈다고 얘기하고 싶다’로 글 을 마쳤다. 학보 임기 중 마지막 발행을 남겨둔 시점에서 이 문장을 읽으니 생 각이 많아진다. 나는 과연 단단해졌으며, 멋있는 사람이 됐을까.
이번 해 학보 생활은 단단해짐과 연약해지는 순간의 반복이었다. 여름 무 렵 편집장을 맡기 시작하곤 한동안 자면서 소리 질렀다. 주어진 상황들이 답 답하게 여겨질 때가 잦았다. 돌이켜보면 결국 자신을 향한 감정이었다. 학보 생활은 체력·시간적 한계 속에 최선을 끌어내야 하는 일이다. 잘 해내고 있 는지 의심했다. 부족함을 원망했다. 그 과정에서 포기하고 지나치는 것들도 늘어갔다. 조급함에 발이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한 호를 발행하기까진 매번 냉·온탕을 오갔다. 지금 돌아보니 그 모든 순간은‘ 담금질’하는 시간이었다. 그 결들이 쌓여 마지막 순간까지 굳게 서 있을 수 있게 됐다.
학보사실에 쌓인 서사가 너무 많다. 대학 생활 절반 동안 쌓인 성장의 결들 이 묻어나 있다. 이제 학보사실에서 밤샐 일이 없단 사실이 낯설다. 지금 감정 에 시원섭섭함만큼 꼭 맞는 표현이 없다. 아주 조금 해방감을 느끼고 오래도 록 여운이 남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마감이 없는 다음 학기가 벌써 허전해지 는 듯하다. 학보 밖을 나설 생각하며 참 헛헛하고 허무했다. 이뤄놓은 게 뭐가 있을까 싶어 쓸쓸했는데 돌이켜보니 참 애썼다.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준 학보라 그리움이 짙다. 진한 동료애를 넘어 전우애를 느낀다. 함께 애쓰며 서로를 성장시킨다. 때때로 화가 났다가 도 금방 애틋해져 버리고 만다. 이번 학기 같이 고생한 기자들이 부디 불순물 섞인 감정은 버리고 순수한 애정만 남겨가길 바란다. △강유덕 교수님△이춘 매 선생님△안흥섭 사장님께도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서투름을 믿고 따라준 모든 사람이 고맙다. 소중한 인연, 치열한 마감으로 가득 찬 학보사실이 한편 에 남아 앞으로도 힘이 될 거다.
멋있는 일을 해냈지만 멋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멋있어 보이는 일과 멋있는 사람이 되는 건 다르다. 편집장을 하며 깨달은 사실이다. 이젠 멋있는 사람이 란 어떤 건지에 대한 고민이 든다. 대학언론으로써 학보의 멋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을 마무리하고 이제 나의 멋을 찾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