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이정표

2020-09-19

기자 |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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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말을 하는 직업을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내 글과 말이 누군가의 이정표가 되길 바랐다. 학창 시절에 작가를 꿈꾸며 신춘문예에 글을 내기도 했고 시사토론부에서 토론하며 가치관을 정립했다. 역동적인 삶도 꿈꾸었다. 해외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난 경험을 글로 녹여내고 싶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작가의 꿈을 가졌다. 다채로운 삶을 지향하던 내게 작가는 모든 것을 충족시킬 수 있는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시를 거치며 모든 꿈이 퇴색되고 남은 지향점은 금전적인 여유와 안정적인 직장뿐이었다.
입대를 앞두고 다녀온 네팔 여행은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네팔에서 △멕시코△미국△싱가포르△호주 등 세계 각국의 또래 친구를 만나 살아온 환경을 공유했다. 지진에 무너진 초등학교를 다시 세우기 위해 같이 벽돌을 나르며 구슬땀을 흘렸다. 네팔 아이들에게 컴퓨터 활용법과 리코더 연주를 가르치며 일주일을 보내고 마지막 날이 됐다. 다들 고생했다며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 장래희망을 주제로 토론을 시작했다. 호주에 사는 친구는 유치원을 차리고 싶어 5년 동안 배관공 일을 해 돈을 모았다. 멕시코에 사는 친구는 캠핑이 좋단 이유 하나만으로 인도에서 네팔을 거쳐 중국까지 배낭여행을 하고 있었다. 모두가 행복한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을 이야기할 때 나는 꿈꾸던 미래에 대해 떳떳하게 얘기하지 못했다. 추구하고 싶던 삶의 방식도 아니었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던 세계는 정말 좁았다. 많은 사람이 안정적이라 믿는 길을 걸으며 그들과 똑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코딩을 하면 취업이 잘된단 말을 믿고 적성과 맞지 않는 수업을 들으며 종일 컴퓨터 앞에서 머리를 싸매고 방황했다. 평범한 직장과 결혼이 가져오는 평화로 행복해질 수 있단 자기합리화를 하며 살았다.
여행을 다녀온 후, 진정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역동적이며 영향력 있는 일을 찾다가 기자란 직업을 꿈꾸기 시작했다. 작가와 기자는 차이점이 있다. 작가는 자리에 앉아 본인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지만 기자는 기삿거리를 찾아다니며 글을 쓴다. 발로 뛰며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기사를 쓰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쓴 글이 사람들에게 영향력 있는 글로 각인되길 바랐다.
그 후 기자가 되기 위해 준비하던 중 외대학보 모집 글을 우연히 발견했다. 휴학생은 지원할 수 없단 사실을 깨닫고 복학 후 다시 지원했다. 학보사를 통해 우리학교 안에서 일어난 일을 취재하며 학교 본부와 소통하고 싶었다. 더 나아가 우리학교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며 학생들이 만족감을 느끼길 원했다. 부푼 꿈을 안고 들어간 학보사에선 인터뷰를 하며 기사를 쓰고 신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험했다. 내 삶의 이정표가 정해졌단 확신 때문에 밤을 새우고 기사를 편집하는 일이 힘들게 다가오지 않았다. 이젠 내가 누군가의 이정표가 돼 그 사람의 삶을 이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