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예방교육 의무화, 메마른 대학생 성인지 감수성에 단비 내리나

2020-12-01

김미정 기자 | 100kimmijung@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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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사회 전반엔 낮은 성인지 감수성으로 인한 성차별·폭력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는 사회적 차원의 인식 개선을 도모하고자 여러 해에 거쳐 법률안을 개정해 폭력예방교육을 의무화했다. 의무대상기관엔 △각급 학교△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 등이 포함된다. 각 대학 또한 이에 해당돼 학내 모든 구성원을 대상으로 폭력예방교육을 시행한다. 우리 학교는 이번 해 4월 27일부터 이번 달 30일까지 학생을 대상으로 성희롱 등 폭력예방교육(이하 폭력예방교육)을 의무실시 중이다. 이 가운데 폭력예방교육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폭력예방교육 실시 현황△폭력예방교육의 실효성△나아가야 할 방향을 살펴보자.

◆각 대학 폭력예방교육 실시 현황

현재 우리학교를 포함한 모든 대학은 학내 구성원의 성인지 감수성 향상을 위한 폭력예방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폭력예방교육의 학생 참여율은 저조하다. 각 대학 주요 정보 제공 웹사이트 ‘대학알리미’에 게재된 지난해 폭력예방교육 추진실적을 확인한 결과 우리학교 학생참여율은 43%에 불과했다. 다른 학교 또한 다르지 않다. △경희대학교△고려대학교△서강대학교△홍익대학교는 각각 △34.1%△49.1%△39.4%△14.3%로 학생 참여율이 절반 이상인 곳은 드물다. 실제로 지난 9월 22일, 여가부가 국무회의에서 발표한 ‘2019년 공공기관 성희롱·성폭력·성매매·가정폭력 예방교육 실적 점검 결과’에 따르면 의무대상기관 중 대학의 폭력예방교육 참여율이 가장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폭력예방교육 실적 부진 기관 188개 중 76개가 대학을 포함한 각급 학교였다.
이에 여가부는 이번 해 1월 발표한 ‘2020년 폭력예방교육 운영 지침’에 대학교 학생 교육 이수율 70% 이상 달성 시, 예방교육 실적점검 평가에 가점을 부여하는 등의 신설조항을 추가했다. 여가부 관계자는 “대학의 교육 참여율은 향상되고 있지만 여전히 저조한 편이다”며 부진기관의 언론 공개주기를 2년에서 1년으로 강화할 것이라 밝혔다.
이어 지난달 22일, 정찬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이하 정 의원)은 최근 5년 동안 전국 대학에서 총 1,206건에 달하는 성희롱·성폭력 사건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이 중 746건의 가해자는 학생이다. 이에 정 의원은 “관련 예방교육을 필수 이수 과목으로 지정하는 등 대학생 성인지 감수성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학교 폭력예방교육은?

지난해 2학기 우리학교는 폭력예방교육 미이수 시 제재를 가하는 의무화 정책을 시범 운영했다. 교원의 경우 종합정보시스템의 일부 기능 사용 권한이 제한되며, 학생은 성적 조회가 불가하다. 이는 이번 해부터 정식 시행됐다. 지난달 29일, 성평등센터는 우리학교 앱 메시지를 통해 교육 미이수 학생에게 성적열람이 제한된단 사실을 상기시켰다.
여가부 폭력예방교육 운영기준에 따르면 전국 각 대학에선 학부 및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성폭력·가정폭력 예방교육을 매해 2시간 이상 실시해야 한다. 우리학교 온라인 폭력예방교육은 △가정폭력△대학과 인권 및 젠더폭력△성매매△성희롱·성폭력 총 4개 강의로 구성된다. 강의 이수엔 2시간 20여 분이 소요된다. 강의를 수강한 뒤 10문제로 이뤄진 형성평가를 치러야 교육 이수가 인정된다. 최지원(아시아·이란어 19) 씨는 “폭력예방교육의 구성과 내용이 기대 이상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성적열람 제한이란 제재를 피하기 위해 수강했지만 젠더 폭력에 대한 재고가 가능했음을 언급했다. 나아가 성차별 문제 담론의 장에 대한 학생참여 유도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그러나 우리학교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선 폭력예방교육에 대해 “강제로 듣게 하는 것은 또 다른 억압이다”며 부정적 반응이 나타나기도 했다.

◆폭력예방교육, 실효성은?

외대학보는 이번 달 9일부터 11일까지 총 3일간 우리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폭력예방교육 실효성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75.4%의 학생이 ‘폭력예방교육의 실효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답했다. 그 이유론 ‘아는 내용의 반복’이 48%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고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이 44%로 잇따랐다. 실제로 교육을 이수한 학생 중 59.5%는 ‘강의 영상을 재생해 시간만 채우고 다른 일을 했다’고 밝혔다. 반면 ‘폭력예방교육이 실효성 있다’고 답한 학생들은 본인 인식 변화 도모 가능과 대학 내 성평등 문화 형성을 위한 움직임 체감 등을 이유로 꼽았다.
설문조사 결과에서 나타나듯 현재 학내에서 이뤄지는 폭력예방교육에 대해 상당수의 학생이 회의적이다. 왕희연(아시아·인도어 19) 씨는 “아무리 좋은 내용으로 강의를 구성해도 제대로 듣는 사람은 드물다”고 전했다. 더불어 단순 주입식 교육으론 실질적인 성인지 감수성을 향상하긴 어렵단 입장이다. 교육 방식뿐만 아니라 강의내용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학생도 존재했다. 정규연(아시아·몽골어 19) 씨는 “항상 같은 내용이 반복돼 교육을 통해 새롭게 배우는 게 없는 느낌이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밖에도 더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교육 진행의 필요성을 알려야 한단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대학생 성인지 감수성 향상, 나아가야 할 방향

현재 성차별 문제는 학내에서 예민한 사안으로 받아들여져 학생이 쉽게 의견을 피력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원지유(서양어·네덜란드 19) 씨는 “지난해 수강했던 교양과목에서 성차별을 주제로 토론할 때 학생들의 소극적인 태도에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성차별에 대한 담론의 장이 마련돼도 적극적으로 활용되는지 의문이라며 학생들의 능동적인 태도 형성을 촉구했다.
전문가 또한 성인지 감수성 향상을 위해선 능동적 참여 형태의 교육이 마련돼야 한단 입장이다. 황인자 미네르바교양대학 교수는 “성폭력 문제는 성별 간 갈등·대립을 야기하는 경우가 많아 일방적인 강의보다 토론 방식의 수업이 더 효과적이다”고 전했다. 이어 성인지 감수성 향상을 위한 교육은 △경제△문화△사회△정치 등 생활 전반에 걸쳐 이뤄져야 한단 소견을 밝혔다. 또한 김경희 미네르바교양대학 교수(이하 김 교수)는 이분법적 사고로 인해 젠더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주입식 교육의 한계를 짚었다. 김 교수는 성인지 감수성을 향상하기 위한 일환으로 소그룹 단위의 실생활 사례분석을 예로 들었다. 나아가 학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교육과 간접 경험 활동을 통한 정서적 공감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양캠퍼스 성평등센터는 △신입생 세미나 특강△새내기배움터△학생 대표자 대상 교육을 시행해왔다. 또한 시기에 맞는 화제를 선정해 학기 별로 전문 외부 강사를 초청해 특강을 실시했다. 그러나 이번 해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계획했던 오프라인 폭력예방교육이나 각종 특강이 무산됐다. 어려운 상황임에도 성평등센터에선 학생의 성인지 감수성 향상을 위해 힘쓰고 있다. 이번 달 24일과 25일, 우리학교 글로벌캠퍼스 성평등센터는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을 초빙해 대면 교육을 시행할 예정이다. 정부의 전염병 예방 지침에 따라 우리학교 재학생 30명을 대상으로 한다. 1부 주제는 ‘남자가 보는 페미니즘’이며 2부는 ‘성폭력과 주변인’이다.
낮은 성인지 감수성은 학내에서 발생하는 성희롱·성폭력 문제와 밀접하게 닿아있다. 탁경구 성평등센터 관계자는 “성희롱·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학생 개개인의 인식 전환이 우선돼야 한다”며 “학생들이 센터에서 운영하는 특강 및 토론회 등의 행사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여전히 우리사회엔 성차별·성폭력 문제가 만연하다. 사회 전반의 변화를 꾀하기 위해선 개개인의 성인지 감수성을 향상할 수 있는 실질적 폭력예방교육이 무엇인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

김미정 기자 100kimmijung@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