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을 꿈꾸며

2020-10-04

이상우 기자 | 이메일

조회수 111 댓글 0

내 정체성은 이중적이라 스스로 모순에 빠질 때가 다반사다. 겁이 많지만 좋아하는 공포 영화를 보고 난 후 후유증에 시달려 밤잠을 설칠 때가 많다. 실행력이 좋지 않지만 계획 세우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계획을 세웠다가 하나도 이행하지 못해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낯을 많이 가려 쉽게 다가가질 못했다. 새로운 관계에 용기를 내고자 다짐해도 우유부단한 천성은 결심을 꺾어버렸다. 결국 말 한번 제대로 걸지 못하고 끝난 대인관계는 일일이 기록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러나 난 항상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교류하고 싶다. 하루아침에 소위 ‘인싸’가 될 순 없지만 매일 조금씩 남에게 살갑게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마음 맞는 사람과 어울리며 교류하는 게 내 낭만이기 때문이다.
외대학보에서 처음 느낀 건 멋진 사람들로 구성돼 있단 것이었다. 학보의 완성을 위해 밤새며 기사 작성 및 수정을 끊임없이 하는 열정과 의연함에 압도당했다. 각자의 확고한 가치관을 뽐내는 기자의 모습은 팔색조와 같아 친해지고 싶은 1순위가 됐다. 이 모습에서 무한한 신기함과 교류하고 싶단 욕구를 느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친해지는 과정은 매우 어려웠다. 내 특유의 소심함과 더불어 학보의 목적은 친목 도모가 아닌 학보 작성이란 공적 활동이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체감했던 학보의 어려움과 궤를 같이하는데, 기사를 쓰고 수정하는 힘겨움보다 친근하게 다가가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며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이대로 학보 활동이 끝나는 날까지 제대로 된 교류를 못 할까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걱정의 7할은 일어나지도 않는 일에서 기인한단 인디언의 격언처럼 기우에 불과했다. 1년 동안 학보에서 동고동락하다 보니 멀게만 느껴지던 동료와의 심리적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학보 동료들과 업무에 관한 얘기가 아닌 시시콜콜한 잡담을 자연스레 하게 됐을 때 정말 기뻤다. 남들이 보기엔 사소한 친구끼리의 행위겠지만 내겐 낭만의 실현이었다. 최초로 학보에 내 이름이 적힌 기사가 실렸을 때보다, 생각 외로 글이 잘 써져 마감을 일찍 끝냈을 때보다 더 짜릿한 성취감을 느꼈다.
기자가 되고 싶은 이유는 소박하다. 기자 특성상 다양한 사람과 만나며 교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낭만 실현과 동시에 경제활동도 가능하니 다른 선택지는 고려하지 않았다. 학보에 들어오는 이들 대다수가 언론에 뜻이 있어 들어온 경우가 많다. 나 역시 언론 생활을 미리 체험하고자 학보에 들어왔다. 단순히 경험과 스펙을 쌓았단 것보다 마음 맞는 사람을 얻었단 것에서 의미 있고 소중한 시간이다. 먼 훗날 내 포트폴리오엔 ‘학보사 활동을 했다’란 감정 없는 문장 한 줄로 기록되겠지만 머릿속엔 언제나 생생한 추억으로 보존될 것이다. 과정은 순탄하지 않지만 결국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한 학보에 감사를 느낀다. 난 오늘도 기자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며 낭만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