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 - 강렬하고, 강렬하다 -

2020-09-19

이현지 기자 | 100hyunzi@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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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18개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가 출간됐다. 출판사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에서 처음으로 소개된 우루과이 작가 ‘오라시오 키로가’(이하 키로가)의 책이다. 키로가는 근대 단편소설의 거장이자 라틴아메리카 환상문학*의 선구자로 손꼽힌다. 그는 인간의 삶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다.
이 소설집의 세 주제인 △광기△사랑△죽음은 강렬하게 다가온다. 우선 사랑을 살펴보자. 키로가가 생각하는 사랑은 끝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의 작품 ‘사랑의 계절’과 ‘엘 솔리타리오’에서 사랑은 본질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특성을 지닌다. 소설집에서 ‘뇌막염 환자와 그녀를 따라다니는 그림자’ 속 사랑만이 거의 유일하게 실패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사랑은 뇌막염으로 인한 착란 증세의 광기 속에서 가능하다. 이로써 그의 작품에서 묘사된 모든 사랑은 비극적이다.
광기는 키로가의 핵심 정체성으로 볼 수 있다. 대표작으로 불리는 △‘깃털 베개’△‘목 잘린 닭’△‘사람들을 자살하게 만드는 배’에선 사람의 불안한 심리가 섬세하게 묘사된다. 신혼 생활에 대한 환상이 깨진 여자는 환각에 시달리고 어떤 배에 탄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살하고 만다. 부부는 정신적 장애가 있는 세 아이를 방치하고 비장애인 아이에 집착한다. 이들의 행동은 광기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이 광기의 끝엔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식인 개미 떼에 잡아먹히는 이야기인 ‘천연 꿀’과 뱀에 물려 죽음을 맞는 ‘표류’는 키로가의 죽음에 대한 운명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런 환상문학이 나올 수 있던 배경엔 키로가의 불운한 삶이 있다. 키로가는 태어난 지 두 달이 됐을 때 아버지의 사망을, 열일곱이 되던 해엔 의붓아버지의 엽총 자살을 목격한다. 이후 △누나△친구△형마저 이른 죽음을 맞는다. 이런 상황은 키로가가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그에게 삶이란 죽음을 피하기 위한 끝없는 투쟁 과정이며, 죽음은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이 소설집이 환상을 기반으로 하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쉽게 이입할 수 있는 이유는 삶과 죽음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사회에 확산하며 우린 다시 집이란 한정적인 공간에 갇히게 됐다. 이런 현실 속에서 벗어나 키로가의 환상 문학으로 도피해보는 것은 어떨까. 인간의 운명에 대해 고찰해볼 수 있는 것은 덤이다.

*환상문학: 현실을 반영하는 요소보다 가상적이고 비사실적인 요소 등으로 상상력이 강조된 문학

이현지 기자 100hyunzi@hufs.ac.kr